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50% 시장 점유율 2020년 6%로 전락해
2년전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 책정, 올해 개정안
YSMC, 마이크론, 인텔 투자유치, 라피더스도 출범
정부 주도‧보조금 의존 육성책 반복, 성공 가능성 희박
2년전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 책정, 올해 개정안
YSMC, 마이크론, 인텔 투자유치, 라피더스도 출범
정부 주도‧보조금 의존 육성책 반복, 성공 가능성 희박

그런데, 반도체 부흥을 이끌었던 ‘신의 한 수’였다가 패망의 수렁에 빠뜨렸던 ‘악수’로 전락한 카드를 다시 끄집어냈다는 점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게 한다. 과도한 간섭이라 할 정도로 기업 활동의 자율성을 훼손시켰던 ‘정부 지원 육성정책’이다.
IC 인사이츠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일본 반도체 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988년 50.3%였으나, 1990년대 이후 점차 그 위상이 낮아져 2021년에는 6% 수준까지 떨어졌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통합해 출범한 엘피다 메모리는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러지에 인수됐고, 도시바에서 분사해 출범한 낸드 플래시 메모리 업체인 키옥시아도 웨스턴디지털이 인수하기로 함에 따라, 일괄반도체 생산공장(FAB)을 보유한 업체는 자동차 부품을 주로 생산하는 르네사스 일렉트릭 한 개 사뿐이다. 이러다 보니 일본 내에서 현재 제조되는 반도체는 40nm(나노미터, 1nm는 10억분의 1m)의 보급형 반도체로 첨단 반도체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위기감을 반영해 일본 정부는 2021년 6월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을 책정하고 반도체 산업을 국가사업으로 선언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세계적으로 경제 안보, 디지털화, 탈탄소에 대한 대응이 큰 과제가 됐고,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경제산업성은 2023년 5월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 개정안을 발표했다.
일본의 반도체 중흥 전략은 대만 TSMC와 마이크론 등 해외 기업으로부터의 투자 유치가 주를 이룬다. TSMC는 2022년 11월에 70억 달러(약 9조1525억원)를 투자해 규슈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해당 공장은 2024년부터 12나노와 16나노 칩을 생산할 예정이다. 소니 그룹과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덴소도 TSMC가 규슈에 설립할 공장에 투자했고, 해당 공장으로부터 칩을 조달할 계획이다. 해당 공장 외에 TSMC는 규슈에 있는 구마모토현에 두 번째 공장을 설립한다고 알려졌다.
마이크론은 올해 5월에 “향후 몇 년간 일본 당국 지원으로 극자외선(EUV) 기술에 5000억엔(약 4조5709억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앞서 3월에는 삼성전자가 기존 요코하마 연구·개발(R&D)센터 근처에 일본의 첫 반도체 패키징 테스트라인을 설립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일본 업체들이 주축이 되어 자구 노력도 진행하고 있다. 2022년 11월 11일 출범한‘라피더스(Rapidus)’는 도요타자동차와 키옥시아, 소니, NTT, 소프트뱅크, NEC, 덴소, 미쓰비시UFJ은행 등 8개 기업이 공동 출자했다. 8개 기업이 70억 엔(약 667억원)씩 출연했고, 일본 정부로부터 700억 엔(약 6666억 원)의 지원을 받았으며, 미국 IBM과도 제휴했다. 라피더스는 유럽 최고 반도체 연구개발 기관인 벨기에 종합반도체연구소(IMEC)와도 기술 협력을 맺기로 했다. 올해 2월 홋카이도의 제조업 중심지인 치토세에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지난 1일 기공식을 개최했다. 이 공장에는 2㎚ 첨단 반도체 양산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5조엔(약 48조 원)을 투자해 2025년 프로토타입 라인을 설치하고 2027년까지 양산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반도체 매출액을 2020년의 3배인 15조엔(약 137저1270억원)을 달성한다는 방침이다. 표면적으로 일본의 반도체 부활 전략은 착실히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사업이 중앙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TSMC에 예상된 공장 건설 비용의 절반인 4760억엔(약 4조3514억원)에 달한 보조금을 제공하기로 했으며, 라피더스는 700억 엔(약 6399억2600만원)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한 데 이어 3000억엔(약 2조7425억원)을 추가 제공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는 삼성전자가 검토 중인 반도체 시설에 150억 엔(약 1371억2700만원)의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일본 정부는 국부펀드인 일본산업혁신투자기구(JIC) 등을 통해 이 같은 막대한 보조금을 제공한다. 대신 투자 정책은 정부가 계획한 뼈대에 맞춰서 진행된다. 정부 주도의 산업육성정책은 일본의 강점이었다.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1980년대 막대한 보조금 지급과 저금리 융자, R&D 예산 지원 등에 힘입어 세계시장을 재패했다. D램 시장 점유율만 높고 보면 1980년 25%에서 1987년 80%로 급증했고, 세계 10대 반도체 기업에 일본 기업이 6개(NEC·도시바·히타치·후지쓰·미쓰비시·마쓰시타)나 포함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통상 규제에 따른 판로가 감소하고,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의 추격을 받는 과정에서 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힘을 잃었다. 이런 과정에서 일본 정부의 인위적 사업 통폐합 등 구조 개편 작업이 실패했다. 정부의 결정이라면 일단 따르고 보는 생리가 반도체 산업 전체의 패망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제조‧생산은 물론 R&D 역량도 뒤처진 일본 반도체 산업 정책이 성공한다고 해도 외국 기업에 주권을 빼앗긴 하청생산기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라면서 “한국 정부와 기업은 일본의 사례를 따를 필요는 없어도 승기를 잃었을 때 맞이하게 될 결과를 미리 알아본다는 차원에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