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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의 스틸스토리: 다리이야기(18)] 바람을 길들이는 미시간의 맥키낙 다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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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의 스틸스토리: 다리이야기(18)] 바람을 길들이는 미시간의 맥키낙 다리(중)

맥키낙 다리의 완공 모습. 사진=맥키낙 브리지 관리당국 홈피이미지 확대보기
맥키낙 다리의 완공 모습. 사진=맥키낙 브리지 관리당국 홈피
맥키낙 다리 설계자 스타인만은 타코마 다리가 개통된 직후 관련된 엔지니어들에게 우려되는 문제점을 이야기했지만 무시당했다고 언론에 밝혔다. 스타인만의 의견을 경청했더라면 타코마 다리가 붕괴되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란 뒤늦은 후회가 아쉬운 대목이다.

다시 타코마 다리가 붕괴되기 직전의 동향을 살펴보자. 타코마 다리가 붕괴되던 날 아침, 다리의 진동이 심해지자 담당 엔지니어는 그때서야 현수교의 강철코일을 대각선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정했다. 스타인만의 충고를 알아들은 것이다. 담당자는 곧바로 전화로 달려가 와이어로프를 조기에 설치하라고 주문했지만 그때는 이미 다리의 경간이 붕괴된 이후였다.
타코마 다리가 무너졌을 당시 불었던 돌풍은 시속 35~42마일(56m~67m)이었다. 타코마 다리는 그 10배에 달하는 수평 풍압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지만 누적된 동적 효과에 의해 파괴된 것이라고 스타인민은 기록하고 있다.

맥키낙 다리도 현수교였으므로 스타인만은 미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강성을 갖춘 구조물을 설계해야 했다. 1951년에 작성된 교량 예비 보고서에는 공기 역학적 힘에 충분한 저항력을 제공하기 위한 몇 가지 전략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교량 아래의 보강 트러스 깊이를 45피트(13m), 즉 중앙 경간 길이의 약 85분의 1로 하는 것이었다. 이 설계는 스타인만의 생각대로 구현되었다.

맥키낙 다리의 보강 트러스트는 도로 아래 약 40피트(12m) 깊이에 있기 때문에 타코마 다리의 측면 거더와 달리 깊은 보강 트러스가 맥키낙 다리의 뒤틀림과 회전하는 것을 방지하게 만들었다.

1951년 보고서는 "바닥과 세로 스트링거를 지탱하고 그 하중을 보강 트러스로 전달하는 (횡단) 바닥 빔은 단단한 웹 거더 대신 개방형 트러스로 설계되어 풍압을 최소화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맥키낙 다리 중앙 차선에는 공기가 통과할 수 있도록 개방형 격자가 있다. 공기가 다리를 밀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바람에 매우 안정적이다. 풍동 실험을 통해 새 다리의 높은 공기 역학적 안정성도 확인되었다.
스타인만이 극복해야 했던 또 다른 장애물은 얼음이었다. 미시간 주의 혹독한 겨울철에 해협을 흐르는 얼음이 현수교의 교각을 밀어낼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스타인만은 교각의 콘크리트 대부분을 수면보다 10피트(3m) 아래에 위치하도록 설계하여 얼음이 수면을 통과할 때 밀어낼 수 있는 단면을 줄였다. 또 얼음이 교각 사이에 끼지 않도록 이중 교각 대신 단일 교각을 만들었고, 교각은 가능한 한 둥글게 설계했다. 그리고 케이블이 연결되는 콘크리트 앵커리지의 속을 비워 앵커리지 블록의 무게를 최소화했다. 깊은 기초에 가해지는 하중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불안 요소를 모두 제거한 이후에 맥키낙 다리는 1954년에 건설을 시작했다. 교량의 주 교각 건설은 거대한 강철 케이슨을 해협 아래의 진흙 속에 가라앉히고 암반에 그것을 박았다. 이곳은 모든 진흙과 느슨한 바위를 제거한 후, 수면 아래 200피트(60m) 이상 아래 암반까지 확장된 두 개의 철근 콘크리트 교각을 타설한 것이다.

맥키낙 다리는 7400피트(2255m) 길이의 3경간 현수교 구간에 3800피트(1158m)의 주 경간이 포함되어 있다. 이 교량은 35개의 데크 트러스 경간과 14개의 강판 거더 경간을 포함하고 있다.

주 케이블은 직경 24.5인치(약 60cm)이다. 각각 340개의 와이어로 구성된 37개의 공기방사 평행 와이어 가닥을 꼬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와이어는 552피트(168m) 높이의 타워 2개에 연결되었다. 교량의 중간 경간에서 도로의 높이는 수위보다 약 200피트(60m) 높다.

상온에서 수직 간격은 주 경간 중앙에서 155피트(47m), 폭 3000피트(914m) 항행 채널 경계에서 135피트(41m)이다. 중앙 경간의 데크는 강풍이 불 때 뒤틀림 없이 동쪽 또는 서쪽으로 최대 35피트까지 움직이도록 설계되었다.

나머지 교각은 1955년에 건설되었고, 1956년에 주 케이블이 연결되어 접근로를 구성하는 28개의 트러스 경간이 건설되었다. 교량 건설업자들은 프리팍트 콘크리트라는 혁신적인 콘크리트 공법을 사용했다.

이 공법은 굵은 골재를 틀에 넣고 그 안에 그라우트 튜브를 넣은 다음 그 튜브를 사용하여 시멘트와 미세 골재를 굵은 골재 사이에 주입하여 콘크리트를 만드는 방식이다. 대형 믹서가 필요하지 않고 콘크리트를 더 빨리 만들 수 있었다.

드디어 맥키낙 다리가 1957년 11월 1일 개통됐다. 맥키낙 다리의 총 길이는 2만6732피트(8147m)이다. 이 다리 건설에 들어간 비용은 총 7026만8500달러(약 940억 원)이었다. 미시간 주는 매키낙 다리의 통행료와 판매된 채권으로 빚을 갚았다. 맥키낙 다리는 2010년 ASCE에서 역사적인 토목 공학 랜드마크로 선정되었다.

이 다리는 놀라운 내구성을 유지하고 있다. 2019년에는 420만 대 이상의 차량이 다리를 건넜다. 하루에 약 1만1000대가 이 다리를 통과한 셈이다. 개통 이후 지금까지 이 다리를 보수할 필요가 없었다고 매키낙 다리를 관리하는 교량 관리 당국은 자랑하고 있다. 교각의 페인트칠은 2017년 4월에 630만 달러를 들여 21개월에 걸쳐 마쳤다.

매카낙 다리 건설이 오래 걸린 이유는 타코마 내로우스 브리지 사고로 토목공학계 모두가 충격을 받아 현수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현수교는 이제 기술적인 한계에 도달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런 불길한 신호는 현수교로 건설될 예정이었던 맥키낙 다리 건설에 악영향을 미쳤다. <계속>


김종대 글로벌이코노믹 철강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