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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인텔 립부탄(Lip-Bu Tan) "말레이지아 중국 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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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인텔 립부탄(Lip-Bu Tan) "말레이지아 중국 화교"

립부탄(Lip-Bu Tan) 인텔 CEO/사진=인텔 이미지 확대보기
립부탄(Lip-Bu Tan) 인텔 CEO/사진=인텔
[김대호 인물] 립부탄(Lip-Bu Tan) 누구인가? : 미국 반도체 제국의 구원투수, 그 잔혹한 생존의 경제학

인텔이 립부탄을 CEO로 발탁했을 때 세계는 깊은 충격에 빠졌다. 수십 년간 고수해 온 내부 순혈주의를 깨트린 파격 인사였기 때문이다. 그는 정통 '인텔맨'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 직전 경영진과의 극심한 의견 충돌 끝에 이사회를 스스로 떠났던 인물이었다. 미국 안보의 핵심 자산이자 실리콘밸리의 자존심인 인텔의 최고 수석 자리에 말레이시아 태생의 화교 출신 투자가가 앉았다는 점 역시 세계 반도체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사상 최악의 위기 속에서 단행된 립부탄의 전격 기용은 단순한 최고경영자 교체를 넘어서는 사건이다. 이는 관료주의에 물든 인텔의 구조적 결함을 수술하고, 글로벌 파운드리 생태계의 판도를 바꾸기 위해 미국 기술 패권 세력이 던진 배수의 진이다. 립부탄이라는 인물의 드라마틱한 성장 과정부터 발탁 비화, 트럼프 행정부와의 첨예한 갈등, 그리고 대규모 자금 조달에 숨겨진 전략적 셈법을 심층 분석한다.

립부탄은 1959년 말레이시아의 한 화교 가문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와 청소년기 교육은 싱가포르에서 받았다. 싱가포르 난양대학교(Nanyang University)에 입학해 물리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부 졸업 후 기술의 본산인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명문 MIT(마사추세츠 공대) 대학원에 진학하여 원자력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을 이수하던 중 발생한 '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미국의 원전 산업이 급격히 냉각되자, 지도교수의 조언에 따라 실용적 경영과 금융 분야로 방향을 틀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 대학교(University of San Francisco)에서 MBA를 취득했다.

국적과 정체성 측면에서 립부탄은 말레이시아 태생의 화교 정체성을 지니고 성장했으나 미국 유학 이후 40년 넘게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며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미국인이다. 동양적 끈기와 정교한 셈법, 그리고 미국 특유의 벤처캐피털리즘을 결합한 그의 독특한 통찰력은 이러한 성장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립부탄의 산업적 업적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나뉜다. 벤처캐피털리스트로서의 자산 운용과 반도체 소프트웨어 기업의 대반전이다.1987년 글로벌 벤처캐피털인 월든 인터내셔널을 설립하고 회장직을 맡으며 수백 개에 달하는 아시아 및 북미의 반도체·IT 스타트업에 초창기 투자를 집행했다. 반도체 생태계 전반을 내려다보는 정교한 안목을 다진 시기다.
케이던스 디자인 시스템즈(Cadence Design Systems)의 중흥에도 기여했다. 반도체 회로 설계에 필수적인 EDA(설계 자동화) 분야 세계 2위 기업인 케이던스의 CEO(2009~2021년)로 재직했다. 당시 침체기에 빠져 있던 케이던스에 가혹한 체질 개선과 고객 중심 문화를 이식함으로써 기업 가치를 10배 이상 폭발적으로 성장시키는 신화를 썼다.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그는 반도체 설계, 제조, EDA, 테스팅, 투자에 이르기까지 반도체 벨류체인 전반을 실무와 재무 관점에서 완벽하게 이해하는 실리콘밸리 최고의 베테랑으로 입지를 다졌다.

2024년 말 팻 겔싱어(Pat Gelsinger) CEO가 대규모 적자와 파운드리 불확실성의 책임을 지고 중도 퇴진한 이후, 인텔 이사회는 깊은 혼란에 빠졌다. 수십억 달러의 유동성이 타들어 가는 상황에서 인텔을 살릴 인물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생태계 판을 다시 짤 리더'여야 했다. 립부탄이 신임 CEO로 수혈된 핵심 배경에는 주요 재무적 투자자(기관투자자)들과 미 정부 및 반도체 산업계 대주주들의 강력한 지지가 존재했다.인텔의 최대 주주 그룹인 블랙록, 뱅가드 등 기관투자자들은 겔싱어의 방만하고 거대한 투자계획 대신, 립부탄이 케이던스 시절 보여준 '비용 절감과 선택 및 집중' 전략을 절실히 원했다.반도체법(CHIPS Act)을 통해 인텔에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하던 미국 정부 입장에서도, 파운드리 공정을 외부 고객사(엔비디아, 퀄컴, 브로드컴 등)에 실제로 매각하고 유치해본 경험이 풍부한 립부탄을 적임자로 낙점했다.

립부탄은 CEO로 부임하기 전인 2022년 이미 인텔 이사회에 합류했었다. 그러나 2024년 8월, 그는 이사직을 돌연 사임했다. 당시 그가 밝힌 공식 사유는 개인적 스케줄 문제였으나, 내부적으로는 팻 겔싱어 전 CEO와의 극심한 전략적 대립이 사임의 진짜 원인이었다.파운드리 전략과 조직 관료주의에 대한 이견이 심했다. 립부탄은 당시 인텔의 파운드리 전환 속도가 너무 느리고, 중구난방식 투자로 자금이 낭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관료화된 중간 관리자층을 대폭 감원하고 외부 고객사 유치 중심의 슬림한 구조 개편을 요구했으나, 겔싱어 체제는 기존의 거대한 자사 제품 위주 생산 방식을 고집했다.립부탄은 엔비디아와 TSMC가 독주하는 AI 칩 패권 전쟁에서 인텔의 자체 GPU 및 AI 가속기 개발이 시기를 놓쳤음을 경고했다. 이사회의 경고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공장을 증설하려던 경영진에 반발해 이사회를 떠났던 것이다.그의 사임 후 인텔의 실적 악화와 주가 폭락이 현실화되면서, 이사회는 립부탄의 지적이 옳았음을 인정하고 그를 CEO로 다시 모셔오는 극적인 반전을 연출했다.

재집권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및 강경 파벌과의 마찰은 립부탄 체제 인텔의 가장 위험한 정치적 리스크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안보의 핵심 자산인 인텔의 수장에 화교 출신인 립부탄이 오른 것에 대해 강력한 의구심을 표출했다.중국 자본 및 벤처 투자 이력을 문제삼았다. 립부탄이 과거 월든 인터내셔널을 운영할 당시 중국 내 반도체 스타트업에 투자했던 이력과 과거 중국 정부 관련 펀드와의 접점이 트럼프 측 안보 라인의 매서운 공격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립부탄은 미국 정부와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백악관과의 접촉을 자청했다. 그는 "미국은 40년 넘게 나의 보금자리였으며, 나의 모든 활동은 미국의 법적·윤리적 기준을 완벽히 준수했다"고 서한을 발표하는 한편, 인텔의 제조 역량을 미국 본토에 뿌리내리겠다는 '미국 우선주의' 공급망 확약서를 제출하면서 갈등을 봉합 국면으로 이끌었다.

립부탄이 CEO 취임 후 전격 단행한 대규모 자본 조달(유상증자 및 주식 발행)은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가 희석된다는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금을 긁어모은 이유는 분명하다.파운드리 선단 공정(18A, 14A)의 수율 안정화가 가장 큰 목표이다. TSMC 추격을 위한 핵심 미세공정 설비 투자를 차질 없이 완수하기 위함이다. 외부 고객사 유치를 위한 샌드박스 자금 확보 목적도 있다. 인텔 4 및 18A 공정으로 대형 테크 기업들(포티넷, 구글 등)의 물량을 실제 주문받아 수주 생산 체제로 완벽히 전환하는 데 막대한 전환 비용이 소모된다. 유상증자로 모아진 자금으로 재무 구조를 개선하고 유동성 쇼크을 방어하자는 뜻도 있다.누적된 수십억 달러의 적자와 부채 비율을 낮춤으로써, 신용등급 하락을 막고 구조조정 기간 동안 견딜 수 있는 방화벽인 셈이다.
립부탄은 반도체 산업 역사상 가장 어렵고 막중한 미션을 부여받은 CEO다. 그는 화교 출신 엔지니어라는 정체성에서 출발하여 세계 반도체 투자의 중심에 섰고, 이제는 사경을 헤매는 미국 반도체 제국의 수술을 맡았다.그의 칼날은 가혹한 비핵심 사업 매각, 관료적 조직 해체, 외부 파운드리 고객사 유치에 맞춰져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거친 정치적 압박과 TSMC의 무시무시한 도전을 동시에 넘어야 하는 립부탄의 사투는, 글로벌 반도체 지형과 미국 기술 패권의 향방을 가르는 최전선인 셈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