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경찰 조사에서 한 진술은 피해자 진술조서에 기재되어 증거로 사용된다. 하지만 피고인이 공판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증거능력이 없다. 이때 증거능력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법정출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혐의를 부인하고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은 대개 피해자 진술에 대해 증거 동의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경우 증인신문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피해자가 다시 법정에 나와서 피고인과 마주하고 고통스런 기억을 반추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성폭력처벌법 제30조 제6항에서는 성폭력피해자가 19세 미만 아동이나 정신 장애인인 경우, 피고인이 증거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증인신문을 생략할 수 있도록 하였다. 즉 피해자 진술이 담긴 영상 녹화물로 증인신문을 대체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청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받아들여지지도 않고, 이미 영상 녹화물에 증거능력이 인정된 마당에 굳이 증인신문에 나와서 진술하는 피해자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규정은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박탈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결국 피고인이 원진술자의 진술을 탄핵하고 검증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영상물 진술만으로 유죄를 선고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원진술자에 대한 반대신문기회 보장 없이 영상물 진술의 증거능력을 일률적으로 인정하는 경우는 없다.
결국 2021. 12. 헌법재판소는 이 규정에 대해 위헌결정을 선고했다. 따라서 이제는 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에 대해서도 증인신문을 할 수 있다. 물론 피해자가 공판절차에 출석해서 피고인과 반드시 대면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며 법정이 아닌 화상증언실에서 하거나 영상 중계를 통해서 증인신문을 진행할 수도 있다.
증인신문은 억울한 피고인이 누명을 벗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볼 수 있다. 2018년 남자 중학생이 초등학생 때 여자 강사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신고하였다. 피고인은 1심에서 징역 10년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고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당시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온 결정적인 이유는 피해 아동 진술이 매우 구체적이고 일관성이 있어서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상황을 반전시킬만한 새로운 증거가 나왔다. 증인신문 과정에서 피고인 변호사가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며 피해자를 추궁하자 아동은 무조건 기억이 안 난다고 일관하면서 진술 태도가 180도로 변하였다.
물론 미성년자 성범죄 사건의 상당수는 진실이다. 그러나 이처럼 전혀 없는 일을 만들어내어 생사람을 잡는 사건도 있다. 게다가 미성년자 성범죄의 처벌형은 대단히 높다. 이처럼 중한 형이 걸린 사건에서 반대신문의 기회를 박탈하여 방어권을 본질적으로 제한한다면 진실발견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성범죄 사건에서 진술은 가장 중요한 증거이기 때문에 진술에 대해 검증하고 원진술자를 반대신문 할 수 있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무죄추정의 원칙에서 직접 도출되는 본질적인 권리이다. 실체적 진실을 찾는 것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가치라고 본다.
민경철 법무법인 동광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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