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위기’를 극복해 낸다면 화려한 미래를 보장받는 점은 공감한다. 그런데 ‘당장 위기’가 어떻게 얼마나 지속하고, 어떤 극복 방안을 찾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그룹 자금 흐름에 이상이 생긴 것도 고민을 키우는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차전지 업계 관계자는 “2021년 10월 출범한 SK온의 누적 시설투자(CAPEX) 규모가 20조원이 넘는 것을 위험하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400조원에 달하는 수주잔고를 보유하고 있고, 이를 생산할 사업장을 건설해야 하므로 SK그룹에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규모라고 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전기차 판매 둔화 조짐이 나타나면서 이차전지 판매가 예상보다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데, 수익 창출액도 그만큼 줄어 자금 마련이 여의치 않아졌다”고 말했다.
이는 오너 일가의 의지이기도 하다. 모태 기업인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 이후, 현재 SK그룹의 주력 사업인 정유·석유화학, 이동통신, 반도체 등은 기업 인수합병(M&A)을 거쳐 키워냈다. 반면 이차전지는 SK그룹 내에서는 드물게 고(故) 최종현 선대 회장이 토양에 씨앗을 뿌렸고, 최태원 회장이 양분과 물을 주며 오랜 시간 길러낸 사업이다. 다시 말해 SK가 처음부터 시작해 키워낸 사업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제조 산업은 초기 단계를 넘어서면서 3개 회사가 시장을 주도하는 ‘3강 체제’로 재편됐고, 이들이 세계 시장에서 성과를 얻었다. 이차전지가 21세기 들어 한국의 주요 산업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LG와 삼성, SK의 3강 체제가 구축된 덕분이다.
3강 체제 형성은 상대적으로 후발 주자였던 SK의 상상 이상의 노력 덕분이었다. 사실 SK는 시작부터 핸디캡을 안고 있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LG전자, 삼성SDI는 삼성전자라는 대형 내부 고객(계열사)이 있었다. 삼성과 LG가 개발·판매하는 휴대전화, 노트북, IT 기기 등 모바일 제품에는 먼저 계열사의 이차전지가 적용됐다. 모바일 기기와의 적합도를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배터리 성능을 높이기가 유리했다. SK온의 이차전지도 두 회사 제품에 사용됐지만, 외부 공급사 한계가 존재했다.
국내외 자동차용 배터리 고객사 확보 영업도 상대적인 불리함을 안고 뛰어야 했다.
또 다른 이차전지 업계 관계자는 “LG는 그룹 차원에서 미국 GM과 일찌감치 파트너십을 맺었고, 삼성도 전자 부문의 장악력을 바탕으로 외연을 확장했다”면서 “SK는 전자와 자동차 사업을 직접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터리 고객사 유치에 계열사 도움을 받는 게 제한적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중국 배터리 업체의 물량 공세에 맞서는 일도 힘겨웠다. 전자와 반도체 등의 산업 주도권은 ‘일본 → 한국 → 중국’ 순으로 이전됐지만, 이차전지는 3국의 기업이 거의 같은 시기에 경쟁한 최초의 산업이다. 그런 싸움에서 시장 점유율은 뒤처졌지만, 기술과 고객 확보 면에서 중국 기업과 차별화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일부에서 SK그룹이 정상화되는 가장 빠른 길이 이차전지 사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하지만, 최 회장과 SK는 여러 차례 어려움을 딛고 도약을 눈앞에 둔 사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구조 개편을 위한 시간적 여유가 존재하고, 향후 시장 상황이 개선될 여지도 있는 만큼 신중하게 검토해 SK온 정상화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