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형록 교수의 변화를 넘어 미래로] <1>사이비 변화(pseudo-change)에서 탈출하라
"옛날에 내가 다 해봤다"며 과거의 경험을 반복한다면 대표적 사이비 변화 증거근본적인 문제 발굴해내고 엄중하게 분석·매진해야 역동성과 새로움 되찾아
‘변화 매너리즘’ ‘혁신 피로감’과 같은 용어가 기업 현장에서 회자되고 있다. 변화와 혁신이 마땅히 보여줄 가슴 벅찬 전율이 사라졌으니 가위 역설적인 표현이다. 성공적인 변화와 혁신에서 나타나는 감격은 그 저변에 내포된 역동성과 새로움에서 시작된다. 역동성과 새로움은 환경이나 경쟁에 시의적절하게 부응하고 현재와는 다른 더 나은 상태를 지향함을 의미한다. 참신한 활력이 사라지고 나면 변화와 혁신은 의미가 없다. 매너리즘과 피로감에서는 펄떡이는 물고기의 신선한 활기는 찾아볼 수 없다.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이와 같은 침체된 분위기가 만연해보인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는 어느 때보다 변화와 혁신을 종용하고 있다. 실제로 너도 나도 더욱 늦게까지, 더욱 많이 해내고 있다. 직장과 가정에서 열심히들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출근시간을 오전 8시, 7시로 앞당기거나 퇴근시간을 늦추기도 한다. 초등학생이 중학수학을, 심지어 고등수학까지 미리 공부한다. 그러나 빠듯하고 가중된 변화를 열심히 추구하는 데도 뚜렷한 성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그럴수록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는 자학적인 수준의 변화를 더욱 강요하는 악순환이 깊어지고 있다.
전국에 설치된 무선통신망 장비를 운영하는 회사의 프로젝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장비들이 노후화되어 효과적인 고장 처리 및 수리 절차를 강구하는 임무였다. 운영 중인 장비가 고장 나면 주변의 전화가 불통되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한다. 고장이 잦고 복구시간이 늦어질수록 고객 불만은 급증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런데 기술적인 분석 결과 장비는 아직 노후화 단계가 아니었다. 장비 노후화를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프로젝트 의뢰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한참 후에나 이 사실을 발견했다. 결론적으로 운영 중인 통신장비를 잘 모니터링하고 간단한 예방 점검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연구 결과에 기뻐할 줄 알았던 담당 직원들과 관리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처음에는 분석 자료와 논거를 의심했다. 종국에는 장비 노후화로 최고 경영진까지 이미 보고되었고 전사에 공론화된 상황을 뒤집기가 힘들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하소연했다. 추측하건대 이들이 설치된 장비가 노후화 단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왜 애초에 문제의 원인을 장비 노후화에서 찾았고, 이견을 피력해야 할 동료들도 여기에 함구했을까? 곰곰이 반추해 보면 ‘장비 노후화’에는 책임질 사람이 없다. 시간이 경과하면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굳이 따지자면 시간이 책임질 문제가 되어 버린다. 문제의 원인을 발본색원하는 일이란, 기업에서는 서로의 잘잘못을 따져야 하는 피곤하고 치열한 고역인 경우가 많다. 장비 노후화는 이를 피해갈 수 있는 손쉬운 방책이다. 서로 머리 아플 일도 없으니 중립적인 자세로 모두들 동의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근본적인 문제를 기피하는 사이비 변화는 프로젝트를 의뢰할 만큼 열정도 있고 계속 무엇인가를 시도한다. 표면적으로는 변화와 구별하기 힘들지만 성과 측면에서 업무 부실이나 태만처럼 미흡할 수밖에 없다.
헤드와 소렌슨은 과거의 경험을 반복하는 행동을 대표적인 사이비 변화로 꼽는다. 어떤 문제이든 해법은 ‘내가 옛날에 다 해봤는데……’라는 동일한 관점에서 제시된다. 문제를 깊이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 해법이 효과가 없다고 확인이 되더라도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의 횟수에서 실패의 원인을 따지기 십상이다. 단기간 내에 효과가 가시화되지 않을수록 과거의 해법을 무의미하게 반복하게 된다.
과거의 행동방식을 반복하거나 시간을 과도하게 할애하는 사이비 변화는 두 가지 이유로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내가 옛날에 다 해봤는데……’로 무장한 아집 앞에서 우리는 약자인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아집을 부리는 사람은 연장자이거나 상급자이기 때문이다. 둘째, 이 사이비 변화를 충실하게 따르는 사람을 조직과 사회에서 충성심이 강하거나 성실하다고 평가한다. 심지어 본인이 자랑스러워 그렇게 자평하기도 한다.
과거의 경험과 방식을 무시하고 폐기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과거의 경험은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진부화시켜 버리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예외는 없다. 확고해 보이는 과거의 경험도 효력이 약화될 수 있다. 터쉬만과 오레일리(Tushman& O'Reilly)는 과거의 성공 경험이 현재나 미래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라는 믿음이 실패를 부른다고 경고했다. 과거의 성공이 지금의 성공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를 성공증후군(success syndrome)이라고 부른다.
모름지기 과거의 기준과 표준이 재설정되는 뉴노멀(new normal)시대이다. 과거에 했던 방식을 더 열심히 한다고 돌파할 수 없을 것이다. 역동성과 새로움을 잃은 조직 변화에서 사이비 변화를 다잡아야 한다. 진정한 변화를 조성할 근원적인 문제를 발굴하고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멋들어진 문구나 스쳐지나 갈 감동으로 변화를 강권하던 시기는 지났다. 자타의 구분 없이 엄중하게 분석하고 치열하게 매진해야 역동성과 새로움을 되찾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도 자타를 막론하는 변화의 역동성과 새로움을 표현하고자 다음의 경구를 남기지 않았을까.
어느 누구도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 강물도 사람도 같지 않기 때문이다.
(No man ever steps in the same river twice, for it's not the same river and he's not the same man.)
우형록 한양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