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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하늘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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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하늘바라기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청명한 하늘이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하늘은 먹구름에 덮여 수시로 비를 뿌려대곤 했는데, 오늘 아침 바라본 하늘은 티끌 하나 없이 말끔하니 가을빛이 충만하다. 한해살이풀들이 마르기 시작하는 처서를 기점으로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고 눈에 띄게 하늘빛이 맑아졌다. 한낮의 햇살엔 여전히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남아 있으나 간간이 불어오는 산들바람 덕분에 산책하는 데엔 별 무리가 없다.

몇 년 전,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했을 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도 도봉산과 하늘이 한눈에 들어오는 창문 뷰였다. 침대에 누워서도 창 쪽으로 고개만 돌리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속은 도봉의 흰 이마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산봉우리 위로 어느 날은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기도 하고 비구름이 산허리를 감고 있기도 했다. 창 너머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구름을 바라보는 이른바 구름멍은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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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다른 모든 생명체는 얼굴을 땅으로 향하고 살지만, 인간에게만은 눈을 별들을 향해 돌려 하늘을 볼 수 있는 얼굴이 주어졌다"라고 했다. 늘 발을 딛고 사는 땅만 바라보지 않고 가끔은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어제는 햇빛 속을 걸어 천변에 나가 나무 그늘에 앉아 윤슬 반짝이며 흘러가는 가을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바라본 쪽빛 하늘엔 목화송이 같은 솜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있었다.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넋 놓고 구름을 바라보고 있으면 복잡하던 이내 머릿속이 가지런해지고 마음이 차분해져서 이 세상이 이 세상 같지 않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묘한 행복감에 빠지곤 한다.

파란 하늘엔 두둥실 떠 있는 흰 뭉게구름을 언뜻 바라보면 허공에 붙박인 듯 보이지만 조금만 눈여겨보면 구름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며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레이첼 카슨은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란 책에서 간과하기 쉬운 아름다움에 눈을 뜨는 방법에 대해 일러주었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이것을 예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그리고 이것을 두 번 다시는 보지 못하리란 것을 안다면?" 구름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예외 없이 사라지곤 한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와도 같은 구름을 바라보는 일은 아름다움에 눈을 뜨는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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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처음 이름을 붙인 사람은 영국의 아마추어 기상학자 루크 하워드로 알려져 있다. 1802년의 일이다. 그러나 구름에 대한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을 하나씩 알아가다 보면 우리의 선조들이 더 오래전부터 세세히 구름을 관찰하고 이름 붙여 기억했던 게 틀림없다. 권적운의 순우리말 이름은 '비늘구름'이다. 고도 13㎞의 높은 하늘에 만들어지는 구름으로, 물방울보다는 얼음 알갱이로 이루어진 구름이다. 해와 달이 뜨더라도 이를 가릴 수 없을 만큼 얇은 구름인데 한자어로 된 권적운보다는 비늘구름이 훨씬 세련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권층운은 기상학에서 분류하는 10가지 구름 중 하나로, 높은 하늘에 평평히 펼쳐져 있는 구름이다. 우리말 이름은 면사포구름, 털층구름, 햇무리구름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여러 빛깔을 띤 아름다운 꽃구름, 비를 머금고 있어 검은 빛깔을 띠는 매지구름, 새털 모양의 새털구름 등 참으로 다양하고도 아름다운 우리말의 구름 이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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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도 바위 절벽을 만나야 폭포가 되고, 석양도 구름을 만나야 붉은 노을이 된다. '날마다 구름 한 점'을 쓴 개빈 프레터피니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추종자들에 맞서는 구름추적자로 2005년 '구름감상협회'를 설립하여 회장을 맡고 있다. 먹장구름이 물러가고 우물 안만큼이나 멀어진 가을하늘에 수시로 일었다가 스러지는 구름. "힘이 들 땐 하늘을 봐. 나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노랫말처럼 삶이 팍팍하다 싶을 땐 하늘을 보자. 분명 하늘 어딘가에 구름이 보일 것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