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연준 금리 인상에 사모펀드 ‘좀비’ 악몽…3490억달러 묶여

글로벌이코노믹

연준 금리 인상에 사모펀드 ‘좀비’ 악몽…3490억달러 묶여

10년 넘긴 투자자산 사상 최대…기업 매각·신규 자금조달도 더 어려워질 전망
케빈 워시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케빈 워시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로이터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이 이미 투자 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모펀드 업계의 부담을 한층 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보유기간이 10년을 넘긴 이른바 ‘좀비펀드’에 묶여 있는 투자자산은 사상 최대인 3490억달러(약 482조원)에 달한다. 금리가 더 높아지면 인수기업의 이자 부담이 커지고 기업을 원하는 가격에 매각하기도 어려워져 투자자에게 자금을 돌려주는 시점이 더 늦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연준이 지난 16일(이하 현지시각)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면서 사모펀드 업계가 직면한 투자 회수 정체가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17일 보도했다.

사모펀드 업계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금리 하락을 기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케빈 워시를 연준 의장으로 임명하면서 금리 인하 기대가 커졌고 인수·합병 거래도 살아나는 조짐을 보였다.

그러나 물가 압력으로 연준이 오히려 금리를 인상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이달 들어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블랙스톤, KKR 등 대형 대체투자 운용사의 주가는 금리 인상 전망이 강해지는 과정에서 하락했다.

◇10년 넘긴 ‘좀비펀드’ 3490억달러

사모펀드는 연기금과 보험사 등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은 뒤 차입을 활용해 기업을 인수하고 통상 10년 안에 해당 기업을 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한다.

그러나 금리가 오르면 인수한 기업의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는 동시에 새로운 인수자가 높은 가격을 지불하기 어려워진다.

기업 매각이 지연되면 투자자에게 자금을 돌려주는 시점도 늦어진다.

피치북에 따르면 미국 사모펀드가 운용하는 자산은 2조달러(약 2763조원)를 넘는다.

이 가운데 설정 후 10년을 넘긴 사모펀드에 묶인 순자산가치는 지난해 말 3485억달러 수준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WSJ는 이를 약 3490억달러 규모의 ‘좀비펀드’ 자산으로 표현했다.

지난 2021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10년 이상 된 펀드에 묶인 투자자산은 약 65% 증가했다.

문제는 그 뒤를 잇는 펀드도 많다는 점이다.

현재 설정 후 7~10년 된 미국 사모펀드에는 약 5000억달러(약 691조원)가 묶여 있다. 기업 매각이 계속 늦어질 경우 이 자산 가운데 상당 부분도 10년을 넘길 수 있다.

미첼 맨스필드 크롤 전무는 “좀비 구간으로 들어가는 펀드가 늘어날 것”이라며 “펀드 수명이 길어질수록 투자자의 자본수익률이 정체됐다가 결국 하락한다”고 말했다.

◇투자 회수 막히자 신규 펀드 조성도 급감

기업 매각 지연은 새로운 펀드를 만드는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다.

기존 펀드에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한 연기금과 보험사 등이 새로운 펀드 출자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모펀드의 올해 자금조달 규모는 적어도 2020년 이후 가장 부진한 수준으로 향하고 있다.

피치북에 따르면 사모펀드 업계가 올해 들어 11일까지 조달한 자금은 2119억달러(약 293조원)다.

2025년 전체 조달액은 3344억달러(약 462조원)였으며 2024년에는 3769억달러(약 521조원)였다.

수익률도 약해졌다.

사모펀드의 2025년 평균 수익률은 약 7%로 2011년 이후 가장 낮았다.

미국 경제가 견조한 성장세를 나타냈음에도 성과가 악화된 것이다.

스콧 클라인먼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공동대표는 “운용사 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며 지난 10년 동안 빠르게 성장했던 일부 운용사는 규모를 다시 축소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AI 충격까지 겹친 소프트웨어 투자

금리 상승 외에 인공지능(AI)도 사모펀드 업계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피치북에 따르면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지난 10년 동안 투자자금의 평균 14%를 소프트웨어 기업에 투입했다.

특히 금리가 낮았던 2020~2021년 소프트웨어 기업 인수가 집중됐다.

최근 AI 기술이 기존 소프트웨어 사업모델을 위협하면서 당시 인수한 기업들의 가치와 채무상환 능력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WSJ는 해당 기업의 인수금융 만기가 돌아오는 내년과 2028년에 채무불이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기술투자 전문 사모펀드 토마브라보는 올해 고객서비스 소프트웨어 업체 메달리아가 채무불이행에 빠지고 채권단이 경영권을 넘겨받으면서 50억달러(약 6조9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잃었다.

클리어레이크캐피털이 투자한 소프트웨어 업체들도 압박을 받고 있다.

사모대출 펀드들의 규제당국 제출자료에 따르면 인사관리 소프트웨어 업체 코너스톤온디맨드의 21억달러(약 2조9000억원) 규모 대출과 의료 소프트웨어 업체 심플러소프트웨어의 약 15억달러(약 2조1000억원) 대출 가치는 30% 넘게 낮아졌다.

아난트 쿠마르 베네핏스트리트파트너스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높은 금리가 장기간 이어지면 이런 기업들의 압박이 커지고 채무불이행도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사모대출까지 동시 압박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또 다른 핵심 사업으로 키워온 사모대출도 금리 상승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금리가 높으면 대출을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이자수익이 늘 수 있지만 차입기업의 상환 부담도 함께 증가해서다.

기업 부실이 늘어나면 사모대출 운용사의 손실 위험도 커질 수 있다.

특히 투자 회수 부진으로 기존 사모펀드 수익률이 악화되고 신규 자금조달마저 줄어들 경우 운용사가 받는 수수료 수입도 감소할 수 있다.

앤절라 로델 스타마운틴캐피털 선임고문은 앞으로 기관투자자들이 확신을 가진 일부 운용사에만 다시 자금을 맡길 가능성이 크다며 더 많은 사모펀드가 문을 닫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WSJ는 연준의 이번 금리 인상이 사모펀드 업계가 기대했던 자금조달 환경 개선을 다시 미루면서 기업 매각 지연과 투자금 회수 정체, 신규 펀드 조성 부진이 서로를 악화시키는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