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근원적 위기는 올해 스위스 다보스포럼(WEF)에서 대주제로 설정된 ‘4차 산업혁명’에서 찾아볼 수 있다. WEF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보편화되면서 향후 5년간 700만개 일자리가 사라지고 이 기간에 새로 생겨나는 직업은 200만개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금융사 UBS가 내놓은 ‘4차 산업혁명’ 백서는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노동시장 유연성, 기술 수준, 교육 시스템, 사회간접자본, 법적·제도적 환경을 수치화해 4차 산업혁명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국가 순위를 발표했는데 한국은 25위에 불과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떠한가. 한국은 지난 10여 년 동안 4대강 사업에 수십조를 쏟아 부으면서 과학기술 발전을 등한시했다. 미래를 위한 창의적 교육정책은 미미했다. 그 결과 수출 주력 품목들이 글로벌 공급과잉과 중국 기업들의 추격으로 경쟁력이 떨어졌다. 내부 역량을 강화한 중국 기업들이 한국기업들을 강하게 위협하고 있다. 한국 대가업의 주된 경쟁 영역이었던 철강·화학·기계·선박·디스플레이·반도체 등 장비산업 분야에서 중국은 이미 상당한 실력을 키웠다.
이제 과학으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린다는 우리의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 같이 들린다. 2015년 중국의 국제과학논문의 경우 웹오프 사이언스에 등재된 전체 논문의 18.7%로 늘어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과학 대국이 되었다. 반면 한국은 세계 비중 2.7%로 이란에 이어 14위에 그친다. 이미 달 탐사선을 보낸 중국은 독자적인 항공기 제조기술, 최고의 고속철도의 기술 강국이 되었다.
인터넷 모바일 분야에서 중국의 창업 붐 또한 실리콘밸리를 능가할 기세다. 정부는 ‘대중창업, 만중창신(大衆創業 萬衆創新)’이라는 슬로건으로 생태계를 조성하고 젊은이들은 그에 호응한다. 전국에 짝퉁제조업체들이 창업 아이디어맨들과 연합해 무엇이든지 뚝딱 만들어낸다. 디지털 시대에서 중국기업에서의 수평적 관계성은 우리나라의 수직적 관계와 대비해 유연함과 협력, 네트워킹 경제를 이루고 있다.
WEF는 4차 산업혁명에 적응하지 못하는 국가의 일자리가 더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4차 산업혁명은 잠재적 위협이기도 하지만 미리 예측하고 준비했다면 무궁무진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모든 삶의 사이사이에 융합기술이 들어간다면 안전이나 건강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4차 산업혁명이 경제적 잉여(economic surplus)를 창출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고 일하고 있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술 혁명에 직면해 있다. 이 변화의 규모와 범위, 복잡성 등은 이전에 인류가 경험했던 것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고 역설했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의 과학역량의 폭발적 성장으로 위협을 느낀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여기서 세계 3위의 1인당 국내총생산을 자랑하는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우리가 참조할만하다. 국가 창립 이래 ‘아시아 제 1세계’라는 기치로 서구와의 교류협력에 치중해왔지만 최근 들어 중국과의 과학연구 및 산업화 협력을 위한 채널 구축에 적극적이다. 20세기 말 미래학자들이 정보화가 진전되면서 꿈의 시대, 정신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했던 바 같이 싱가포르는 환상적 도시를 창조해 나갔다. 마리아베이에 21세기형의 꿈의 랜드마크를 구축했고 이처럼 아름다운 도시미학을 창출해 관광객을 끌어들였다. 대학교육(SUTD)을 통해 기술 디자인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도 소비재와 서비스 분야에 대중국 우위를 지키기 위해 디자인·패션뷰티·엔터테인먼트를 포괄하는 소프트혁신이 유일한 대응책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시의적절하게 창조경제를 정책적 기치로 내세웠으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창조경제 자체를 추상적이라고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창의적 교육이 부재한 우리 교육현실의 결과라 안타깝다. 우리 부모들은 오직 대학입시만을 위해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암기위주의 과외에 투자한다. 대학은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하에 예술분야를 없애고 많은 논문을 생산하는 분야만을 확장시키고 있다. 아직까지 창조경제란 구호만 요란할 뿐이다.
디지털 신인류의 꿈을 구현시키는 감성적 디자인 혁신이야말로 우리의 경제 위기를 헤쳐 나가야할 최선의 방안이 아닐까. 위기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다시 우리의 역동성을 결집해 ‘다이나믹 디자인 코리아’를 드높일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혜주 중앙대 디자인학부 교수(지속가능과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