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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로린 잡스(Laurene Jobs) 애플 "스티브 잡스 미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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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로린 잡스(Laurene Jobs) 애플 "스티브 잡스 미망인"

로린 파월 (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 미망인)/ 사진= 로이터 이미지 확대보기
로린 파월 (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 미망인)/ 사진= 로이터
[김대호의 인물 오디세이]

위대한 천재의 아내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창업했다. 그 스티브 잡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단연 그의 부인 로린 파월 잡스이다. 세간의 시선은 언제나 그녀를 '잡스의 미망인', 혹은 실리콘밸리 최고의 거액을 상속받은 '운 좋은 상속자'라는 납작한 프레임 안에 가두려 했다. 로린 파월 잡스(Laurene Powell Jobs)는 그러나 낡은 통념과 수식어의 벽을 보란 듯이 깨부수며 자신만의 거대한 궤적을 그려나간 주체적인 혁신가다.

그녀는 단순히 남겨진 천문학적인 유산을 지키는 수호자에 머물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2011년 이후, 로린 파월 잡스는 잡스가 남긴 자본을 밑거름 삼아 현대 자본주의가 마주한 가장 첨예한 모순들을 정면으로 돌파하기 시작했다. 교육의 격차, 양극화의 심화, 이민자 인권의 침해, 기후 위기, 그리고 흔들리는 민주주의와 저널리즘의 위기까지—그녀가 손을 댄 영역은 실리콘밸리의 기술 만능주의가 외면해 온 문명사적 난제들이었다.스티브 잡스가 손가락 끝의 터치 하나로 인류의 생활 방식을 송두리째 바꾼 하드웨어·소프트웨어의 거인이었다면, 로린 파월 잡스는 자본의 순환 구조를 바꾸어 사회적 제도와 생태계를 뜯어고치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의 설계자'다.
로린 파월은 1963년 미국 뉴저지주 웨스트필드에서 태어났다. 대중에게 비친 그녀의 우아하고 정돈된 모습 이면에는 유년 시절 겪어야 했던 뼈아픈 결핍과 생존의 서사가 숨어 있다. 해병대 조종사였던 아버지는 그녀가 겨우 세 살 되던 해 비행기 추락 사고로 순직했다. 어머니는 재혼했으나 그 결혼 생활 역시 순탄치 못했다. 로린은 어린 나이부터 스스로 삶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냉엄한 현실을 체득했다. 부유한 환경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난 여느 자산가들과 달리,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는 독립성과 결핍에 대한 본능적 공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를 구원하고 도약시킨 무기는 학문과 지성이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Penn)에 진학한 그녀는 경제학과 정치학을 동시에 전공하며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양대 축인 시장 메커니즘과 권력 구조를 깊이 파고들었다. 와튼스쿨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단련된 수리적 감각과 거시경제적 통찰은 그녀가 훗날 천문학적인 자금을 운용하는 자본가로 성장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자양분이 되었다. 대학 졸업 후 월스트리트로 향한 로린은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와 메릴린치(Merrill Lynch)에서 채권 트레이딩과 금융 전략을 담당했다. 월가의 심장부에서 글로벌 자본의 생리와 파생상품의 작동 방식을 생생하게 목격한 그녀는, 자본이 어떻게 이동하고 부가 어떻게 축적되는지 그 비정한 법칙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꿰뚫어 보았다.

그녀는 이어 스탠퍼드 경영대학원(MBA)에 진학했다. 실리콘밸리의 태동과 벤처 정신이 용솟음치던 1989년의 스탠퍼드, 바로 그곳에서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운명적인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1989년 10월, 애플에서 쫓겨나 넥스트(NeXT)를 이끌며 절치부심하던 서른네 살의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강단에 초청 연사로 섰다. 강연장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스물여섯 살의 로린 파월을 본 순간, 잡스는 한눈에 매료되었다. 강연이 끝난 후 잡스는 비즈니스 저녁 약속마저 취소하고 주차장으로 달려가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오늘 밤 저녁을 함께하시겠습니까?"라는 잡스의 질문에 로린은 주저 없이 응했고, 두 천재적인 영혼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1991년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불교식으로 치러진 결혼식 이후, 로린은 잡스의 가장 든든한 안식처이자 균형추가 되었다. 당대의 스티브 잡스는 천재성과 광기, 폭발적인 분노와 완벽주의가 뒤엉킨 다루기 힘든 영혼이었다.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몰아세우고 극단적인 채식과 독선적 태도로 고립을 자초하던 잡스 곁에서 중심을 잡고 그를 세상과 연결해 준 유일한 닻이 바로 로린 파월이었다. 잡스가 넥스트와 픽사(Pixar)를 거쳐 기적처럼 애플로 복귀하고,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인류 역사를 새로 쓰는 동안, 로린은 철저히 무대 뒤에 머물렀다. 이는 결코 수동적인 은둔이 아니었다. 그녀는 잡스가 밖에서 뿜어내는 파괴적 혁신의 열기가 가정이라는 최소 단위의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도록 단단한 방파제 역할을 자임했다. 잡스 스스로도 생전에 수차례 고백했듯, 로린이 없었다면 애플의 신화적 부활도, 인간 스티브 잡스의 내적 안정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문법을 뒤바꾼 독창적 실험
2011년 10월,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전 세계는 비탄에 잠겼다. 잡스는 아내 로린에게 약 100억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인 자산을 남겼다. 애플의 지분뿐만 아니라 픽사를 매각하면서 취득했던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개인 최대 주주 지분이 포함된 막대한 규모였다. 세계 언론은 이 유산이 어떻게 쪼개지고 배분될 것인가에만 촉각을 곤두세웠다. 로린 파월 잡스의 시선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잡스가 살아있던 2004년에 설립했던 '에머슨 컬렉티브(Emerson Collective)'의 깃발을 본격적으로 들어 올렸다. 미국 초월주의 철학자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이름에서 따온 이 조직은, 기존의 전통적인 자선 재단과는 근본부터 궤를 달리하는 파격적인 조직이었다.

로린은 에머슨 컬렉티브를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 비영리 재단(501(c)(3))이 아니라, 일반 영리 목적의 '유한책임회사(LLC)' 형태로 출범시켰다. 실리콘밸리와 월가는 충격에 빠졌다. 천문학적인 기부를 하면서도 세금 공제를 포기한다는 것은 자본의 기본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여기에는 로린의 치밀한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미국 세법상 비영리 재단은 정치적 로비나 직접적인 정책 캠페인, 영리 벤처기업에 대한 자유로운 지분 투자가 엄격히 제한된다. 로린은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시혜적 기부'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며, 법과 제도를 바꾸는 정치적 행동주의와 혁신 기술을 육성하는 임팩트 투자가 결합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세제 혜택을 과감히 포기하는 대신 완벽한 운영의 자율성과 행동의 기동성을 확보한 것이다.

에머슨 컬렉티브는 일종의 '하이브리드 엔진'이었다. 비영리 단체에 무상으로 기금을 지원하는 동시에, 유망한 사회적 벤처기업에 벤처캐피털(VC) 형태로 자금을 집행하고, 의회와 행정부를 상대로 법 개정 로비 및 대국민 캠페인을 동시에 전개했다. 자본주의의 무기(자본 투자)를 활용해 자본주의의 폐해를 바로잡는, 일찍이 전례가 없던 새로운 형태의 사회 변혁 플랫폼을 창조한 것이다.

로린 파월 잡스가 에머슨 컬렉티브를 통해 집중적으로 타격한 지점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수렴된다.첫째, 무너진 교육 사다리의 복원이다. 로린은 일찍이 1997년에 저소득층 고등학생들의 대학 진학을 돕는 '칼리지 트랙(College Track)'을 공동 설립했다. 가정 내에서 대학 진학자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소외 계층 청소년들을 발굴하여 단순한 장학금 지급을 넘어 10년에 걸친 학업 지도, 멘토링, 정서적 지원을 제공했다. 나아가 그녀는 2015년 'XQ: 슈퍼 스쿨 프로젝트(XQ: The Super School Project)'를 출범시키며 1억 달러 이상의 사재를 투입했다. 100년 전 공장형 노동자를 양성하기 위해 설계된 미국의 낡은 고등학교 교육 과정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재설계하자는 거대한 공교육 혁신 운동이었다.

둘째, 이민자의 인권과 불평등 해소다. 그녀는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와 신분 불안에 시달리는 불법체류 청소년들을 일컫는 '드리머(Dreamers)'의 강력한 수호자를 자임했다. 이들에게 합법적 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드림법안(DREAM Act)' 통과를 위해 의회를 상대로 전방위적인 로비 활동을 펼쳤으며, 다큐멘터리 제작과 미디어 캠페인을 직접 후원했다. 보수 정치권의 거센 반발 속에서도 그녀는 "이민자들이야말로 미국의 혁신을 지탱해 온 진정한 원동력"이라는 소신을 한 치도 굽히지 않았다.

셋째, 민주주의의 보루인 저널리즘의 구원이다. 2017년, 로린 파월 잡스는 160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미국의 대표적 지성지 《디 애틀랜틱(The Atlantic)》의 경영권 지분을 전격 인수했다. 디지털 미디어의 난립과 가짜 뉴스의 범람, 광고 수익 급감으로 전통적인 탐사 저널리즘이 고사 위기에 처해 있던 시점이었다. 그녀는 편집권에 일체 개입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천명하며 막대한 자금을 수혈했다. 수백 명의 일류 기자를 추가 채용하고 장기 탐사 보도를 전폭적으로 지원한 결과, 《디 애틀랜틱》은 심층 보도의 르네상스를 맞이하며 퓰리처상을 연이어 수상하는 등 디지털 유료 구독 모델 안착에 성공했다. 상업적 알고리즘에 영혼을 판 빅테크의 시대에, 민주적 공론장을 지키기 위한 자본가의 책무가 무엇인지를 전 세계에 명징하게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파괴적 개인주의를 넘어 연대적 생태계로

스티브 잡스와 로린 파월 잡스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궁극적인 비전을 공유했으나,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선택한 경로와 방법론에서는 뚜렷한 대척점을 형성했다.우선 혁신을 이끌어내는 근본 도구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스티브 잡스는 기술과 하드웨어, 그리고 완벽하게 통제된 폐쇄적 생태계를 혁신의 절대적 무기로 삼았다. 반면 로린 파월 잡스는 막대한 자본과 과감한 제도 개혁, 그리고 사회 각 분야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개방적 네트워크를 통해 변화를 촉발했다.

이러한 도구의 차이는 행동 양식의 차이로 직결되었다. 스티브 잡스가 타협을 모르는 독선적 천재성과 기존의 질서를 거침없이 무너뜨리는 파괴적 개인주의로 역사를 전진시켰다면, 로린 파월 잡스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아우르는 협력적 거버넌스와 연대, 그리고 사회적 포용의 태도를 견지하며 공통의 해법을 모색했다.세상을 바라보는 사회적 철학 역시 결이 달랐다. 잡스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우수한 제품을 창조해 내는 것 자체가 곧 인류에 대한 가장 위대한 공헌"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철저한 기술 엘리트주의자로서 소수의 비범한 재능이 역사를 견인한다고 보았다. 반면 로린은 "제도와 환경의 근본적인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는 기술 혁신은 공허할 뿐"이라는 인문주의적 통찰을 견지했다. 아무리 혁신적인 스마트폰이 쏟아져 나온다 한들, 교육의 기회에서 배제되고 생존권을 위협받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진정한 사회 발전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자본을 집행하고 활용하는 용처에 있어서도 두 사람의 궤적은 갈라졌다. 생전의 잡스가 축적된 부를 기업의 끊임없는 재투자와 차세대 기술의 집약에 쏟아부었다면, 로린은 그 자본의 흐름을 무너진 공교육의 복원, 비판적 탐사 저널리즘의 보존, 기후 변화 위기 대응, 그리고 사회 정의의 회복과 전폭적인 사회 환원으로 돌려놓았다. 잡스의 혁신이 시장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번개였다면, 로린의 혁신은 시장 바깥의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생명의 물길이었던 셈이다.

부의 세습을 끝내겠다는 선언

로린 파월 잡스는 2020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 자본주의 사회를 뒤흔든 폭탄선언을 내놓았다."내게 부의 축적은 개인적인 영광의 수단이 아니다. 나는 내 남편 스티브 잡스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다음 세대에 세습하지 않을 것이다. 부의 대물림은 그 자체로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독소다. 나의 자녀들도 이 뜻을 지지하며, 내 대(代)에서 이 막대한 자산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모두 소진되어 완전히 분배될 것이다."

수백억 달러의 자산을 쥐고 있는 세계 최상위 부호가 공개적으로 '부의 세습 종식'을 천명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며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그녀는 앤드루 카네기가 100여 년 전 주창했던 "부유한 채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명제를 21세기 디지털 자본주의 환경에서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다.자본주의의 가장 큰 맹점은 부가 또 다른 부를 낳고, 그 부가 세습을 통해 현대판 귀족 계급을 형성한다는 데 있다. 로린은 자신이 쥐고 있는 자본을 사유재산의 관점이 아니라 '사회가 잠시 위탁한 공공의 도구'로 규정했다. 그녀에게 유산이란 가문의 금고에 묻어두어야 할 보물이 아니라, 불평등의 고리를 끊어내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발판을 깔아주는 데 완전히 소모되어야 할 유효기간 있는 연료인 셈이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로린 파월 잡스는 이제 그 누구의 그림자도 아닌 온전한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현대 문명사의 한복판에 우뚝 서 있다. 그녀의 여정은 오늘날 우리 사회와 글로벌 리더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기술 혁신이 눈부시게 질주하고 천문학적인 자본이 특정 플랫폼과 소수 기업에 독점되는 이 시대에, 진정한 '기업가 정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과연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혁신이란 단순히 주가를 띄우고 신제품을 쏟아내는 것에 그쳐야 하는가, 아니면 그 과실에서 배제된 이들에게 공정한 기회의 사다리를 놓아주는 포용의 영역까지 확장되어야 하는가?

로린 파월 잡스는 자본의 축적보다 자본의 배치가 훨씬 더 위대하고 창의적인 작업임을 증명해 냈다. 그녀는 냉철한 월가의 분석력과 뜨거운 인문주의적 가치관을 결합하여,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결함을 치유할 수 있는 고도의 사회적 메커니즘을 설계했다.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향해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고 외쳤다면, 로린 파월 잡스는 자신의 침묵과 행동을 통해 또 다른 차원의 선언을 완성하고 있다. "자본에 지배당하지 말고, 그 자본으로 인간의 존엄과 기회를 구원하라." 그녀가 써 내려가고 있는 인물 오디세이는 한 위대한 여성 자본가의 성공 신화를 넘어 탐욕과 양극화의 늪에 빠진 현대 자본주의가 나아가야 할 하나의 이정표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