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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간첩죄 넓혀도 반도체 기술유출 ‘인력 통로’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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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간첩죄 넓혀도 반도체 기술유출 ‘인력 통로’ 여전”

FT “CXMT 상반기 매출 약 9배…D램 점유율 9.5%로 상승하며 한국 추격”
퇴직 기술자에 2~3배 연봉 제시…새 법도 ‘국가기밀·외국 연계’ 입증이 관건
경기도 수원의 삼성전자 본사.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경기도 수원의 삼성전자 본사. 사진=로이터

한국이 외국을 위한 산업기밀 유출까지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73년 만에 법을 손질했지만 반도체 기술유출을 둘러싼 구조적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 메모리 업체들이 빠르게 기술 격차를 좁히는 가운데 대기업뿐 아니라 보안 역량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 협력업체가 기술유출의 주요 경로가 되고 있고, 퇴직 임원과 고급 엔지니어를 거액에 영입하는 방식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의 간첩죄 확대가 산업스파이에 대응하기 위한 법적 공백을 메우지만 기술인력의 해외 이동을 통한 유출까지 근본적으로 차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12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13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형법에 따라 외국을 위해 ‘국가기밀’을 빼돌린 사람은 간첩죄로 기소돼 최대 30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기존에는 ‘적국’을 위한 간첩행위만 처벌할 수 있었고 실제로 적국은 사실상 북한으로 한정돼 있었다.

그러나 FT가 주목한 것은 법 개정 자체보다 이를 촉발한 산업 현장의 변화다.

◇ 中 CXMT 매출 9배 급증…기술격차 빠르게 축소


한국에서 반도체 기술보호 문제가 더욱 긴박해진 배경에는 중국 메모리 기업들의 급속한 성장이 있다.

중국 최대 D램 업체인 CXMT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224억달러(약 30조1000억원)로 전년 동기보다 거의 9배 늘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CXMT가 세계 D램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올해 1분기 7.6%에서 2분기 9.5%로 높아졌다. 삼성전자는 39.4%, SK하이닉스는 24.9%였다.
중국의 추격과 한국 기술유출 사건이 맞물린 사례도 나타났다.

한국 검찰은 지난해 12월 삼성전자 전직 직원 10명을 삼성의 18나노미터 D램 제조기술을 CXMT에 넘긴 혐의로 기소했다. 경찰은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삼성의 제조공정 수백 단계를 손으로 적은 뒤 CXMT에 합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은 대규모 국가 투자와 자체 엔지니어링 역량 향상에 기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권 교수는 “중국은 어쨌든 도달했겠지만 산업스파이가 그 시점을 앞당겼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이 법적 처벌을 강화하더라도 중국 반도체 산업의 자체적인 기술 향상과 한국 인력·기술 유출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는 의미다.

◇ 기술유출 86%가 중소기업…대기업 밖이 더 취약


FT에 따르면 기술보호의 또 다른 취약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바깥에 있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소재·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도 핵심 공정과 관련한 민감한 정보에 접근하지만 대기업처럼 충분한 보안 인력과 자원을 투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전체 기술유출 사건의 86%가 중소기업과 관련돼 있었다.

해외 기술유출 적발 건수도 지난해 33건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중국과 관련돼 있었고 반도체가 가장 많이 표적이 된 산업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SK하이닉스 협력업체의 전 직원이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관련 민감한 기술을 중국으로 가져가려 한 혐의로 출국 직전 김포공항에서 체포됐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기술보호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회사의 보안만 강화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 전체의 보안 수준에 달려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 2~3배 연봉으로 기술자 영입…법 강화 후에도 ‘통로’ 존속


FT는 기술유출에서 가장 두꺼운 통로 가운데 하나로 퇴직 임원과 고급 엔지니어 영입을 지목했다.

권 교수에 따르면 해외 기업들은 이들에게 이전 직장에서 받던 연봉의 2~3배를 제시하는 경우가 있으며 채용은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의 페이퍼컴퍼니나 컨설팅 회사를 거쳐 이뤄지기도 한다.

법이 강화됐다고 해서 이 같은 영입 경로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새 형법을 실제 적용하려면 검찰은 유출된 정보가 ‘국가기밀’에 해당한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여기에 해당 행위가 외국 국가 또는 이에 준하는 조직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도 증명해야 한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간첩죄 대신 지난 6월 처벌이 강화된 산업기술보호법 등을 적용해야 한다.

결국 법 개정으로 과거보다 강력한 처벌 수단은 확보했지만 모든 해외 기술유출 사건을 간첩죄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권 교수는 퇴직 엔지니어들이 해외에서 받을 수 있는 강한 경제적 유인과 취약한 퇴직 후 경력관리가 계속되는 한 산업스파이와 연결되는 기술유출 경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기술 추격이 빨라지는 상황에서 한국의 과제도 처벌 강화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핵심 기술을 가진 인력의 해외 이동과 중소 협력업체의 보안 취약성까지 관리할 수 있느냐가 새 제도의 실효성을 가를 것으로 FT는 분석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