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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천마산, 꽃뫼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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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천마산, 꽃뫼를 찾아서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천마산(812m)으로 꽃 산행을 다녀왔다. 예부터 물은 용이 살아야 신령스러운 물이 되고, 산은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라 했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다양한 꽃을 볼 수 있는 산이 꽃산이요, 명산이다. 천마산이 봄꽃 산행지로 명성을 얻은 것도 높거나 산세가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서울 근교에 위치하면서도 다양한 야생화들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산괴불주머니, 꿩의바람꽃, 노루귀, 산괭이눈 같은 흔한 야생화부터 마치 강원도의 산마루를 옮겨온 듯 무리 지어 피어 있는 얼레지 군락을 마주하면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이다. 야생화의 성지라는 별칭에 걸맞게 앉은부채나 우리나라 몇몇 산에서만 자란다는 점현호색도 천마산에선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진접읍에 걸쳐 있는 천마산은 북서쪽의 철마산(711m)과 함께 광주산맥에 속한다. 산세가 험하고 복잡해 예부터 소박맞은 산이라 불려왔으나 산행코스가 길지 않아 봄철 당일 산행코스로 좋다. 주봉을 중심으로 하여 북동쪽은 비교적 경사가 심해 비탈지고, 서쪽은 대체로 완만하다. 경춘선을 타고 평내호평역에서 내려 다시 165번 버스를 타고 회차 지점인 ‘수진사·천마산 등산로 입구’에서 하차하면 바로 꽃 산행을 시작할 수 있다. 젊은 날엔 주로 겨울 한 철, 스키를 타기 위해 찾았던 곳인데 나이 들어 이 화창한 봄날, 꽃을 보러 찾아오니 꽃향기로 나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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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 않고 빠르게 산을 오르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꽃을 보며 산을 오르는 것이다. 요즘 같은 봄날, 새로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산을 오르다 보면 아니 벌써? 할 만큼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상에 올라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렵사리 야생화 한 송이 찾아내어 카메라에 담고 고개를 들면 저만치에 또 다른 꽃이 눈에 들어오고, 그 꽃으로 다가가 사진 한 장 찍고 발걸음을 돌리면 또 다른 꽃이 손짓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게 꽃 산행의 묘미다. 참 신기한 것은 처음엔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던 꽃도 일단 한 송이라도 찾아낸 뒤엔 새로운 꽃들이 계속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등산로 들머리에서 처음 마주친 보랏빛 제비꽃을 비롯하여 큰 괭이밥, 개별꽃, 미치광이풀, 노루귀, 꿩의바람꽃, 앉은부채, 산괴불주머니, 점현호색, 처녀치마 등 귀한 꽃들을 참 많이도 만났다. 산 능선을 타고 드문드문 피어 있는 산벚꽃은 절정을 지나 바람이 지날 때마다 꽃잎을 흩뿌린다.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며 화양연화를 구가하던 나무들이 저마다 연둣빛 새잎을 내어 달고 초록을 향해서 한 물결을 이루어 가는 숲의 변화는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초록으로 하나 되기 전의 다양한 색과 향기로 빛나던 꽃들의 자태와 소리 없는 외침을 기억한다면 짧은 봄날의 산행이 더욱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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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부근에서 만났던 노랑제비꽃 군락지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꽃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할 무렵 고향에서 발견한 노랑제비꽃 군락은 제법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직장에 다니던 때여서 주말에만 시간이 나는데 허위허위 산을 올라가 보면 어느 때는 일러 피지 않았고, 어느 때는 늦어 이미 진 뒤였다. 산을 오르기 전에 미리 꽃에게 물어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도 없는 일, 꽃을 보기 위해선 때를 잘 맞추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하긴 때를 잘 맞춰야 하는 게 비단 꽃을 보는 일뿐이랴.
흔히 주식을 타이밍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우리네 삶 자체가 타이밍의 예술이다. 작은 들꽃 하나 보는 일도,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도, 때를 잘 맞추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때맞춰 꽃을 피운 초목처럼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행하는 것이다.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