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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의 '초고령 日 엿보기'] 80세에도 일하는 일본 - 선택인가, 생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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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의 '초고령 日 엿보기'] 80세에도 일하는 일본 - 선택인가, 생존인가

일본에서 지내며 70대에도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교수 정년 후 다시 학교 현장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었고, 70대 후반에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 스포츠센터 안내데스크에서 손님을 맞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 일은 돈을 버는 수단인 동시에 사람과 연결되고 생활의 리듬을 유지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이었다. 최근에는 야마토 운수의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70대 남성을 만났다. 그가 아는 한 그곳의 최고령 아르바이트 직원은 78세라고 했다. 10대부터 70대까지 함께 일하는 물류 현장에서 이제 ‘고령자 노동’은 예외적인 풍경이 아니었다. 그동안 이런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나는 일본의 초고령사회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역할에서 물러나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을 받아들이는 사회가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최근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금제도의 변화와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들여다보면서 질문 하나가 생겼다.

일본의 노인들은 오래 일할 수 있어서 일하는 것일까. 아니면 오래 일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일하는 것일까.

“더 일하고 싶다!”에 부응하는 일본


2026년 4월 일본에서는 일하는 고령자와 관련해 의미 있는 연금제도 변화가 시행됐다. 일본에는 65세 이후에도 일을 하면서 노령후생연금을 받는 사람이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올리면 연금의 일부를 지급 정지하는 ‘재직노령연금(在職老齢年金)’ 제도가 있다. 기존에는 임금과 노령후생연금의 합계가 월 51만 엔(약 437만 원)을 넘으면 연금이 일부 줄어드는 구조였는데, 2026년 4월부터 이 기준이 65만 엔(약 558만 원)으로 올라갔다. 고령자가 계속 일해 일정한 소득을 얻더라도 연금이 깎이지 않는 범위를 크게 넓힌 것이다.

일본 정부가 밝힌 제도 개정의 취지는 더욱 흥미롭다.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이 연장되는 가운데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는 고령자의 활약을 뒷받침하고 더욱 일하기 쉬운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초고령 사회인 일본에서는 80세에도 일을 한다. 사진은 초고령 사회에서 일하는 가상의 고령 근로자 야마토씨를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사진=챗 GPT 생성이미지 확대보기
초고령 사회인 일본에서는 80세에도 일을 한다. 사진은 초고령 사회에서 일하는 가상의 고령 근로자 야마토씨를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사진=챗 GPT 생성

일본 정부 홍보에는 이를 더욱 간단하게 표현한 문구가 등장한다.

“もっと働きたい!に応えて(더 일하고 싶다!에 부응하여)”

일본이 지향하는 초고령사회의 한 방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고령자의 취업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25년판 일본 내각부 『고령사회백서』에 따르면 60세 이상 가운데 수입을 동반한 일을 하는 사람은 40%를 넘는다. 65세 이상에서도 35.6%가 일을 하고 있다. 65~69세 남성의 취업률은 60%를 넘고, 70~74세 남성도 40% 이상이 일을 한다. 일하고 싶어 하는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몇 살까지 일하고 싶은지를 물으면 75세 정도까지, 80세 정도까지, 혹은 ‘일할 수 있는 동안 계속 일하고 싶다’고 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이미 ‘60세 정년-65세 연금-노후생활’이라는 전통적인 생애 모델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왜 “죽을 때까지 일하라는 것이냐”는 말이 나올까


그런데 이상하다. 정부는 “더 일하고 싶은 고령자”를 지원하기 위해 제도를 바꾼다고 하는데, 인터넷과 SNS에서는 정반대의 목소리가 나온다.

"死ぬまで働けということか(죽을 때까지 일하라는 것인가)?"

특히 이른바 ‘연금 80세’ 논란이 등장할 때마다 이런 반응은 반복된다. 과거 2018년에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의원이 ‘국책연구간담회(国策研究懇談会)’에서 연금 수급 개시 시점을 80세까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의 발언이 2026년 7월에 SNS에서 다시 확산되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마치 일본이 연금 지급 연령을 80세로 올리려 한다는 식의 게시물까지 퍼지자 일본팩트체크센터(JFC)가 다시 검증에 나서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실관계는 조금 다르다. 일본이 현재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일률적으로 80세로 올리려는 것은 아니다. 노령연금은 원칙으로 65세부터 지급되며 본인의 선택에 따라 60세에서 75세 사이에서 수급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 수령을 늦추면 그만큼 연금액이 늘어난다. 과거 고이즈미의 ‘80세’ 발언 역시 모든 국민에게 80세까지 연금을 주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수급 시기를 선택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자는 취지였다. 그런데도 이 오래된 발언이 몇 년이 지나도록 반복해서 소환되고, 그때마다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오히려 그 오해가 반복되는 현상 자체가 일본 사회의 불안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생각하게 되었다.

같은 75세 노동자라도 이유는 다르다


일본 정부가 말하는 논리는 명확하다. 건강하고 능력이 있고 계속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나이를 이유로 일을 그만두게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오래 일하는 사람에게 불리했던 연금제도를 개선하고, 일하고 싶은 만큼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내가 일본에서 만난 고령자들 가운데서도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일은 그들에게 사회와 연결되는 통로였다. 아침에 일어나 갈 곳이 있고,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자신이 가진 경험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노년의 삶에 적지 않은 활력을 준다.

그러나 일본 내각부의 같은 조사(2025년판 고령사회백서)에서 고령자가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를 보면 또 다른 현실이 보인다. 가장 많은 사람이 꼽은 이유는 ‘수입을 위해서’였다. 여기서 ‘평생현역’이라는 말의 의미가 달라진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건강한 70세가 “나는 일이 즐거우니 75세까지 일하겠다”고 선택하는 것과 연금만으로 생활하기 어려운 70세가 “생활비가 필요하니 계속 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겉으로는 똑같은 고령자 취업이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한 사람에게 노동은 선택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생존일 수 있다. 더구나 모든 사람이 70대, 80대까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본의 건강수명은 남성 72세, 여성 75세 정도다. 평균수명은 이보다 훨씬 길다. 건강상의 제약 없이 살아가는 기간과 실제 수명 사이에는 상당한 간격이 존재한다. 하는 일의 종류도 중요하다. 자기가 평생 쌓은 전문지식을 활용해 75세에도 자문이나 교육을 하는 사람과 물류센터에서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75세를 같은 ‘고령자 취업’이라는 하나의 통계로 묶을 수 있을까. 과거 내가 만난 야마토 물류센터의 70대 남성은 자기의 일에 대해 “스포츠짐에서 운동하면서 돈까지 받는 느낌”이라고 유쾌하게 표현했다. 건강하기 때문에 가능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20㎏에 이르는 물건을 다루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모든 70대에게 이런 노동이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몇 살까지 일하는가가 아니라 왜 일하고 있으며 어떤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가이다.

‘일할 권리’와 ‘일하지 않을 권리’


초고령사회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고령자도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좋은 사회라고 생각해 왔다. 물론 그렇다. 65세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능력과 의욕이 있는 사람을 노동시장에서 밀어내는 것은 옳지 않다. 건강하고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70세, 75세에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초고령사회가 만들어가야 할 중요한 변화다. 하지만 그 반대편의 권리도 생각해야 한다. 일하지 않아도 인간다운 노후를 살아갈 권리다. 연금과 사회보장이 충분하지 않아 70대, 80대에도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면 그것을 단순히 ‘활기찬 고령사회’라고 부를 수는 없다. 따라서 초고령사회가 보장해야 할 것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다.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일할 권리를, 쉬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일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

‘평생현역’이 아름다운 말이 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가 함께 존재해야 한다.

초고령 사회인 일본에서는 80세에도 일을 한다. 사진은 초고령 사회에서 일하는 고령의 일본인을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사진=챗 GPT 생성이미지 확대보기
초고령 사회인 일본에서는 80세에도 일을 한다. 사진은 초고령 사회에서 일하는 고령의 일본인을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사진=챗 GPT 생성

한국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가 된다. 한국에서도 정년 연장과 계속고용, 국민연금 수급연령, 노인 일자리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초고령사회가 진행될수록 “몇 살까지 일해야 하는가”라는 논쟁은 더욱 커질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경험을 보면서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정년을 몇 살까지 늘릴 것인가’가 아니라 ‘70세의 사람에게 어떤 일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이다. 50대까지 한 일을 70대까지 같은 시간, 같은 강도로 계속하라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평생 축적한 경험과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만들고, 새로운 분야로 이동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다시 배울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 초고령사회에서는 평생교육의 의미도 달라져야 한다. 노년의 여가를 채우기 위한 취미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50대와 60대부터 자기의 다음 20년을 준비하고, 새로운 일을 배우고, 기존의 경험을 새로운 사회적 역할로 전환하도록 돕는 ‘인생 전환을 위한 평생학습’이 필요하다.

필자는 그동안 일본에서 만난 일하는 고령자들에게서 초고령사회의 가능성을 보았다. 일을 통해 사람과 연결되고, 자기 경험을 사회에 돌려주며,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는 모습은 분명히 한국인인 우리가 배울 만한 일본의 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장면의 뒤편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는 “더 일하고 싶다!”는 고령자의 목소리에 부응하겠다고 한다. 반면 인터넷에서는 “죽을 때까지 일하라는 것이냐”고 묻는다. 두 목소리 가운데 어느 하나만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 두 목소리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초고령사회의 본질적인 딜레마인지 모른다. 80세에도 일할 수 있는 사회와 80세까지 일해야만 하는 사회는 전혀 다른 사회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초고령사회는 사람을 더 오래 노동시장에 붙잡아 두는 사회가 아닐 것이다.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계속 일할 기회를, 쉬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안심하고 쉴 수 있는 노후를, 새로운 역할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다시 배울 기회를 주는 사회여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몇 살까지 일했느냐가 아니다. 그 일을 내가 선택할 수 있었느냐이다. ‘평생현역’이라는 말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도 그것이 생존을 위한 의무가 아니라 삶의 선택일 때일 것이다.

도쿄= 신현정 중부대 교수(교육학) 릿쿄대학 객원 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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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 중부대 교수/릿쿄대학 객원교원



신현정 중부대 교수/릿쿄대학 객원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