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찍이 헤르만 헤세는 ‘자연은 가장 위대한 도서관’이라고 했다. 거기에 덧붙여 나는 “꽃을 보는 것은 자연이란 도서관에서 시를 읽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부러 꽃을 찾아 나서지 않아도 눈만 뜨면 사방에서 꽃들이 다투듯 피어나 저마다 자신을 보아 달라 아우성을 쳐댄다. 남녘에서 올라오는 화신에 귀를 쫑끗 세우던 꽃샘바람 부는 3월을 지나 비로소 당도한 꽃의 계절, 4월이면 ‘바람나고 싶다’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꽃바람 나기에 딱 좋은 달이 4월이다. 꽃구경 가기 좋은 시절, 여행의 묘미는 우연히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배가 되기 마련이다. 전국 곳곳에서 들려오는 봄꽃축제 소식에 자꾸 몸이 근질거리고 마음이 민들레꽃씨처럼 바람을 탄다.
우리나라엔 다양한 봄꽃축제가 있지만 그 중에 으뜸은 단연 벚꽃축제다. 진해 군항제를 시작으로 섬진강의 벚나무 가로수길, 쌍계사 십리벚꽃 길엔 꽃을 즐기려는 상춘객들로 해마다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서 밑바닥에는 벚꽃은 일본의 꽃이라는 의식이 지배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몇 해 전 산림청에서 실시한 ‘산림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를 보면 벚나무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국민이 좋아하는 나무는 소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순인데, 가장 좋아하는 꽃나무는 벚나무, 개나리, 진달래 순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꽃나무를 따로 나누어 한 까닭이긴 하지만 통계만으로 보면 벚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인 셈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꽃을 보는 이의 마음이다. 마음의 눈으로 꽃을 볼 때 비로소 우리의 가슴에도 꽃물이 든다. 꽃을 제대로 완상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가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멈추고, 낮추고,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다. 제일 먼저 걸음을 멈추고, 다음은 꽃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몸을 낮추고, 마지막으로 잠시라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가만히 바라보아야 진정한 꽃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살구꽃은 살구꽃대로, 벚꽃은 벚꽃대로 저마다의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지만 세상에 피는 꽃치고 어여쁘지 않은 꽃은 없다. 어여쁜 꽃이란 어느 특별한 꽃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지금 눈길 닿는 곳에 피어 있는 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마음 가는 곳에 눈길이 가고 눈길이 머문 곳에 마음도 머물 게 마련이다. 곷바람 부는 4월, 숨 가쁜 일상의 속도에서 잠시 벗어나 환한 벚꽃 그늘에 앉아 그리운 이에게 엽서라도 써보시라. 이 봄이 특별해질 것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