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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흔드는 美 대형로펌 피라미드…신입채용도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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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흔드는 美 대형로펌 피라미드…신입채용도 축소

월가 은행들 수임료 인하·경쟁입찰 요구
대형로펌 47% 여름 인턴 줄여…포드도 법무업무 내부화
모건스탠리, 씨티그룹, 골드만삭스의 로고. 사진=각사이미지 확대보기
모건스탠리, 씨티그룹, 골드만삭스의 로고. 사진=각사
인공지능(AI)이 미국 대형 로펌의 수임료 체계를 넘어 신입 변호사 채용과 전통적인 수익구조까지 흔들기 시작했다.

AI가 법률 리서치와 문서 검토 등 주니어 변호사가 맡아온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면서 로펌의 주요 고객인 월가 은행들은 수임료 인하를 요구하고 일부 기업은 외부에 맡기던 법률 업무를 직접 처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모건스탠리,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등 월가 대형 은행들이 AI 도입으로 법률 업무에 필요한 시간이 줄어든 만큼 대형 로펌의 비용도 내려가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고 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국 대형 로펌은 오랫동안 많은 주니어 변호사가 일한 시간을 시간당으로 청구하고 이를 통해 지분 파트너들의 수익을 높이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법률 조사와 문서 검토, 계약서 분석, 소송 과정에서의 증거자료 검토 등 주니어 변호사가 많은 시간을 투입했던 업무를 AI가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이 같은 모델이 흔들리고 있다.

애덤 메셸 씨티그룹 글로벌 법무 책임자는 “AI를 통해 사건 처리 시간이 줄었다면 거래당 비용도 크게 낮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FT에 말했다.

씨티그룹은 법률 업무를 맡기기 위한 입찰 과정에서 로펌에 AI를 통해 얼마의 비용을 절감했는지 설명하도록 요구하기 시작했다.

메셸은 이런 방식을 토대로 한 새로운 업무 모델이 1년 안에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모건스탠리도 수십년간 이어진 로펌의 수익구조가 지속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에릭 그로스먼 모건스탠리 최고법률책임자는 “대형 로펌의 파트너들이 오랫동안 주니어 변호사의 장시간 청구를 기반으로 보수를 받아왔다”며 “이런 보상 모델이 이제 극도로 불안정해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업무를 훨씬 빨리 끝낼 수 있게 된 변화가 대형 로펌의 수익 기반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내다봤다.

모건스탠리는 최고 수준의 변호사가 제공하는 판단과 전문성에는 계속 높은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지만 올해 말까지 대부분의 외부 법률 업무를 경쟁입찰에 부치고 고정 수임료 등 기존 시간당 청구와 다른 방식으로 비용을 지급할 계획이다.

골드만삭스도 로펌들에 AI를 사용하면서 업무 효율성이 얼마나 높아졌고 어느 정도 비용을 절감했는지 관련 자료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 측은 AI가 만들어낸 효율성의 혜택을 고객과 공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간당 109만원 넘는데 AI로 업무는 빨라져

월가의 압박은 미국 대형 로펌의 수임료가 빠르게 상승한 가운데 나타났다.

법률 기술업체 퍼슈트에 따르면 미국 최대 로펌 소속 주니어 변호사의 올해 평균 시간당 청구액은 798달러(약 109만5000원)로 2023년보다 33% 올랐다.

파트너 변호사의 시간당 청구액도 같은 기간 29% 상승했다.

FT는 “대형 로펌들이 경쟁사에서 스타 변호사를 영입하기 위해 막대한 보수를 지급하면서 수임료가 빠르게 상승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주요 고객인 월가 은행들은 AI를 통해 똑같은 업무를 더 짧은 시간에 처리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시간당 비용을 계속 지급하는 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씨티그룹의 대형 로펌 대상 조사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조사에 참여한 대형 로펌 가운데 거의 절반은 AI가 이미 수임료 책정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했다.

아직 업계 전체가 시간당 청구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수임료 체계로 옮겨간 것은 아니다.

씨티그룹 로펌 자문그룹의 그레타 루사노우는 “현재 변화가 아직 주변부에서 나타나는 정도”라면서도 “앞으로 반복적이고 표준화된 업무에는 고정 수임료를 적용하고 복잡한 사건에는 기존의 시간당 청구를 유지하는 혼합 방식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주니어 변호사 채용도 감소…포드는 업무 내부화

수임료 체계의 변화는 신입 변호사 채용으로도 번지고 있다.

씨티그룹 조사에 따르면 미국 대형 로펌의 47%는 올해 대형 로펌 취업의 주요 관문인 여름 인턴인 ‘서머 어소시에이트’ 채용 규모를 지난해보다 줄였다.

49%는 내년 여름 인턴 채용 인원을 올해보다 더 줄일 계획이라고 답했다.

AI가 주니어 변호사의 반복 업무를 대신하면서 과거처럼 많은 초급 인력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반영된 것이다.

다만 AI가 변호사의 업무시간을 무조건 줄이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미 대형 로펌 레이섬앤드왓킨스의 샘 뉴하우스 M&A·사모펀드 부문 글로벌 부회장은 AI로 단순 업무를 빨리 끝낼 수 있더라도 고객들이 절약된 시간을 더 많은 데이터 분석과 전략적 검토에 활용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과거의 모든 합병계약서를 분석해 각각 어떤 조건으로 거래가 이뤄졌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면 고객이 더 유리한 계약을 체결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형 로펌의 전통적인 사업모델에 대한 압박은 금융업계를 넘어 다른 산업으로 확산하고 있다.

포드는 AI를 활용하면 자체적으로 더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는 법률 업무에 대해 사내 변호사 채용을 늘리고 외부 로펌 이용을 줄이고 있다.

스티븐 크롤리 포드 최고법률책임자는 “외부 로펌들이 AI를 사용하고 있지만 고객 입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수임료 절감이나 효율성 향상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주니어 변호사를 두고 이들의 시간당 수임료를 통해 파트너 수익을 높이는 대형 로펌의 피라미드형 경제모델에 대해 “그 모델에는 베팅하지 않겠다”며 큰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FT는 AI가 법률 전문성과 복잡한 판단까지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당 노동을 수익의 핵심 기반으로 삼아온 미국 대형 로펌에는 고객사의 수임료 인하 요구와 초급 인력 축소가 동시에 나타나는 구조적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