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한국 경제가 위기다. 경제가 위기일 때마다 정권이 내세우는 단골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가 중소기업을 패망으로 몰고 간 “대기업은 무조건 나쁜 놈”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재벌 총수에 대한 반감이 자본시장의 꽃이라 불리는 주식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과 SK, 현대차, LG, 롯데, 포스코는 물론, 한화와 HD현대 등 주요 대기업이 사업재편 방안의 일환으로 계열사 간 합병이나 사업 부문의 이관, 비주력 사업의 매각 등을 추진할 때마다 투자자들은 동요한다. 해당 종목의 주가가 오르면 상관없지만, 사업재편 때마다 하락하니 손해를 보는 투자자들로서는 그럴 수 있다.
과거에는 권력과 대기업 간 정경유착이 있었다. 광복 후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기업들을 일부 기업인에게 나눠줬고, 금리 8~10% 넘는 돈을 정부가 외국에서 빌려와 기업에 2~3%로 나눠줌으로써 생존할 수 있게 해줬다. 재계 1세대 창업주들이 이른바 정경유착의 혜택을 입었다. 재계는 정부의 심판을 받았고,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 수십 년간 원죄를 씻기 위해 노력해 왔다. 1세대에서 2세대, 2세대에서 3세대로 재계 오너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정경유착은 많이 사라졌다.
오너 경영인들의 경영관도 변화했다. 2024년 현재 한국 재계는 오너 3·4세로 세대교체가 완료됐다. 선대 회장과 비교해 보면, 주식을 통한 이들의 기업 장악력은 미미하다. 오히려 지배력이 너무 약해 대규모 투기 자금을 동원한 ‘기업 사냥꾼’들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이들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갖추고, 미래를 내다보는 사업구조를 완성하는 것이 오너 3·4세 경영인들의 최우선 과제다. 태어날 때부터 선친의 부의 혜택을 받아온 이들에게 사재를 늘리는 것은 외부의 시각과 달리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두산그룹이 투자자들의 거센 저항 속에 사업재편 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현재의 두산그룹은 4세 오너 경영인뿐만 아니라 젊어진 전문 경영인과 임원, MZ세대 직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이 함께 제시한 사업재편안이다. 그들이 이를 관철해야만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고 한다. 투자자들이 이를 봐주었으면 한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