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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대 박사의 인문학] 잘 헤아리면 계산이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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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대 박사의 인문학] 잘 헤아리면 계산이 필요 없다

'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 제27장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이미지 확대보기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
노자는 27장 첫 번째 구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좋은 일을 한 후에는 흔적이 없어야 한다고. 두 번째 구절에서는 좋은 말은 허물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불경 중 금강경에서 붓다는 보시할 때는 무위로 해야지 대가를 바라고 하는 보시는 보시가 아니라고 했다. 타인에게 잘 보이고 잘난 체하는 마음으로 하는 보시는 흔적을 남기고 싶은 욕심 때문이고, 보시로 덕을 베풂에 교만하거나 자랑하면 허물이 된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너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쳤다. 위함이 없이 위하는 무위의 진실을 비유한 명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위의 덕이 얼마나 큰지 실화 하나를 예로 들었다. 거지나 다름없는 몹시 가난한 한 여인이 헌금할 돈이 없어서 괴로워하다가 우연히 화장실 바닥에 떨어진 동전 한 닢을 발견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매우 적은 돈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깨끗하게 닦아 헌금했다. 그리스도는 부자가 큰돈을 헌금한 복보다도 그 여인이 헌금한 동전 한 닢의 복이 더 크다고 했다. 바라는 바 없이 무위로 하는 베풂이 진실로 복이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세 번째 구절에서는, 헤아리기를 잘하면 계산이 필요 없다고 했다. 여러 책에서 이 구절을 마치 계산이 뛰어난 장사치의 노련한 수완쯤으로 해석했다. 또 어떤 명망 있는 어느 종교인은 내일의 일을 점을 쳐서 알려고 하지 말라는 뜻이라고도 했다.
노자는 도덕경 81장 어느 구절에서든 도와 덕의 무위에서 벗어난 말을 단 한마디도 한 적이 없다. 더구나 장사치의 노련한 수완이라든지 점술에 빗댄 단어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노자가 말하는 계산은 산술적 의미가 아니다. 바르게 듣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판단할 줄 아는 무위의 현묘한 능력이다. 도를 얻어 스스로 밝고 맑으면 사람을 대할 때 굳이 이런저런 세속적인 속셈을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실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거울이 맑으면 미세한 것도 놓치지 않고 다 관찰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밝고 맑은 마음이란 흔적과 허물을 남기지 않는 깨끗한 심성이다.

그런데 노자는 마지막 구절에서 닫기를 잘하면 빗장이나 자물쇠가 없어도 열지 못하고, 매듭을 잘하면 끈으로 묶지 않아도 풀지 못한다고 했다. 자물쇠·빗장이란 도둑을 막는 도구가 아니다. 매듭 역시 무엇을 묶는 끈 혹은 어떤 일의 끝맺음 등의 뜻이 아니다. 한 가지 사실을 두고 뱀의 혓바닥처럼 두 가지로 갈라져 나오는 마음의 문을 뜻한다. 사물 하나를 두고 아름답다, 추하다 따위로 분별해 나타내는 마음 구멍을 어떻게 빗장이나 자물쇠처럼 채워 놓거나 혹은 어떻게 매듭처럼 묶어 놓을 것인가다.

불경의 논서 '대승기신론'에서 원효대사는 마음 작용을 심체론(心體論·마음의 몸뚱이)으로 설명했다. 대사가 이르기를, 심체에는 두 개의 문이 있다. 하나는 무위의 문이고, 또 하나는 번뇌의 문이다. 반드시 닫아야 할 문, 즉 번뇌의 문만 잘 닫으면 무위의 문은 저절로 열려서 닫히지 않는다. 닫기를 잘한다는 뜻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번뇌의 문을 닫음인데, 잘 닫는다는 것은 명상으로 일체 번뇌를 여의고 삼매에 든다는 뜻이다.

삼매에 들면 자물쇠니, 빗장이니 하는 기구 따위로 번뇌를 쏟아내는 마음 구멍을 굳이 애써서 닫을 필요가 없다. 또한 마음 구멍을 매듭으로 묶지 않아도 번뇌도 끊어진다. 이렇게 번뇌의 문을 닫으면 열어야 할 문, 즉 무위의 문은 저절로 열려 있어서 명상 삼매에서 깨어나지 않는 한 닫히지 않는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성인은 명상 삼매에 들지 않아도 열어야 할 무위의 문을 항상 열어놓고 있다. 따라서 도의 본질인 덕만을 베푸는 성인은 사람과 만물을 잘 구원하고 버리지 않는다. 노자는 이러한 성인의 마음을 밝음에 이른 것이라 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은 선한 사람을 본보기로 삼는다고 했다. 이 말뜻의 근본은 번뇌의 문을 닫고 무위의 문을 열어놓는 명상의 지혜를 본받으라는 데 있다.

정경대 박사의  '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이미지 확대보기
정경대 박사의 '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종교·역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