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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은행의 본질은 공공성이 아닌 안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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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은행의 본질은 공공성이 아닌 안전성

정성화 금융부 기자
정성화 금융부 기자
윤석열 정부의 은행 개혁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금융위는 지난 2일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실무작업반 제1차 회의'를 열고 은행권 경쟁 촉진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논의된 경쟁 촉진 방안은 크게 은행업 인가 문턱을 낮춰 신규 플레이어를 진입시키는 것과 카드·증권·보험사 등 비은행권 업무 영역 확대 등 크게 두 가지다.

하지만 벌써부터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진입 요건이 까다로운 은행업 특성상 새 은행을 도입하는 게 쉽지 않고, 설사 신규 플레이어 진입에 성공한다 해도 대형 은행과의 경쟁에서 생존을 보장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 금산분리 규제를 완전히 풀어버리지 않는 한 현재 시중은행 규모에 상응하는 자본력을 갖춘 은행이 나오기는 힘들다. 은행법상 은행을 설립하려면 최소 1000억원의 자본금이 필요한데, 영업망·전산망 등 관련 인프라를 갖추고 대형 은행과 경쟁하려면 수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그나마 문턱이 낮은 인터넷전문은행도 물적·인적 인프라를 갖추려면 최소 3000억원은 필요한데 이미 영업 중인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 등과의 경쟁에서 후발 주자로서 우위를 점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금융당국이 신규 플레이어에게 자본금 규제를 완화하고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해 사업성을 개선해 주면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금융위기 등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 발생 시 새로 진입한 은행의 건전성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비은행권에 지급결제 업무 등을 허용해 은행권과 경쟁을 촉진하는 방안의 관련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시중은행은 한국은행에 지급준비금을 예치하는 등 강도 높은 규제를 받는 반면, 카드·보험·증권사는 상대적으로 규제 수준이 낮아 건전성 관리와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번 은행 과점체제 개혁 논의는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은 공공재'라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대부분 은행들은 민간기업이지만 정부의 인가로 보호받는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므로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게 윤 대통령과 정부의 생각이다.

다만 왜 은행업 진출을 정부가 인가로 엄격히 제한하는지 따져볼 필요성은 있다. 흔히, 경제 발전에서 금융은 혈액으로 비유된다. 인체 구석구석에 필요한 영양분이 혈액을 통해 공급되듯, 은행들은 가계와 기업 등 사회 곳곳에 예금을 바탕으로 필요한 자금을 공급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가치는 안전성이다. 예금자 입장에서 내가 맡긴 돈에 대한 안전이 보장되어야 은행을 신뢰하고 돈을 계속 맡길 수 있다. 그 때문에 정부는 은행업을 아무나 영위할 수 없도록 문턱을 높게 유지하고 산업자본의 진입도 엄격히 규제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금융당국의 과점체제 해소 방안은 이 같은 원칙들을 깼다. 나아가 금융시스템의 안전성도 해칠 우려가 크다. 과점체제의 어항에 메기를 풀어놓으면 그 메기로 인해 붕어들 간에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진다. 결국 생존을 위한 혁신으로 산업 전체의 경쟁력은 증대된다. 하지만 메기 효과(catfish effect)를 기대하면서 섣불리 풀어버린 메기가 생태계 전반을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 한다.


정성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h122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