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 제25장

땅은 무엇을 본받는가? 하늘이다. 하늘은 땅이 장구하도록 품어주며 사계절 기후변화로 땅의 기운을 번갈아 주어 뭇 생명을 순환시킨다. 그러므로 땅은 하늘의 법도를 본받는다. 그러면 하늘은 무엇을 본받아서 존재하는가? 주지하다시피 도는 하늘과 땅을 탄생시킨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어머니는 보답을 바라지 아니하고 베풀기만 하는 사랑의 여신이다. 사랑은 미움도 증오도 분노도 욕심도 배신도 없는 불가사의한 신의 절대적 덕이다. 따라서 하늘의 존재가치는 도를 본받는 데 있다.
그렇다면 도는 무엇을 본받는 것일까? 이 대목이야말로 본받아야 할 사람과 땅과 하늘과 도의 법도를 태동시킨 무위자연 사상과 철학을 태동시킨 근원이다. 그것은 바로 자연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은 땅의 초목을 비롯한 일체 생명체와 무생명체를 총칭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연의 궁극의 뜻은 그게 아니다. 스스로 존재하여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게 하는 존재나 그 상태를 이른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삼라만상의 사물과 현상을 존재하게 한 근원을 뜻한다.
말하자면 도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자동차 배터리에 저장된 초전자 알맹이와 같은 것이라 비유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보아도 보이지 않고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한 그런 존재, 어쩌면 양자역학의 이론적 근거이자 그 원형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이것을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핵으로서 정(精)이라 한다.
노자는 황홀한 도 중에는 상(象)과 정(精)이 있다고 하였다. 상은 모습 없는 형상이고 정은 정기이다. 상, 정이 도의 핵이며 그 핵이 바로 스스로 존재하여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게 하는 존재나 현상으로서 자연의 참뜻이다. 위도 없고 아래도 없고 사방도 없는 광대무변한 대우주가 종교적으로는 신의 몸이며, 몸을 부리는 자가 곧 신의 영(靈)인 것이다.
그리고 그 몸은 가늠할 수 없는 하나이므로 크다는 말 외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서 노자는 그저 대(大)라고 하였다. 대, 즉 한량없이 큰 몸이 바로 상 정을 품고 있는 황홀한 도로 하여금 그 모든 것을 이루어지게 하는 존재로서 형이상의 자연이다. 그리고 실존하는 자연(象精)의 원형이며, 신격 존재로서의 유일 자(唯一 者)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일한 자와 자연은 하나이며, 자연과 도 역시 한 묶음 속의 하나이다. 따라서 형이상과 형이하의 자연은 도와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도는 형이상의 자연을 본받는다.
이치가 이러하므로 노자는 또 말했다. 존재하는 것(象 精)은 혼돈으로 이루어졌는데 하늘과 땅보다 먼저 생겼다. 적막하고 공허한 곳에 홀로 존재하여 새롭게 바뀌지도 않았다. 두루 행하여도 위태롭지 않았으니 천하의 어머니라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굳이 이름하여 광대함이라 하고, 광대함은 널리 퍼져나간즉 되돌아온다.
그러므로 도는 광대하고 하늘도 광대하고 땅도 광대하고 왕도 그중 하나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거니와 그중에서 왕도 광대하다고 한 것은, 도는 결국 인간을 위한 도리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위한 도리를 실천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왕이며, 백성은 왕을 본받아서 천하가 태평해지는 것이라 하였다,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종교·역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