EU 규제 대응·보수단체 지원…‘미국 우선’과 내정개입 논란
전통 원조는 축소하면서 우호 정치세력에는 선별적 자금 투입
전통 원조는 축소하면서 우호 정치세력에는 선별적 자금 투입
이미지 확대보기이는 개발·보건·인도주의 원조는 미국의 국익과 맞지 않는다며 줄이는 동시에 유럽연합(EU)의 디지털 규제에 반대하거나 보수적 가치관을 확산하는 해외 사업에는 보조금을 제공하려는 행보여서 대외원조의 정치화와 내정개입 논란이 예상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 국무부가 유럽을 비롯한 해외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문화적 가치와 맞닿은 사업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1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FT가 확인한 국무부의 미 의회 통지서에는 EU 규제에 대응하는 사업과 유럽의 이른바 ‘문명 동맹’ 구축, 영국 보수 성향 단체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계획이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기존 미국 대외원조가 미국의 이익과 외교정책에 부합하는지 전면 재검토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후 개발과 보건, 인도주의 사업을 포함한 기존 대외원조를 축소하고 관련 기관의 조직과 예산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재편해왔다.
그러나 이번 계획은 해외 지출을 줄인다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도 트럼프 행정부와 정치적·이념적으로 가까운 유럽 단체에는 미국 납세자의 돈을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비판이 일고 있다.
비판론자들은 기존 대외원조의 낭비와 정치적 편향을 문제 삼아 사업을 줄여놓고 미국 보수진영과 가까운 해외 단체에는 정부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단순한 대외원조 확대가 아니라 유럽의 정치·사회적 논쟁에 미국 정부가 선택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EU 디지털 규제 대응에 30억원
미 국무부가 마련한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는 EU의 디지털 규제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는 ‘검열’에 대응하는 것이다.
국무부는 EU의 디지털서비스법(DSA)과 디지털시장법(DMA) 등에 대응하는 사업에 200만달러(약 30억원)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DSA는 대형 온라인 플랫폼에 불법·유해 콘텐츠 관리 의무를 부과하는 법이다. DMA는 거대 기술기업의 시장지배력 남용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들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미국 기술기업을 부당하게 겨냥한다고 비판해왔다.
다만 국무부가 의회에 전달한 통지서에는 해당 사업을 수행할 특정 단체가 이미 선정됐는지는 적시되지 않았다.
◇유럽 ‘문명 동맹’ 구축에 75억원
국무부는 유럽에서 ‘문명 동맹’을 구축하는 사업에도 500만달러(약 75억원)를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보조금은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경쟁, 국가 주권을 옹호하는 사업에 사용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의 온라인 표현 규제와 이민정책, EU 차원의 초국가적 정책이 개별 국가의 정체성과 주권을 훼손한다고 주장해왔다.
국무부는 미국과 유럽이 공유한다고 보는 서구의 정치·문화적 유산을 강화하고 이른바 서구 문명의 규범을 지키는 활동을 지원 대상으로 제시했다.
동유럽과 발칸반도에서 서구 문명의 규범을 약화하려는 움직임에 대응하는 단체에도 200만달러(약 30억원)를 지원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영국 보수 성향 단체에 자금 배정
별도의 의회 통지서에는 영국 보수 인사 토비 영이 설립한 표현의자유연합의 국제조직에 500만달러(약 75억원)를 제공하는 방안이 담겼다.
토비 영은 표현의자유연합이 활동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를 증진하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미 국무부 보조금을 신청할 의사를 밝혔지만 아직 정식 신청서는 제출하지 않았다고 FT에 밝혔다.
표현의자유연합은 이 단체는 비당파 조직을 표방하고 있지만 비판론자들은 보수적이고 정치적 올바름에 반대하는 의제를 주로 옹호해왔다고 지적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특정 정치 성향의 해외 단체를 지원할 경우 동맹국의 국내 정치에 개입한다는 반발을 부를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영미 싱크탱크 지원안 놓고 국무부 혼선
통지서에는 영국 보수당 출신 전 각료 제이컵 리스모그가 공동 설립한 영미 싱크탱크 ‘878’에 700만달러(약 104억원)를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878은 영국과 미국의 ‘문명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는 단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잘 아는 관계자는 실제로 878에 자금을 지원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국무부의 한 하급 직원이 문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이 내용을 포함시켰다”며 “일부 고위 관계자도 이를 뒤늦게 알고 당혹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878에 대한 지원안이 실제 심사를 거쳐 집행될지는 불투명하다.
◇‘미국 우선주의’ 선택적 적용 논란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외교·안보 이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해외 사업에는 자금을 지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세워왔다.
그러나 유럽의 디지털 규제와 표현의 자유, 국가 주권 논쟁에 미국 정부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미국 우선주의’를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존 개발·인도주의 사업은 국익과 관련이 없다며 축소하면서 유럽의 보수적 정치운동과 미국 기술기업에 유리한 규제 환경을 조성하는 사업은 미국의 이익으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특히 현지 정부와 EU가 합법적인 절차로 제정한 규제를 ‘검열’로 규정하고 이에 반대하는 민간단체를 미국 정부가 지원하면 유럽의 정책 결정과 국내 정치에 개입한다는 논란이 커질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지지자들은 표현의 자유와 국가 주권을 보호하고 EU의 과도한 규제에 대응하는 것도 미국의 외교적 이해관계에 해당한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대외원조가 보편적인 인권이나 개발 지원보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우군을 해외에서 확대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미 국무부는 보조금 사업들은 아직 논의 단계에 있다고 해명했다.
국뭅는 연방정부의 보조금을 받기 위한 요건과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단체에는 자금 지급이 보장되지 않는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