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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 움직임에 기존 공식 안 통한다…실질금리와 관계 다시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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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 움직임에 기존 공식 안 통한다…실질금리와 관계 다시 흔들

FT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금·채권 관계 변화"
올해 초 되살아났던 역의 상관관계 9월부터 불분명…상승 원인도 여전히 논쟁
지난 1월 28일(현지시각) 독일 뮌헨의 금괴 보관시설에서 직원이 금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1월 28일(현지시각) 독일 뮌헨의 금괴 보관시설에서 직원이 금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로이터

국제 금값과 미국 국채 실질금리 사이에 오랫동안 유지됐던 관계가 최근 다시 불분명해지면서 금 가격을 설명하는 기존 분석 방식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금은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자산이어서 미국 국채의 실질금리가 상승하면 상대적인 투자 매력이 떨어지고 가격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실질금리가 하락하면 금을 보유하는 데 따른 기회비용이 줄어 금값이 상승하는 것이 전통적인 설명이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금값은 이같은 관계에서 크게 벗어났다. 올해 초에는 기존 관계가 일부 회복되는 듯했지만 9월부터 다시 금값과 실질금리의 움직임을 일관되게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금 가격의 변동을 미국 국채 실질금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으며, 중앙은행의 금 매입을 비롯해 그동안 제시된 여러 가설 가운데 무엇이 최근 금값을 움직이는 결정적인 요인인지도 불확실하다고 28일(현지시각) 분석했다.

◇실질금리 오르면 금값 하락…오랫동안 통했던 공식


금은 주식이나 채권과 달리 배당금이나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다.

또 산업용 수요가 일부 있지만 자산으로서의 가치는 금 자체의 실용적인 용도보다 사람들이 금을 얼마나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이 때문에 금융시장에서는 금 가격을 설명할 때 미국 물가연동국채(TIPS)의 실질금리를 중요한 지표로 활용해왔다.

물가연동국채는 물가 상승에 따른 원금의 구매력 변화를 반영하는 미국 국채다.
이 채권의 실질금리가 상승하면 투자자들은 금을 보유하는 대신 물가 상승을 고려한 이자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반면 실질금리가 하락하면 물가연동국채의 상대적인 매력이 낮아져 금에 대한 투자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FT는 금과 물가연동국채가 모두 투자자들이 현재의 구매력을 미래까지 보존하기 위해 활용하는 자산이라는 점에서 이같은 관계를 설명했다.

금은 실질적인 이자 수익을 제공하지 않지만 특정 국가의 채무 이행 능력에 직접 의존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 미국 물가연동국채는 미국 정부가 약속한 채무를 이행한다는 전제에서 구매력 보존 수단으로 기능한다.

따라서 두 자산은 구매력을 유지한다는 공통된 목적을 갖고 있으면서도 투자자가 부담하는 위험의 성격은 다르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관계 변화…금융제재가 변수로


금과 미국 실질금리의 관계가 크게 흔들린 계기로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지목됐다.

FT는 “러시아의 침공 이후 금값이 기존 실질금리 움직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승세를 나타냈다”고 분석했다.

그 배경으로는 미국의 금융제재 가능성을 우려하는 투자자들에게 금과 미국 국채의 성격이 다르게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해석을 제시했다.

미국 정부의 제재 대상이 될 위험이 있는 투자자에게 미국 국채는 구매력을 보존하는 수단으로서 한계를 가질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채무를 정상적으로 이행하더라도 제재로 인해 관련 금융자산을 자유롭게 활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금은 미국 정부의 채무 이행에 직접 의존하는 자산이 아니다.

FT는 “이같은 차이가 미국 실질금리와 금값의 기존 관계를 변화시킨 배경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금융제재에 대한 우려가 금값 상승의 원인이라는 점을 확정적으로 입증한 것은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금 가격이 크게 상승한 이유를 둘러싸고 금융시장에서는 여러 설명이 제기돼왔다.

◇중앙은행·중국·스테이블코인…금 매입 주체 놓고 다양한 해석


금값이 미국 실질금리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이후 금융시장에서는 그 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가설이 등장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이다.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자산의 구성을 조정하면서 금 수요를 늘렸고 이것이 실질금리 상승에 따른 가격 하락 압력을 상쇄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부펀드의 금 매입도 가능한 요인으로 거론됐다.

중국의 금 수요가 국제 가격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가상자산 시장과 관련해서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 테더의 금 매입이 가격 상승에 기여했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금융시장과 통화체제의 불안에 대비해 금을 축적하는 투자자들의 수요가 늘어났다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FT는 “이같은 요인들이 금값 상승에 각각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 분명하게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정 매입 주체의 수요가 금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있지만 이를 전체 가격 움직임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중앙은행과 국부펀드, 중국 투자자, 스테이블코인 업체 등의 수요가 동시에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FT는 “금값 상승을 설명하는 여러 가설이 제시됐지만 어느 것이 가격을 결정했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분석했다.

◇올해 초 되살아난 관계…9월부터 다시 불분명


금과 실질금리의 관계가 영구적으로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FT에 따르면 올해 첫 7개월 동안에는 금값과 미국 물가연동국채 실질금리 사이에 과거와 비슷한 역의 상관관계가 다시 나타나는 듯했다.

실질금리가 상승하는 상황에서 금 가격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면서 과거의 가격 결정 방식이 다시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이는 2022년 이후 나타난 금 가격의 급격한 변화가 일시적인 수준 조정이었고 이후에는 실질금리와 금값의 기존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는 해석을 뒷받침하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9월 이후에는 가격 변동의 양상이 다시 복잡해졌다.

FT는 최근 금값과 채권금리의 움직임을 비교하면 과거의 단순한 역의 상관관계만으로는 시장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는 금 가격이 실질금리와 전혀 관계없이 움직인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질금리와 금값이 일정 기간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더라도 그 관계가 모든 시점에 동일한 강도로 유지되거나 금 가격 변동의 원인을 전부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문제다.

FT는 올해 초 나타난 움직임만으로 과거의 관계가 완전히 복원됐다고 판단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금값 설명하는 단일한 변수 찾기 어려워


금 가격을 둘러싼 분석의 어려움은 금이 다른 금융자산과 구분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채권은 이자 지급과 원금 상환이라는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주식도 기업이 창출하는 이익과 향후 현금흐름을 통해 가격의 적정성을 분석할 수 있다.

반면 금은 보유 자체에서 현금흐름이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금의 적정 가치를 판단하려면 투자자들이 앞으로 얼마나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에 대한 기대가 중요해진다.

FT는 금의 가치가 상당 부분 집단적인 인식에 의존한다는 점이 가격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금이 구매력을 보존하는 자산으로 인식되더라도 투자자들이 어떤 위험을 우려하는지에 따라 선호하는 자산은 달라질 수 있다.

미국 국채의 실질금리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때도 있지만 금융제재 가능성이나 특정 투자 주체의 매입 수요가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시기도 있을 수 있다.

다만 FT는 이같은 변수들의 영향을 종합하면 금값의 모든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결론도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한된 시장 자료에서 의미 있는 관계를 지나치게 찾아내려는 경향을 경계했다.

FT는 심리학에서 무작위 자료나 사건 사이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의미 있는 패턴을 발견하는 현상을 뜻하는 '아포페니아'를 언급하며 금 가격을 설명하는 기존 가설들을 다시 검토할 필요성을 시사했다.

이는 최근 금값 변동에 관해 명확한 원인이나 일관된 가격 결정 공식을 찾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