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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소액생계비대출로 보는 저신용자 사회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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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소액생계비대출로 보는 저신용자 사회의 그늘


손규미 금융부 기자
손규미 금융부 기자

"단돈 50만원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소액생계비대출이 출시된 후 이어진 사람들의 반응이다. 지난달 27일 출시된 소액생계비대출은 금융 당국도 예상치 못할 만큼 취약계층의 엄청난 호응을 얻으며 연일 씁쓸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소액생계비대출은 대부업체조차 이용이 어려워 불법 사금융에 노출될 우려가 있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도 100만원을 신청 당일 지급해주는 정책금융상품이다.

연 소득 3500만원 이하이면서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인 저신용·저소득 차주가 대상으로 기존 정책금융 대상에서 제외됐던 연체자와 무소득자도 포함한다.

대출한도는 최대 100만원으로 우선 50만원을 대출한 후 6개월 이상 성실히 상환하면 추가로 50만원을 대출해준다.

소액생계비대출은 연 15.9%로 금리가 정책금융상품치고는 높은데다 한도도 최대 100만원으로 낮은 편인데도 초기 수요가 폭증했다. 사전 예약을 받은 첫날인 지난달 22일에는 이미 한 주간 상담할 수 있는 인원인 6200여 명에 대한 예약이 마감됐다. 이날 당일에는 신청자가 몰리면서 한때 서민금융진흥원 홈페이지 서버가 마비되기도 했다.

서민금융진흥원에 따르면 소액생계비대출은 출시 일주일 만에 5499건의 대출이 신청됐다. 총 대출금액은 35억1000만원이며 평균 대출금액은 64만원 수준이었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오는 7월이면 대출 재원이 모두 소진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높은 금리와 적은 한도에 상관없이 당장 한 푼이 급한 취약계층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지난해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조달 비용이 급증하면서 제도권 금융의 마지노선이라 꼽히는 대부업권까지 신규 대출을 속속 중단했다. 이로 인해 취약계층이 법정 최고금리인 20%를 훨씬 웃도는 고금리의 불법 사금융에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소액생계비대출 흥행은 이렇게 막다른 길에 몰려 있는 저소득·저신용층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는 설명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 취약차주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연 20%로 제한돼 있는 법정 최고금리를 시장 상황에 따라 금리 상단을 높이는 방식의 '연동형 최고금리'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설정한 법정 최고금리가 2·3금융권의 보수적 운영을 야기해 되레 취약차주의 대출을 막히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 2021년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20%로 인하되면서 최대 3만8000명이 대부업 시장에서도 밀려나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렸다고 분석했다.

대부업권에서도 외면받은 취약차주들은 결국 가혹한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불법 사금융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소액생계비대출은 일시적으로 마련된 재원으로 운영되는 임시방편으로 소액생계비대출 제도의 확대 시행과 더불어 좀 더 근본적인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취약차주들이 벼랑 끝에 내몰리지 않고 재기를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는 정부의 대책 방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다.


손규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bal4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