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 아크로에 담겨지는 재료는 철 스크랩이다. 이 재료는 엄청난 수요가 예상된다. 철 스크랩의 안정적인 확보 여부에 따라 기업 경쟁력이 좌우될 수도 있다.
철 스크랩이 쇳물로 녹여지는 과정은 흥미롭다. 대략 100~200톤 가량의 강철로 만든 그릇에 철 스크랩을 투입하면 흑연으로 구성된 전극봉을 통해 1만5000KVA(킬로볼트암페어)의 전력을 통하게 한다. 전극봉은 철 스크랩과 약간의 간격을 둔 지점에서 강력한 스파크를 일으키며 녹여진다.
처음 전기로에 통전이 시작되면 천둥 번개가 치는 것처럼 엄청난 굉음이 발생한다.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기겁할 정도로 오금이 저리고 꿈쩍도 하지 못한다.
아무튼 철 스크랩은 산업화 단계로 올라섰다. 이런 시대적인 변화가 일면서 철 스크랩 품귀현상이 보이자 철 스크랩 도둑들이 기승을 부린다. 절도행각도 천태만상이다.
지난 4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프리토리아 인근 트와네시에서는 철 스크랩 도둑들이 송전탑의 강철을 훔치면서 세 개의 송전탑이 무너졌다. 이로 인해 일대의 전기 공급이 중단됐다.
정전으로 인해 남아프리카 포드의 실버톤 조립 공장과 현지 공급업체를 포함한 프리토리아 이스트 지역의 대부분 기업들이 영업에 차질을 빚었다. 실버톤 공장은 현지 및 글로벌 시장용 포드 레인저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생산을 중단해야 했다. 총 생산 손실은 1,440대에 달한다고 했다.
10여 년 전 주한(駐韓) 스위스 대사관 직원들은 출근길에 황당한 사태를 목격했다. 정문 오른쪽 담벼락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내려와 있어야 할 우수관(雨水管)이 담장 중간쯤에서 잘려 너덜거리고 있었다.
고철 값이 폭등하자 누군가 우수관을 고의로 떼어간 것이다. 대사관 외벽의 우수관 3개 중 2개가 없어졌는데, 접합 부위를 손으로 흔들어 각각 1m씩 모두 2m가량을 떼어갔다. 고물상에 갖다 팔아야 1만 원도 안 되는 고철이었다.
고철 도둑들은 하수구 덮개, 철제 다리 난간, 전선, 교통표지판에 이르기까지 돈이 되는 고철이라면 무조건 뜯어간다. 집 하수구에 설치된 쇠로 된 빗물받이 230여개 도난 사건, 고깃집 불판 600개를 훔쳐간 도둑, 다세대 주택 옥상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에서 금속판만 떼낸 도둑 등 가지가지이다.
스테인리스 대문이 없어지는가 하면, 아파트마다 설치된 철제 의류 수거함을 뜯어가는 도둑도 있다. 미국에서는 고철 값이 높아지자 묘지에 놓인 진구리 꽃병이 없어지고, 땅 속 깊이 묻혀 있던 전선까지 파내 훔쳐가는 바람에 야구장의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어 지역 청소년야구대회가 연기되기도 했다.
워싱턴의 모 빌딩에서는 전선을 몰래 뜯어가려다 감전돼 목숨을 잃은 도둑과 초등학교에서 전선을 훔치다 사망한 도둑도 있었다. 고철 도둑들은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유해가스를 무해가스로 바꿔주는 촉매 역할에 백금이 쓰인다는 사실을 알고 주차돼 있던 자동차 밑으로 들어가 촉매변환장치를 훔쳐 달아나기도 했다.
2008년에 발생한 이 사건은 백금 가격(1온스 31g에 120만 원)이 4년 전보다 2배가 뛰어서 발생했다. 그밖에 간 큰 도둑들은 고철을 가득 실은 트럭이나 컨테이너 박스를 통째로 훔쳐가기도 한다.
일본은 2006년도 한 해 동안 고철 절도 사건이 약 5700건, 피해액은 약 20억 엔(약 157억 원)에 달했다. 영국에서는 동상, 명판, 전선, 맨홀 뚜껑을 훔쳐가기도 했다. 예술품마저도 쇠붙이 도둑에게 수난을 당했다.
감정가가 50만 파운드(약 8억7000만 원)에 이르는 영국의 유명 조각가 헨리 무어의 작품 ‘옆으로 누운 사람’을 훔쳐 고물상에 단돈 8만 원에 팔아넘긴 도둑도 있었다. 헨리 무어의 해시계 추정가는 50만 파운드지만 실제 가치는 매길 수 없는 엄청난 미술품이었다.
철 스크랩이 돈이 되자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사회의 일면을 보면서 혀를 찰 뿐이다.
김종대 글로벌이코노믹 철강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