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즈 음악은 이렇게 신비롭고 매력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쳇 베이커의 음악에서는 청춘의 냄새가 나고, 가슴의 상처와 내면의 풍경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영동대로 지하에 서울과 수도권의 6개 철도노선이 지나는 광역복합환승센터를 건설했다. 이곳은 지하 6층 규모로 통합철도역사, 지하버스환승센터, 도심공항터미널, 주차장, 상업·공공문화시설 등이 들어선 지하도시다. 여기에 재즈 바와 같은 문화시설이 들어선다면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꿈같은 공간이 될 것이다.
지하도시는 튀르키예의 ‘데린쿠유(Derinkuyu)’와 같은 고대 유적부터 캐나다 몬트리올의 ‘언더그라운드 시티(Underground City)’와 같은 현대적인 복합공간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하도시는 터널 공법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하고 있다.
튀르키예 카파도키아에 있는 ‘데린쿠유’는 1963년 한 농부가 우연히 발견한 지하도시다. ‘깊은 우물’이란 뜻인 이곳은 지하 8층 깊이에 수천 개의 방과 통로가 연결되어 있다. 최대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교회, 학교, 공동주방, 마구간, 와인공장 등이 있고 정교한 환기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4,000년 전 히타이트족이 피난처로 건설했고 기원전 8세기부터 거주한 흔적이 남아 있다.
영국 ‘에든버러’에도 ‘메리 킹스 클로스’라는 지하공간이 있다. 이곳은 흑사병 환자를 격리하기 위해 사용된 골목길(close)들이 1750년대 도시 정비 때 땅에 묻혀 만들어진 공간이다.
현대적인 지하도시는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했다. 지하도시는 캐나다, 핀란드, 홍콩, 일본, 미국 등 세계 10여 개국에 건설되어 있다. 1960년대 건설된 캐나다 몬트리올의 ‘언더그라운드 시티’는 자족적인 생활·문화공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총 연장 32㎞, 연면적 1200만㎡의 거대한 범위에 10개 지하철역과 식당, 상점, 은행, 극장, 박물관, 호텔 등이 들어서 있으며 하루 50만 명이 이용한다.
핀란드 헬싱키와 대만 타이베이, 홍콩 등도 규모는 작지만 몬트리올과 비슷한 개념의 지하도시를 보유하고 있다. 대개 2~3개 지하철역이 연결되어 있으며 쇼핑몰과 문화시설을 갖추고 있다.
일본의 지하도시는 쇼핑몰 중심으로 발달했다. 도쿄, 오사카, 가와사키, 나고야 등지에 있는 5대 쇼핑몰의 크기는 4만2977~8만1765㎡에 달한다. 미국은 애틀랜타, 시카고, 휴스턴, 필라델피아에 크고 작은 지하도시가 있다. 뉴욕 맨해튼에는 2020년에 세계 최초로 ‘로라인 파크(Lowline Park)’가 들어섰다. 이곳은 폐쇄된 지하철 시설에 투명 튜브로 햇빛을 끌어들여 나무와 꽃을 키우는 첨단 기술을 동원한 공간이다. 지하 속에서 자연의 풍경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진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현대적인 지하도시 건설은 터널 공법의 발달로 가능해졌다. 가장 안전한 공법은 1818년에 발명된 ‘쉴드’(shield)이다. ‘쉴드’공법은 템즈강 밑에 터널을 만들기 위해 탄생한 발명이다. 특허의 주인공은 토목기술자 ‘마크 이점바드 브루넬’. 그는 이동이 가능하고 견고한 철강재 프레임으로 제작된 ‘쉴드’를 발명했다.
높이 6.54m, 폭 0.9m, 길이 1.8m, 총 중량 약 120톤의 ‘쉴드’는 템즈강 하저를 뚫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쉴드’공법은 자연현상을 면밀히 관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을 발명한 토목과 과학계의 전설로 남아있다. 브루넬은 조선소에서 목재 선박에 구멍을 뚫고 살아 움직이는 ‘배좀벌레조개’(Yeredo Navalies)의 움직임을 통해 힌트를 얻었다. 머리는 단단한 껍질로 보호되고, 몸통이 전진하지만 배설물로 구멍이 난 부분을 라이닝으로 보호한다. 그리고 연약한 조직을 감싸는 ‘배좀벌레조개’의 독특한 생존형태를 터널 굴착 공법에 적용한 것이다.

1818년 터널 굴착용 ‘쉴드’는 특허 출원됐다. ‘쉴드’의 사전적 의미로 방패, 보호장치이다. 브루넬의 ‘쉴드’는 터널 굴착 중에 발생하는 지반의 붕괴 방지가 목적이었다. 이 장치는 작업 공간을 튼튼한 틀이나 철판으로 방호하는 장치를 우선한다. 이 특허는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터널을 기계식으로 안전하게 굴착하는 데 가장 실용적이고 보다 쉽게 땅굴을 팔 수 있는 손쉬운 장비로 사용되고 있다.
영동대로 지하에 프랑스 ‘라데팡스’나 뉴욕 ‘펜역’과 같은 국내 최대 복합 환승센터를 만날 수 있다면 환상적일 것이다. 잠실야구장의 30배나 되는 거대 지하 도시의 통합역사가 모두 개통되면 하루 평균 58만 명이 오고가는 국내 최대의 대중교통 허브가 될 것이다. 사람의 이동을 넘어 낭만이 흐르고, 문화가 숨 쉬는 예술 공간이 탄생할 것이다. 뚜렷한 문화를 지닌 사람은 물질적인 것에만 탐닉하는 사람이 이길 수 없다. 가족문화, 기업문화 사회문화 국가문화라고 구별한다면 인간이 만든 공간에서 저마다의 문화가 교차되고 어우러질 때 넉넉한 삶의 향기가 풍기는 법이다. 그것을 지하 공간에 창조한다면 외풍에도 끄떡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철강재는 건축 구조물의 뼈대를 형성하면서 지하공간에도 역사를 바꿀 만큼 튼튼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철강만큼 새로운 엔지니어링을 인도하는 건축 재료는 그리 많지 않다. 철은 문화를 안내하는 길잡이인 셈이다.
김종대 글로벌이코노믹 철강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