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결정의 이면에는 회사 측과 영국 정부 당국 양측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있다. 브리티시 스틸과 타타스틸이 가동 중인 오랜된 고로제철소를 친환경 설비로 전환할 것인지, 아니면 스페인 빌바오나 독일 뒤스부르크 제철소와 같이 문화공간으로 아예 바꿀 것인지, 기후 중립과 연관된 전통적인 고로제철소의 처리 과정에 세계 철강산업의 이목이 쏠려 있다.
브리티시 스틸은 지난 2월 스컨소프 제철소의 코크스 오븐을 전격 폐쇄했다. 스컨소프 코크스 오븐이 수명을 다해 운영을 종료할 수밖에 없었고, 폐쇄 이후 대기와 수질 배출량 감소 등 환경적 이점을 가져올 것이라는 명분이었다. 이 여파는 해당 근무자 330명의 직원들에게 정리해고라는 폭풍으로 다가섰다. 노조와 정부 관계자들은 회사 측과 비즈니스 전반에 걸친 협의를 거쳐 회사 측으로부터 다소 희망적인 결론을 이끌어냈다.
노조 측은 회사가 코크스를 직접 만드는 대신 수입체제로 바꾸는 등 제강 공정을 개선하는 것에 대해 더 이상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함으로써 일자리 감축은 일단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중대 현안은 ‘넷 제로’
가장 첨예한 브리티시 스틸의 당면 과제는 ‘넷 제로’이다. 이 과제는 브리티시 스틸 130년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의미한다. 전통적인 고로제철소를 친환경 설비로 전환하려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자되어야 한다. 반면에 제철소 자체를 폐쇄할 경우 사측은 디폴트를 선언해야 하며, 약 4000명의 직원들은 거리로 나 앉게 된다. 이렇게 되면 엄청난 사회문제로 불거진다.
브리티시 스틸은 일단 친환경 설비로의 전환에 방점을 찍었다. 최우선 과제인 탈탄소화를 위해 영국 정부에 손을 내밀었다. 타타스틸은 30억 파운드 이상의 지원금을 요청했다. 영국 정부는 올 1월 4개의 제철소를 운영하는 브리티시 스틸과 타타스틸에 6억 파운드(약 9160억 원) 규모의 공적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두 회사에 각각 3억 파운드의 에너지 비용 지원 패키지를 제공하겠다는 방안이었다. 기업이 요청하는 지원금보다 훨씬 적었다. 브리티시 스틸 역시 더 많은 정부 지원금이 추가되지 않을 경우 고로 전체를 폐쇄하겠다는 초강수를 두었다.

후끈 달은 것은 정치권이다. 정치권과 정부 당국자들은 브리티시 스틸의 코크스 오븐 공장 폐쇄로 벌어진 불협화음이 계속되자 날카로운 비판을 던졌다. 지원자금을 더 받아내기 위해 인력 감축을 내세워 정부를 압박했다고 비난했다. 브리티시 스틸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정리해고를 거두고 다른 일자리로 전환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회사 측이 노조와 정부 측 입장을 수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해고를 취하했으니 정부가 더 큰 지원금을 내놓으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국민세금으로 거둔 지원금 외국기업에 지원
하지만 공교롭게도 브리티시 스틸은 중국 징계그룹, 타타스틸은 인도가 소유권을 갖고 있다. 영국 정부로서는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한 정부 지원금을 해외 기업의 손에 쥐어 주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국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상황이든 영국 철강 산업의 탈탄소화는 산업계 최대의 화두로 등장했다. 당장 올해부터 탄소세 보고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브리티시 스틸과 타타스틸은 이제까지 해왔던 고로 방식의 제철방식에서 철 스크랩을 전기로 녹이는 방식의 전기아크로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지만 막대한 투자금 마련이 걸림돌이다.
영국 철강 산업에 닥친 위기는 정부가 철강 산업 정상화를 위해 어떤 히든카드를 내놓을 것인가에 달린 문제로 보인다. 영국 정부는 일자리와 지원금 확대 사이에서 진퇴양난의 상황을 맞았다. 미국의 인센티브제도 방식을 벤치마킹 할 수도 있지만 첨단 산업이 아닌 전통적인 제철소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브리티시 스틸과 타타스틸이 영국 정부에 지원금을 요청한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탄소 배출권 비용 증가와 에너지 가격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표면화됐다. 사실 타타스틸은 수 년 동안 포트 탤벗 사이트의 장기적인 미래를 정부 측과 논의해 왔었다.
영국 정부의 지원금은 고로제철소를 전기로 방식으로 전환하는 등 친환경적으로 전환할 경우 정부가 일부 자금을 지원한다는 조건부 투자 약속이다. 구체적인 지원금 규모와 대상, 조건, 지급시기, 추가지원책 등은 주 정부와 철강 기업들 간의 조율이 끝나야 명확한 범위가 정해진다.
타타그룹 회장 나타라 잔 찬드라 세카란은 작년 여름 포트 탤벗 사이트가 계속 운영되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금 15억 파운드와 자체 투자금을 포함하여 약 30억 파운드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정부 지원금 찬반 논란
철강 공장의 용광로 폐쇄는 정치권에서 찬반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 브리티시 스틸 스컨소프 공장은 약 4000명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다. 만약 영국 내에서 가동 중인 4개의 용광로 중 하나만 폐쇄되더라도 17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이 여파는 영국 제조업에 수천 개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결국에는 영국의 산업 제조능력에 우선 타격이 되는 동시에 수많은 제조업체들이 수입 철강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번 질 것이란 우려가 정부 지원금 찬성파들의 주장이다.

반대로 정부 지원금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징예그룹(브리티시 스틸)에 보조금을 지원하게 되면, 중국의 세계 철강 생산 지배 구조에 힘을 실었다는 점에서부터, 미국과 유럽지역에 철강 제품을 덤핑 판매할 경우 현지 철강 생산자를 궁지로 몰 것이라고 지적했다. 분분한 의견 때문에 영국 정부는 6억 파운드의 지원금을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지원 시기를 정하지 못한 것이다.
보조금 지원이 실행되지 못하는 또 다른 어려움은 중국과 영국 간의 외교적 긴장이다. 영국 총리 리시 수낵이 지난 해 크리스마스 전 연설에서 베이징의 권위주의적 접근 방식은 양국 외교의 황금시대가 끝났다는 의미의 경고를 했다. 중국에 대한 정치권의 감정이 아직 식지 않은 상태이다.
브리티시 스틸이 징예그룹에 인수된 것은 지난 2020년 3월이다. 징예는 5300만 파운드(840억 원)에 브리티시 스틸 지분 100%를 인수했다. 인수 당시 징예그룹은 총 12억 파운드(1조9009억 원)를 투입해 철근 설비를 새로 건설하고, 철도 공장을 개선한다고 발표했다. 이 투자금은 약 3억3000만 파운드(약 5400억 원)에 달한다. 징예는 더 이상의 자본 출현은 어렵다는 메시지를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브리티시 스틸은 영국 정부의 확실한 정책과 프레임 워크 채택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영국 정부가 기존에 지원하겠다고 제안한 주요 프로젝트에는 5400만 파운드(약 884억 원) 규모의 빌릿 캐스터와 2600만 파운드(약 425억 원) 규모의 마스트 서비스 센터 설치, 그리고 선재 공장에 대한 약 5000만 파운드(약 818억 원) 규모의 업그레이드가 포함된다.
기타 투자에는 브리티시 스틸의 항만 시설 신규 언로더에 3000만 파운드(약 492억 원), 에너지 운영 개선에 1460만 파운드(약 239억 원), 신규 철도 재고 보관 시설에 900만 파운드(약 147억 원)이다. 모든 개발은 브리티시 스틸의 제품 품질과 관련 범위와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이다.
리버티스틸 영국도 구조조정 착수
한편, 산지브 굽타의 타타스틸 자회사인 리버티스틸 영국(LSUK)은 올해 1월에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사우스 웨일즈 뉴포트의 제철소를 유휴 상태로 전환했다. 웨스트 브로미치의 제철소도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저장, 유통, 허브 체제로 전환했다. 구조조정의 중간 조치로 로더럼 공장의 1차 생산량을 감축하고, 로더럼, 스칸소프, 달젤 공장은 압연라인과 최종 마감 라인에 수입 반제품인 빌렛과 슬래브로 대체하는 것이 핵심이다.
약 2000명을 고용하고 있는 리버티스틸 영국은 추가 감축 인원을 노조, 정부와 협의를 거쳐 마무리할 계획이지만, 감축 인원은 대체고용으로 전환된다. 인원 감축은 높은 에너지 비용과 저렴한 수입품의 영향을 포함한 어려운 시장 상황 때문이다. 산지브 굽타는 리버티스틸 영국, 리버티스틸 콘티넨탈 유럽, 리버티스틸 미국, 리버티스틸 호주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결국 영국 정부는 지원금을 늘릴 수 있는 명분이 필요하고. 브리티시 스틸과 타타스틸은 정리해고를 없던 일로 해야 하는 입장이다. 영국 철강 기업의 친환경 설비로의 전환을 놓고 벌어지는 기(氣) 싸움은 팽팽하다. 절대 명제는 기후 중립을 위한 일이다.
김종대 글로벌이코노믹 철강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