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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헨리 5세와 문샷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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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헨리 5세와 문샷 전략

박성우 플랜비디자인 컨설턴트
박성우 플랜비디자인 컨설턴트
아쟁쿠르 전투(Battle of Agincourt)는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 전쟁 중에 있었던 전투 중 하나로 1415년에 헨리 5세가 영국군을 이끌고 프랑스에서 벌인 전투다. 헨리 5세 자신의 군사적·정치적 입지를 입증했을 뿐만 아니라 중세 전쟁사에서 기존 중장갑 기병 중심의 전투 방식에 의문이 제기된 전환점을 제공한 전투로 평가받고 있다. 이 전투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모든 측면에서 불리했던 영국군이 주어진 내외부 환경을 적절하게 역이용했다는 점이다.

우선 전투 자체가 프랑스의 홈그라운드에서 벌어졌다. 그리고 당시 지형을 보면 프랑스군이 경사진 언덕 위에 진을 치고, 영국군은 경사지 아래 쪽에 위치해 있었다. 경사지 양측은 숲으로 덮여 있어 정면 대결 외에는 다른 전략을 구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병력 구성 면에서도 프랑스군이 1만2000~3만6000명 수준으로 영국군보다 2~3배 많았고, 프랑스군이 중장갑 기병 중심이었던 것에 비해 영국군은 중장갑 보병 중심이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전투 전날 비가 많이 내려 전장이 모두 질퍽한 진흙탕으로 변해 있었다.
경쟁이 기본인 비즈니스에서 ‘어디에서 싸우느냐’는 무척 중요하다. 특히 신규 사업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려 하는 경우 더더욱 전략적으로 전쟁터(battle field)를 어디로 잡느냐가 경쟁에서의 성공 여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쟁쿠르 전투에서 영국군은 일단 자신들에게 유리한 전쟁터를 선점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헨리 5세가 이끄는 영국군은 어떻게 우세한 프랑스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까?

비가 내려 땅이 질퍽해질 것을 예상한 헨리 5세는 이런 환경을 영국군에 유리하게 전환시켜 활용했다. 육중한 갑옷을 감싼 중보병은 소수 인원만 맨 앞에 선발로 내세우고 나머지 보병들은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갑옷을 줄인 경보병으로 양쪽 숲속에 매복시켰다. 프랑스군은 예상대로 주력부대인 중장갑 기병들이 경사진 비탈길을 무서운 속도로 내달려 영국군 진영으로 뛰어들었다. 선발로 나선 중보병들이 프랑스 중기병들과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 기병들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교착상태에 빠지자 숲속에 매복해 있었던 경보병들이 투입되어 진흙탕에 빠진 프랑스의 주력 중기병들을 압살했다. 이 과정에서 육중한 장갑을 입은 채 상대 기마병을 진흙탕으로 끌어들인 소규모 중보병들의 희생이 있었다.

책 '문샷'에는 로켓 재료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거꾸로 사이버트럭 ‘엑소스켈레톤’ 제작을 결정한 일론 머스크의 사례가 나온다. 로켓 부품의 80% 정도를 내부에서 생산해 가격과 품질을 둘 다 잡은 부분도 크지만, 우주선용 합판 생산을 위한 천문학적인 비용을 해결하기 위해 역발상을 통해 사이버트럭을 양산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불리한 상황과 환경을 뒤집은 문샷 전략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경제 여건이 좋지 않다. 이런 기조가 1~2년 이상 갈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들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비즈니스 환경이 좋지 않을수록 이미 시장을 선점한 큰 기업들보다는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어려운 시간이 될 것이다. 어쩌면 내가 속한 조직은 방어력이 약한 경보병으로 경쟁자들과 맞서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경쟁에서 이기려면 동일한 시장 환경을 역이용하는 창발적 사고가 필요할 것이다. 내가 싸우고 있는 전쟁터의 어려운 환경(진흙탕)에 주목하고, 이 장애물을 역이용할 수 있는 아군의 자원(경보병)을 십분 활용하는 전략을 모색해볼 때다. 물론, 승리를 위해서는 헨리 5세 같은 리더와 그를 따르고 헌신하는 핵심 인력도 준비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박성우 플랜비디자인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