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천변을 걷는 일은 숲길을 걷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숲길에선 울창한 수목들로 인해 시야 확보가 쉽지 않지만, 천변에선 확 트인 시야를 확보할 수 있어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통쾌함을 맛볼 수 있다. 또한 철 따라 피어나는 꽃들과 천변을 오가는 다양한 새들과 물고기를 관찰할 수도 있는 게 천변 산책의 묘미이기도 하다. 발바닥공원에서 방학천을 따라 중랑천에 이르기까지는 약 1㎞ 거리인데 그 산책로에서도 많은 꽃을 볼 수 있다. 영어명이 ‘goldenrain tree’란 영어명을 지닌 모감주나무가 노란 꽃을 활짝 피워 황금색 꽃비를 뿌려대고, 금은화로 불리는 인동꽃도 초록 덩굴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오가는 사람들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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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흐르는 방학천을 한가로이 유영하는 오리 떼와 백로, 왜가리들도 이젠 인기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먹이 사냥에 열중이다. 벽을 타고 오른 능소화도 요염하게 피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개망초도 무더기로 피어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중랑천의 산책로를 따라 조성해 놓은 꽃양귀비 꽃밭은 흰 개망초꽃이 흐드러지게 핀 강둑을 배경 삼아 바람을 타고 하늘거리는 모습이 매혹적이다. 선홍빛의 꽃양귀비를 보면 꽃 자체도 매혹적이지만 그 꽃을 따라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이 있어 무연히 바라볼 수가 없다. 어머니와 단둘이 지내던 시절, 어머니와 함께 양귀비꽃 구경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구순을 훌쩍 넘긴 연세임에도 당신의 꽃밭에 심겠다고 꽃씨를 받아 주머니에 넣으셨다. 양귀비꽃을 보면 햇볕에 익어 발갛게 상기된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오곤 한다.
양귀비 꽃밭을 지나 다리를 건너니 일순, 훅하고 더운 바람이 스치는데 낯설지 않은 냄새가 느껴졌다.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 두리번거리려니 눈앞에 금빛 물결이 출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보리밭이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하략)” 보리밭을 보는 순간 어린 시절 들었던 노래 ‘보리밭’이 떠오르며 유년의 기억들이 어제 일처럼 선연히 떠오른다. 내가 어렸을 적엔 찔레꽃이 필 무렵부터 밤꽃이 필 때까지를 맥령기(麥嶺期), 즉 보릿고개라 불렀다. 쌀독은 비어가고 아직 보리 이삭은 익지 않아 궁핍하던 시기를 이르는 말이 바로 ‘보릿고개’였다.
보리밭은 천변을 오가는 사람들을 위해 구청에서 관상용으로 가꾸어 놓은 것이겠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이 젖었다.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자연보다 위대한 도서관은 없다. 천변을 걸으며 내가 보고 듣고 오감으로 읽어낸 자연의 문장들이 나의 여름을 더 푸르게 만들어 줄 것이다. 김사인 시인은 ‘공부’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날이 저무는 일/ 비 오시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 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 섰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 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
갈수록 삶이 팍팍해진다고 느껴진다면 잠시 천변에 나와 자연이 펼쳐 놓은 여름 풍경 속을 거닐어 볼 일이다.
이미지 확대보기백승훈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