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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의 스틸스토리] 노후 제철소, 미술관‧놀이터‧스포츠 시설로 화려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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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의 스틸스토리] 노후 제철소, 미술관‧놀이터‧스포츠 시설로 화려한 부활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등의 훈련장소로 변신한 중국 사우강제철소.이미지 확대보기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등의 훈련장소로 변신한 중국 사우강제철소.
베이징 동계올림픽 대회가 치러지면서 베이징(北京) 외곽 철강 산업의 중심지였던 스징산(石景山)구의 버려진 서우강(首鋼)제철이 다시 태어났다.

버려진 제철소 공장 터는 빙산트랙으로 바뀌었다. 이곳에서 쇼트트랙, 피겨, 컬링 종목에 참가한 중국 대표팀 선수들이 훈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 세계의 낙후된 철강공장들이 미술관이나 놀이터 전시관 등의 관광명소로 바뀐 사례는 많으나 빙산트랙과 같은 스포츠 시설로 활용된 사례는 별로 없다.
서우강제철이 철강생산을 위해 첫 가동을 시작한 것은 1919년이다. 위치는 베이징 서쪽의 스징산(石景山)구이다. 이곳에서 서우강제철은 연간 1000만 톤(전 지역 총 생산 3140만 톤)에 달하는 철강재를 생산했다. 한창 풀가동될 시기에는 근로자 수가 20만 명에 달했다.

서우강제철은 중국 주요지방에서 똑같은 이름표를 달고 지금도 생산 활동에 여념이 없지만, 베이징공장은 수도권에 위치한 이유로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낙인 찍혀 지난 2011년 1월 전격적으로 폐쇄되었다. 당시 연산 800만 톤의 철강재를 생산하면서 연간 9000톤의 오염물질을 배출시켰다.

베이징 공장이 폐쇄된 대신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220㎞ 떨어진 보하이만(渤海灣)에 21㎢ 규모의 새 공장을 건설했다. 이 시기는 중국의 철강 산업이 재편되는 분기점이며, 노후된 철강 공장을 폐쇄하고 수출입이 용이한 해안지역으로 새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사우강제철이 빙상경기장으로 바뀐 이유는 순전히 운이라고 봐야 한다. 탄소배출을 줄이려는 중국의 노력이 탄력을 받고 있을 때 마침 베이징 올림픽이 결정되었고, 조직위는 친환경 올림픽을 연다는 가시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버려진 사우강제철 베이징 공장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버려진 공장 터의 활용에 골머리를 앓던 중국 당국과 친환경 올림픽을 주창한 조직위의 손뼉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공장 폐쇄 5년 만에 조직위는 공장을 리모델링해서 사무실로 꾸며 2016년 5월 입주했다. 공장 터는 대표선수단의 훈련장으로 사용한 것을 비롯해서 가동을 멈춘 냉각탑 발전장치 옆에다 스노보드 빅에어 경기장을 건설했다.

사오강제철소가 빙상 경기장으로 부활한 것은 대기오염 배출이 가장 많은 업종이 철강 산업이란 점과 세계의 최대의 철강생산량을 보유한 중국이란 이미지를 단번에 쇄신할 수 있는 남다른 올림픽 전략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한국보다 10배나 많은 철강을 생산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철강기업은 허베이(4280만 톤 생산), 바오스틸(4270만 톤 생산), 우한그룹(3640만 톤 생산), 사강그룹(3230만 톤 생산), 서우강제철(3140만 톤 생산), 안산강철(3020만 톤 생산) 등이다. 서우강제철 중국내 5위의 철강기업이다. 이 기업들은 전세계 10대 철강기업에 랭크된 철강 강자들이다.

중국의 대부분의 제철소는 낙후된 고로를 사용하기 때문에 서우강제철과 같이 환경과 원가 경쟁력이라는 운명 앞에서 고로의 불을 꺼야하는 운명을 맞겠지만 그것도 서우강제철처럼 운 때가 맞아야 부활할 수 있게 된다.

세계 철강 강자들의 ‘부침의 역사’와 부활의 모습‘을 소환해 보면 그 역사의 빛과 그림자는 냉혹하다.

독일 뒤스부르크의 마이더리히 제철소.이미지 확대보기
독일 뒤스부르크의 마이더리히 제철소.

독일 뒤스부르크 제철소는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최강의 철강기업이었지만 지금은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19세기 중엽 산업화의 바람은 잠자던 도시 뒤스부르크 북부를 흔들어 깨웠다.

아우구스트 티센(August Thyssen)이 소유하고 있던 광산 인근에 1901년부터 광산업 주식회사로 하여금 마이더리히(Meiderich)에 용광로를 짓도록 한 데서부터 뒤스부르크 제철소 이야기는 시작된다.

프리드리히 티센 코크스 제조소(아우구스트 티센의 아버지)에서 생산된 코크스가 공중케이블카를 타고 마이더리히의 용광로까지 운송되던 시대의 뒤스부르크는 독일 경제 부흥의 대명사였다.

그렇게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내는 동안 케이블카의 자일도 제 몸을 아끼지 않았다. 풍부한 석탄을 캐는 일은 한국인 파독 광부들의 몫이었다.

지난 1964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 순방 중에 광부들을 만나서 격려의 말을 하다가 “이게 무슨 꼴이냐”면서 눈물을 흘렸던 곳도 뒤스부르크 광산이다. 55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철강 강국으로 우뚝 섰고, 독일의 마이더리히 제철소의 용광로(1985년)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낙후된 설비와 제조원가 경쟁력이 낮은 마이더리히제철소는 제 역할 수행이 어려워졌다. 세계를 석권했던 마라톤 금메달리스트가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진 것과 같이 마이더리히제철소도 용광로의 불을 끄고 버려진 도시로 전락했다.

폐허가 된 제철소와 주변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지금 이곳에서는 팬데믹으로 여행자의 발길이 뜸하지만, 수년전만 하더라도 연간 100만 명이 찾는 관광 명소로 다시 부활했다. 제철소에 물을 공급하던 수조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수중 다이빙을 하고, 철강재 골격이 그대로 드러난 공간에서는 서커스가 벌어지기도 한다.

1980년 불황으로 쇠퇴한 빌바오 제철소가 1997년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새로 태어났다. 사진=구겐하임 미술관
1980년 불황으로 쇠퇴한 빌바오 제철소가 1997년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새로 태어났다. 사진=구겐하임 미술관

스페인의 빌바오는 철강, 조선 중심의 도시였다. 1980년 불경기를 맞아 쇠퇴했다. 철강공장이 있던 자리에 1억5000만 달러를 들여 미술관(미국 프랭크게리 설계)을 만들었다.

1997년 완공된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지붕은 메탈플라워가 은빛으로 빛난다. 매년 구겐하임에는 1000만 명의 관광객이 오고, 수천 억 원의 경제 효과를 보고 있다.

낙후된 철강도시를 예술과 낭만이 넘치는 도시로 일신한 것을 일명 ‘빌바오 효과’라고 부르게 됐다. 스페인 철강의 몰락도 설비경쟁력 저하가 원인이다.

미국 피츠버그는 철강과 케첩의 도시에서 엔디워홀 뮤지엄, 팝아트 엘비스 마릴린, 나오미 캠벌 등 앤디워홀의 익숙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예술의 도시로 바뀌었다. 철강 산업의 주도권을 잃게 되면 다음 세대는 철강공장의 상징과도 같은 굴뚝을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문화공간을 선택하는 수순을 밟아 가는 현상이다.

이제 피츠버그에서는 카네기의 이름을 빼고는 철강을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철강트러스트를 형성했던 유통업자들과 아이디어맨들의 비즈니스는 지금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타란토는 이탈리아 최대의 제철공장이 있던 철강도시이자 해군도시였다. '굳건한 도시'라는 뜻의 타란토(Taranto) 폴리아 지역은 철강 산업이 활황을 보였던 곳이지만 지금은 고대 그리스 도자기를 연구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던 서구라파의 철강기업들이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철강 산업에서의 정글의 법칙은 환경, 노후설비, 인건비 상승, 노사분규,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저하, 자국내 철강수급 등을 얼마나 헤쳐 나가느냐는 문제이다.

지금 빙상경기에 나선 선수들이 신고 있는 스케이트의 날은 스테인리스로 구성된 것들이다. 그 스테인리스를 만들었던 제철소 공장 한 복판에서 경기를 치른다는 의미는 색다른 감회를 갖게 한다.

쇼트트랙·스피드 스케이팅·피겨 스케이팅·스키·스노보드·봅슬레이·스켈레톤·루지·아이스하키·컬링 등 모든 경기는 철과 금속으로 만들어진 기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버려진 사우강제철의 부활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김종대 글로벌철강문화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