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이코노믹 이재경 기자] 오늘도 우리말 조어에 자주 등장하는 ‘-없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터무니없는 말이나 행동, 실속이 없거나 실제와 어긋나는 것”을 ‘엉터리없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엉터리없다’라고 쓰이기보다는 ‘엉터리다’ ‘엉터리 같다’처럼 ‘없다’가 생략된 채 쓰이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에게도 더 익숙합니다.
‘엉터리’의 본래 의미는 ‘사물이나 일의 대강의 윤곽, 사물의 근거, 터무니’를 뜻하는 말로서 충실한 내용이나 진실된 모습을 나타내는 좋은 말입니다. 따라서 ‘엉터리없다’라고 하면 ‘터무니가 없다, 이치에 닿지 않다, 정도나 내용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다’라는 부정적인 뜻이 됩니다. 예를 들면 ‘엉터리없는 수작’ ‘엉터리없는 생각’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 쓰임새를 보면 ‘없다’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엉터리 같은 생각’ ‘엉터리 짓’처럼 ‘없다’의 의미가 ‘엉터리’ 속에 잠입해서 ‘엉터리’만으로도 실속 없는 사람이나 진실되지 못한 행동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즉 ‘엉터리없다’에서 부정어가 생략되고 의미 이동이 이뤄지면서 지금은 ‘엉터리’란 말 자체가 ‘엉터리없다’란 뜻을 갖게 됐습니다. 좀 역설적이죠. 국어사전도 그렇게 풀이하고 있고요. 따라서 “이런 엉터리없는 일이 어디 있느냐.”와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느냐.”는 표현은 둘 다 가능합니다.
그러나 ‘어처구니’나 ‘터무니’ 같은 경우는 그런 의미 이동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람을 봤나.” (혹은) “이런 터무니없는 사람을 봤나.”를 “이런 어처구니를 봤나.” (혹은) “이런 터무니를 봤나.”라고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가차 없다’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가차’는 ‘사정을 봐준다’는 의미인데, ‘가차 없다’라고 하면 사정을 조금도 안 봐준다는 뜻이 됩니다. 그럼 ‘가차’의 어원을 살펴볼까요.
‘가차’(假借)란 말의 원래 뜻은 ‘거짓, 임시 가(假)’자에 ‘빌릴 차(借)’자이니 임시로 빌리거나 꾼다는 의미인데, 한문 글자 구성의 여섯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로서 어떤 말을 나타내는 적당한 글자가 없을 때 뜻은 다르지만 음이 같은 글자를 빌려 쓰는 것입니다.
‘가차’(假借)는 동물의 울음소리나 외래어를 한자로 표기할 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아세아(亞細亞), 미국(美國), 이탈리아(伊太利), 독일(獨逸), 불란서(佛蘭西) 등이 그 예로써, 이들의 한자어는 영어 발음과 비슷합니다. 이런 경우 빌려다 쓴 한자는 단지 외국어를 비슷하게 소리내기 위한 것일 뿐 글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차 없다’란 말의 뜻은 ‘임시로 빌려다 쓸 한자도 없다’이니, 바꿔 말하면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사정을 봐줄 수도 없다.”는 뜻이 됩니다. 예로써, ‘가차 없는 비판.’ ‘가차 없이 처벌하다.’처럼 쓰입니다. 그런데 ‘없다’가 붙은 다른 말들은 대개 붙여 쓰지만 ‘가차 없다’의 경우는 ‘가차’와 ‘없다’를 반드시 띄어 써야 합니다.
이재경 기자 bubmu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