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를 지내고 고향 집을 둘러보는데 올해는 감나무 가지에 감이 듬성듬성 성글게 달렸다. 지난해만 해도 가지가 휘어지도록 다닥다닥 열렸었는데 올해는 아마도 감나무가 해거리를 하는 모양이다. 해거리는 격년결과(隔年結果)라고도 하는데 과실수에 과일이 많이 열리는 해와 아주 적게 열리는 해가 교대로 반복해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한해 풍성하게 열매를 맺느라 애썼으니 다음 해에는 잠시 성장을 멈추고 수고한 뿌리와 줄기를 쉬게 해주려는 나무의 생존전략이다. 해거리는 나무 자신을 위한 쉼의 지혜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열매를 먹고 사는 짐승의 개체 수를 조절하는 효과도 있다고 하니 새삼 자연의 이치는 알아갈수록 경이롭기만 하다.
성묘하러 선산을 오르는 길, 늘 앞장을 서시던 삼촌은 올해 들어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빠지시고 조카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정년퇴직 후 고향에 내려와 사는 형도 다리가 불편하여 저만치 처져서 뒤를 따르고 대신 젊은 조카들이 앞장을 서 걷는다. 아직은 산을 오르는 게 힘에 부치지 않아 조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면서도 이제 나에게도 가을이 도찾아왔음을 직감한다. 숲에 오면 까닭 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유난히 숲을 좋아하는 까닭도 있겠지만 학자들은 ‘바이오필리아(biophilia)’ 때문이라고 한다. 바이오필리아는 ‘바이오(bio·생명)’와 ‘필리아(philia·사랑)’ 두 단어를 합친 말로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인간의 본능을 이르는 말이다. 이 용어는 에리히 프롬이 생명에 끌리는 인간의 본능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했다.
굳이 바이오필리아와 같은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누구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동경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틈만 나면 자연의 품에 안기고자 숲을 찾는다.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휴식은 더없이 달콤하지만 늘 푸른 듯하나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은 자연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한증식만을 꿈꾸는 자본주의에 매몰되어 욕망에 눈이 어두워 해거리하는 나무의 지혜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에 맞추어 꽃 피우고 열매 맺고 잎을 떨구는 자연의 이치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