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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격식을 상징하는 도구를 제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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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격식을 상징하는 도구를 제거하라

제임스 홍 플랜비디자인 컨설턴트
제임스 홍 플랜비디자인 컨설턴트
아무도 없는 회의장에서 사람들을 기다려본 적이 있습니까? 텅 빈 공간에 있다 보면 ‘누구는 여기, 누구는 저기, 최고 높은 분은 저기에 앉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우리 회의장은 공간 그 자체에서부터 상석이 정해져 있습니다. 자리에 놓인 물컵이 유리컵인지 종이컵인지만 봐도 이미 상하 관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명하복식의 조직 문화가 강한 기업은 직급에 따라 회의 공간에도 차별을 둡니다. 공간의 차별에 익숙해진 회의 참여자들 또한 이러한 수직적 조직 문화를 당연시하게 됩니다. 회의에서 ‘내 자리’는 마치 조직에서 자신의 위치를 보여주는 척도와 같이 비춰집니다. ‘내 자리’가 다른 사람의 자리와 다를 때, 상대적으로 자신이 낮은 위치에 있는 존재임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회의 공간에서도 그 조직의 회의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모든 회의 공간은 그 조직의 회의 방식과 회의 문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공간은 다시 그 안에서 진행되는 회의에 영향을 줍니다.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은 공간과 회의 문화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공간의 격식과 권위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회의 분위기가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공간의 변화는 소통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회의 공간이 변해야 소통의 질이 높아집니다.
공간의 권위를 내려놓는 형식의 파괴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전통적으로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어른에 대한 존경을 강조하는 우리의 정신적 유산은 기업에서도 여전히 관료적이고 상명하복의 문화를 은근히 조장하고 있습니다. 국내 선진 기업들이 회의 공간의 창의성 추구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대부분 격식을 차리지 않는 공간만을 표방하거나 보이는 것의 화려함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간의 팬시화·다양화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회의 공간은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관리와 통제의 끈을 놓고, 회의 참여자로 하여금 최대한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 공간이 연출되어야 합니다.

회의 공간의 존재 이유는 더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합의·협의하고 좋은 결정을 실행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함입니다. 이 목적에 방해될 만한 요소들은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무엇보다 회의장 내에 격식을 상징하는 도구를 제거해야 합니다. 유니버설 플랜(Universal Plan)이란, 직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같은 가구를 사용하는 형태로 사무 공간을 계획하는 걸 말합니다. ‘보편적인 배치’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회의 공간도 이처럼 보편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어떤 참여자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사원이 앉은 자리에 회의 주관자가 앉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는 ‘보편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높은 의자나 별도의 테이블, 각각의 직급/직위를 상징할 수 있는 명패 등은 회의장에 두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회의는 누가 더 높고 낮은지를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좋은 생각과 아이디어를 나누는 자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회의 때 활발한 소통이 필요한 조직이라면 직급이 아닌 역할에 따라 공간에 차이를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회의 진행자의 좌석을 강화하는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회의 전체를 조율하고 진행하는 회의 진행자는 다른 모든 회의 참여자와 소통이 자유로워야 합니다. 따라서 회의 내 소통 구조를 그려보고 가장 많은 정보가 오가는 중심지에 앉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더욱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집니다. 진행자에게 추가 공간이 제공된다면 이 공간은 결국 회의에 참여한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될 겁니다. 이처럼 격식을 상징하는 도구가 사라질 때 우리의 회의는 더 회의다운 회의가 될 수 있습니다.


제임스 홍 플랜비디자인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