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노동관계법 체계는 문재인 정부시적이던 2021년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기점으로 중대한 전환기를 맞이했다. 오랫동안 유보되었던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과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제98호)’이 2022년 발효됐다. 그 와중에 국제 노동 기준과 국내 실정법이 서로 따로 가는 모순이 야기됐다. 국내법상 ‘긴급조정권’과 ‘ILO 핵심협약’ 은 정면 충돌을 하고 있다.
긴급조정권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76조에 명시된 제도로, 노동쟁의가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하거나 국가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우려가 있을 때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동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 개입 권한이다. 구체적인 발동 요건은 쟁의행위가 공익사업에 관한 것이거나 그 규모가 크고 성질이 특별한 경우로 한정된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노동조합은 즉각 쟁의행위를 중단해야 하며, 발동일로부터 30일 동안 어떠한 파업이나 직장폐쇄도 금지된다. 이 기간 동안 중앙노동위원회는 강도 높은 조정을 진행하며, 조정이 성립되지 않을 경우 공익위원들의 결정에 따라 강제성을 띠는 중재 재정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이 2021년 비준한 ILO 제87호 및 98호 협약은 노동조합의 설립, 운영, 활동에 있어서 국가의 간섭을 철저히 배제하는 '결사의 자유'를 핵심으로 한다. 협약 자체에 '파업권'이라는 단어가 명시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 등 주요 감독 기구들은 수십 년간의 판정을 통해 "파업권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본질적이고 분리할 수 없는 수단"임을 확고히 해왔다. ILO의 기준에서 파업권의 제한은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정당화된다. ILO는 파업을 금지하거나 엄격히 제한할 수 있는 대상을 '엄격한 의미의 필수사업(essential services in the strict sense of the term)'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필수사업이란 "파업 시 인구 전체 또는 일부의 생명, 개인의 안전 또는 건강을 위태롭게 하는 사업"으로 매우 좁게 해석된다. 예컨대 병원, 소방, 경찰, 전력 및 수도 공급 등이 이에 해당한다
ILO는 수많은 협약을 채택해왔으나, 그중에서도 모든 회원국이 반드시 지켜야 할 가장 근본적인 권리를 규정한 것을 ‘핵심협약’이라 부른다. 대한민국은 오랜 기간 핵심협약 중 일부의 비준을 미뤄오다가, 지난 2021년 비로소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과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제98호)’ 등을 비준하였고, 이는 2022년 4월부터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니며 공식 발효되었다.제87호와 제98호 협약의 핵심은 노동자가 어떠한 사전 허가나 국가의 간섭 없이 스스로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는 ‘결사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며, 노사 간의 자율적인 교섭을 촉진한다는 데 있다. ILO의 핵심협약은 파업권을 명시적으로 조문에 적어두고 있지는 않지만, 결사의 자유를 규정한 제87호 협약의 본질적 내용 속에 ‘파업권’이 당연히 포함된다고 해석한다. ILO의 결사의 자유 위원회 등 감독 기구들은 노동자의 단체행동권, 즉 파업권이 노동조합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본질적인 수단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가장 중요한 지점은, ILO는 단순히 "국가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나 "국민의 일상적인 불편"을 이유로 파업을 전면 금지하거나 강제 중재에 회부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협약 위반으로 본다는 것이다. ILO의 철학은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이 자본주의 경제 체제 내에서 노사 간의 힘의 불균형을 교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며, 이 권리가 경제적 논리에 의해 쉽게 제한된다면 노동 기본권의 본질이 훼손된다는 데 바탕을 두고 있다.
긴급조정권과 ILO 핵심협약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핵심 지점은 바로 파업을 제한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의 범위'와 '국가 개입의 수위'에 있다.첫째, 발동 요건의 충돌이다. 한국의 노조법은 긴급조정권의 발동 요건 중 하나로 '국민경제에 관한 사건'을 명시하고 있다. 대규모 수출 산업이나 물류 시스템의 마비 우려가 발생하면, 국가 경제 보호를 명분으로 긴급조정을 발동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ILO는 '경제적 손실'을 파업 금지의 합당한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다. 경제적 타격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수준의 국가적 비상사태가 아닌 한 파업을 강제로 중단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ILO의 확고한 입장이다. 둘째, 절차적 강제성의 충돌이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즉각적으로 30일간의 파업 금지 의무가 발생하고, 궁극적으로는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국가(중앙노동위원회)의 강제 중재에 의해 노사관계의 조건이 결정될 수 있다. ILO는 이러한 일방적인 쟁의행위 중단 명령과 강제 중재(Compulsory Arbitration) 제도를 단체교섭권(제98호 협약) 및 파업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간주한다. 노사의 자율적인 교섭과 타협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국가 권력이 개입하여 강제로 덮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6조 제1항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내 실정법인 노조법의 긴급조정권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지니게 된 ILO 핵심협약은 상호 모순되는 규범적 지시를 내리고 있는 셈이다. 행정부와 사법부는 국가 경제의 치명적 위기 앞에서 노조법을 근거로 파업을 멈춰 세울 것인지 아니면 비준된 국제조약의 기준에 따라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을 끝까지 보장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긴급조정권과 ILO 핵심협약의 충돌은 단순히 법조문 간의 어긋남을 넘어, 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들의 충돌을 의미한다. 국가 산업의 마비와 경제적 재난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해야 하는 책임과, 억압받아온 노동의 권리를 국제적 표준에 맞게 보장해야 하는 당위성은 어느 하나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중대한 명제다.이 충돌을 조율하기 위해서는 어느 일방의 논리를 폐기하는 방식이 아닌, 치밀하고 정교한 제도적 보완이 요구된다. 예컨대, 긴급조정권의 발동 요건 중 '국가 경제'의 범위를 보다 엄격하게 축소 해석하거나, 발동 절차에 노사 당사자 또는 중립적인 제3의 기관의 참여를 보장하여 권력의 자의적 남용을 막는 방안 등을 고민해 볼 수 있다. 동시에 노동계 역시 단체행동권이 절대적인 무제한의 권리가 아님을 인지하고, 파업 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더욱 충실히 이행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 규범적 충돌의 해결은, 한국 사회가 글로벌 경제 체제 속에서 경제적 안정성과 보편적 인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조화롭게 융합해 낼 것인가에 대한 지난한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 될 것이다. 양 제도가 지닌 본질적 취지를 깊이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사정이 끊임없이 대화하고 법체계를 다듬어 나갈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선진적 노사관계가 정립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ILO 핵심협약 비준은 한국의 노동법 체계가 이제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결사의 자유와 단체행동권 보장 기준을 수용해야 함을 의미하는 거대한 법적 패러다임의 전환이다.이처럼 긴급조정권과 ILO 핵심협약은 각기 ‘국가적 위기 방지’와 ‘노동 기본권의 온전한 보장’이라는 정당한 명분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이 두 개념이 실제 노동 현장에서 조우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잣대의 차이, 즉 ‘충돌의 지점’이다.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파업을 제한할 수 있는 ‘예외적 조건’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 하는 범위의 문제다.ILO의 확립된 해석 기준에 따르면, 노동자의 파업권을 전면적으로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필수업무(Essential Services)’에 한정된다. 그리고 ILO가 정의하는 필수업무란 ‘해당 서비스가 중단될 경우 전체 또는 국민 일부의 생명, 개인의 안전 또는 건강을 위태롭게 하는 서비스’로 매우 엄격하고 좁게 해석된다. 예를 들어, 병원, 소방, 전력 및 수도 공급 등은 필수업무로 인정되어 파업 제한이 정당화될 수 있지만, 일반적인 제조업, 운송, 물류, 철도 등은 이 엄격한 의미의 필수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ILO의 일관된 입장이다.반면, 한국의 노조법상 긴급조정권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뿐만 아니라 ‘현저히 국민경제를 해하는 경우’를 발동 요건 중 하나로 명시하고 있다. 수출 주도의 산업 구조를 가진 한국의 특성상, 대규모 물류 파업이나 국가 기반 산업의 파업은 국가 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국내법 체계와 정부의 행정적 판단 기준에서는 ‘경제적 타격’이 곧 ‘국민 생활의 위기’로 직결된다고 보아 긴급조정권 발동의 근거로 삼는 경우가 존재한다.바로 이 대목에서 개념적 간극이 발생한다. 제도의 존치와 필요성을 강조하는 관점에서는, 각국의 고유한 경제 구조와 사회적 맥락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국처럼 특정 산업(예: 반도체, 자동차, 항만 물류)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극도로 높고, 대체재가 부족한 압축 성장 국가에서는 특정 부문의 마비가 단순한 불편을 넘어 국가 경제 전체의 붕괴 도미노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국민 전체의 이익과 경제의 근간을 보호하기 위해 파업을 일시적으로 유보시킬 수 있는 긴급조정권은 헌법이 부여한 국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합리적인 조정 수단이라고 설명한다.이와 대조적으로 국제노동기준의 완전한 이행을 강조하는 관점에서는, ‘국민경제’라는 다소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기준을 이유로 쟁의행위를 강제로 중단시키는 것은 ILO 핵심협약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단체행동권의 본질은 사용자와의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필연적으로 사용자에게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데 있다. 파업이 본질적으로 경제적 손실을 동반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개입해 단체행동을 무력화한다면, 사실상 대규모 사업장이나 국가 기간산업 노동자의 파업권은 형해화(내용 없이 뼈대만 남음)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는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행정부의 자의적 판단으로 침해할 소지가 있으며, 국제사회를 향해 약속한 ‘결사의 자유 보장’이라는 비준의 취지를 퇴색시킨다는 것이다.결국 긴급조정권과 ILO 핵심협약 비준이라는 두 가지 테마는, 단편적인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추구해야 할 두 가지 거대한 헌법적 가치 간의 조정 문제로 귀결된다. 대한민국은 이미 국제사회와 약속한 조약을 비준함으로써 노동권을 보편적 인권의 차원에서 보장하겠다는 선언적 조치를 완료했다. 비준된 조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므로, 앞으로 국내 노동 관련 법령과 제도는 점진적으로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정합성을 갖추어 나가야 할 법적 과제를 안게 되었다.그러나 동시에 헌법은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경제적 생존권을 수호해야 할 임무 역시 국가에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긴급조정권이라는 제도를 완전히 폐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수 있다. 진정한 과제는 제도의 맹목적인 유지나 전면적인 철폐가 아니라, ‘제한의 기준’을 어떻게 정교하게 재구성할 것인가에 있다. '국민경제'라는 모호한 요건을 법률적으로 더욱 엄격하게 구체화하여 자의적인 행정 개입의 여지를 줄이거나, 파업을 전면 중단시키는 강제 중재 방식 대신 노사가 자율적으로 타협할 수 있도록 돕는 실질적인 조정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나아가 파업 시에도 국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유지업무'의 범위를 노사정이 사전에 합리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노동자의 쟁의권 본질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 치명적인 사회 마비를 방어할 수 있는 세밀한 제도적 설계가 필요하다.요컨대, 긴급조정권과 ILO 핵심협약 비준의 교차점은 한국 사회가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치를 어떻게 조화롭게 풀어낼 것인지 묻는 거대한 개념적 시험대다. 국제적 기준이라는 새로운 척도를 받아들인 이상, 과거의 관행과 막연한 경제적 공포에만 기대어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는 제도의 물리적 파급력을 고려하여 사회적 충격을 연착륙시킬 지혜 또한 요구된다. 앞으로 한국 노사관계의 성숙도는, 이 첨예한 교차점에서 어느 한쪽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지 않고, 공공의 이익과 노동의 존엄을 동시에 지켜낼 수 있는 정밀하고 합리적인 법적·사회적 균형점을 찾아내는 데 달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