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5세 공무원 대상 ‘퍼스트데이트’ 시범…노벨상 수상자 알고리즘으로 한 번에 1명 매칭
이미지 확대보기합계출산율이 사상 최저인 0.87명까지 떨어져 비상이 걸린 싱가포르에서 정부가 젊은 공무원들의 만남을 직접 주선하는 데이팅 플랫폼을 시범 운영하고 있어 이목을 끌고 있다.
이 플랫폼은 관심사와 생활습관, 가치관을 설문으로 파악한 뒤 수많은 상대를 보여주는 대신 한 번에 한 명만 연결하는 방식이다. 매칭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연구로 유명한 수학 알고리즘까지 동원됐다.
싱가포르 정부가 국민의 연애와 결혼에 관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 1980년대부터 정부 주도의 만남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싱가포르는 40여년이 지난 지금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정부 중매’ 실험에 다시 나섰다.
알자지라는 싱가포르 정부기술청이 공공부문 종사자를 대상으로 데이팅 플랫폼 ‘퍼스트데이트(FirstDate)’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고 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알자지라는 “이번 실험은 각종 현금지원과 주거·육아 지원에도 좀처럼 반등하지 않는 싱가포르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국가 차원의 오랜 고민의 연장선”이라고 분석했다.
◇프로필 무한 스와이프 대신 한 번에 1명
퍼스트데이트는 정부기술청 직원들이 매년 개최하는 해커톤에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만든 시범사업이다.
현재 대상은 21~35세의 미혼 공공부문 종사자다.
참가자는 싱가포르 국가 디지털 신원인증 시스템으로 로그인한 뒤 관심사와 생활습관, 가치관, 원하는 상대 등에 관한 설문에 답한다.
이후 플랫폼은 한 번에 한 명의 상대를 추천한다.
틴더나 범블 등 일반 데이팅 플랫폼에서 이용자가 수많은 프로필을 넘겨보며 상대를 고르는 방식과 다르다.
매칭에는 ‘게일-섀플리 안정 결혼 알고리즘’이 사용된다.
수학자 데이비드 게일과 로이드 섀플리가 1962년 개발한 것으로 서로 다른 두 집단 구성원의 선호순위를 토대로 안정적인 짝을 찾는 방식이다.
섀플리는 이와 관련된 안정적 배분과 시장설계 연구로 2012년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 알고리즘의 변형은 학교 입학이나 의사 수련병원 배치 등에도 활용된다.
퍼스트데이트는 이를 연애 상대 찾기에 적용했다.
다만 정부기술청은 아직 시범사업 단계이며 공공부문 밖의 일반 시민에게 서비스를 확대할지는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돈을 줘도 안 낳는다…출산율 0.87명
정부가 젊은 공무원들의 데이트까지 주선하게 된 배경에는 심각한 인구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지난해 태어난 아기가 3만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합계출산율은 0.87명으로 사상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인구 유지에 필요한 2.1명과 큰 격차다.
인구 약 600만명의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에서 저출산과 빠른 고령화는 노동력과 경제성장, 노인 부양을 동시에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다.
간 킴 용 부총리는 지난 2월 별다른 정책 대응이 없다면 2040년대 초부터 싱가포르 시민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노동력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이민에도 크게 의존하고 있다.
향후 5년 동안 매년 2만5000~3만명의 신규 시민을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하지만 이민 확대는 싱가포르에서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다.
정부가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제공하는 지원도 상당하다.
로런스 웡 총리는 지난 8월 출생부터 17세까지 자녀 한 명당 약 7만싱가포르달러(약 7456만원)에 이르는 각종 재정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지원 확대에도 젊은층의 결혼과 출산 의향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1984년에도 정부가 소개팅 주선
정부가 국민의 만남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싱가포르에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싱가포르 국부로 불리는 리콴유 초대 총리는 1983년 대졸자, 특히 대졸 여성들이 늦게 결혼하고 상대적으로 아이를 적게 낳는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당시 발언은 이른바 ‘대결혼 논쟁’으로 이어졌다.
이듬해 정부는 대졸 미혼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사회개발단위(SDU)를 설립했다.
정부가 파티와 각종 행사를 열어 싱글 남녀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조직이었다.
대졸자가 아닌 사람을 위한 별도 조직도 이듬해 만들어졌다.
싱가포르 정책연구소의 탄 언 서 수석연구원은 “싱가포르 정부는 역사적으로 사랑과 결혼 같은 사적인 영역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고 설명했다. 다만 과거 정부의 중매 프로그램이 출산이나 결혼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거나 비용 대비 효과가 높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40년 뒤 싱가포르 관료들은 과거의 사교행사 대신 알고리즘이라는 새로운 수단을 꺼내든 셈이다.
◇“국가가 배우자 배정하나”…젊은층 반응 엇갈려
정부가 만든 데이팅 플랫폼을 바라보는 젊은층의 반응은 엇갈린다.
일부 공공부문 종사자들은 국가가 신원을 확인한다는 점과 한 명씩 상대를 소개하는 방식에 호기심을 나타냈다.
반대로 정부가 연애에까지 개입한다는 점을 불편해하거나 개인정보 수집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온라인에서는 정부가 이제 배우자까지 배정하는 것이냐는 농담도 나왔다.
알자지라가 인터뷰한 한 공공부문 직원은 정부의 데이팅 서비스가 다소 민망하게 느껴진다며 참여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상대를 찾는 기술보다 일상 자체에 있다고 지적했다.
일을 마치고 나면 사람을 만나러 나갈 에너지가 없고 집에서 쉬고 싶다는 것이다.
개인정보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퍼스트데이트 측은 프로필은 연결된 상대에게만 공개되고 양측이 모두 동의해야 연락처를 공유하며 데이터를 수익화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연애 문제 핵심은 알고리즘 아닌 집값·생활비”
일부 전문가와 젊은층은 싱가포르의 연애·결혼 문제를 알고리즘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박사과정 학생이자 전 스트레이츠타임스 기자인 테오 카이 시앙은 “높은 생활비와 주거비가 젊은 싱글들의 만남을 가로막는 더 큰 장애물”이라고 말했다.
늦은 시간 이동비용이 비싸고 높은 집값 때문에 30대가 되도록 부모와 함께 사는 싱글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전체 주민의 약 80%가 공공주택에 살지만 싱글은 원칙적으로 35세가 돼야 혼자 공공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
반면 결혼을 전제로 하는 커플에게는 주택 지원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구조가 제공된다.
이 때문에 연애와 결혼을 순수한 개인 감정보다 주택과 비용을 함께 관리할 상대를 찾는 경제적 의사결정처럼 바라보게 만들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테오는 사람 사이의 사랑이 무엇으로 작동하는지를 사회 전체 수준에서 규정하고 알고리즘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 자체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공과대의 진 류 심리학 부교수도 설문조사만으로 두 사람이 실제로 서로에게 끌릴지를 정확히 예측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참가자가 충분하지 않으면 알고리즘 자체도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서울·도쿄도 ‘정부 소개팅’…아시아 공통 고민
국가나 지방정부가 젊은층의 만남을 지원하는 것은 싱가포르만의 현상도 아니다.
일본 도쿄도는 지난 2024년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데이팅 서비스 ‘도쿄 엔무스비’를 선보였다.
서울시도 한강 등에서 미혼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서울팅’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결혼과 출산이 빠르게 줄어드는 아시아 국가에서 정부가 주거·육아 지원을 넘어 사람을 만날 기회 자체를 늘리는 정책까지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사례는 이런 정책의 한계도 동시에 드러낸다.
싱가포르는 이미 40여년 전부터 정부가 만남과 결혼을 지원해왔고 최근에는 자녀 양육에 수천만원 규모의 지원을 제공하고 있지만 합계출산율은 0.87명까지 내려갔다.
정부가 ‘누구를 만날 것인가’까지 기술로 지원할 수는 있어도 높은 집값과 생활비, 육아 부담, 일과 삶의 방식처럼 젊은층이 결혼과 출산을 망설이는 구조적 요인까지 알고리즘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알자지라는 퍼스트데이트가 싱가포르의 저출산 위기를 해결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면서 정부가 기술을 이용해 국민의 가장 사적인 영역 가운데 하나인 연애에 다시 한 번 개입하는 실험에 나섰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