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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에너지 톺아보기] 군사안보와 에너지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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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에너지 톺아보기] 군사안보와 에너지안보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이미지 확대보기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세계 각국은 국방 예산을 늘리고 첨단 무기를 개발하는 데 막대한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 그러나 현대 군사력은 전력 공급이 끊기고 연료가 고갈되는 순간 무력화된다. 전투기는 연료 없이 뜰 수 없고, 구축함은 항해할 수 없으며, 미사일 방어체계와 지휘통제망은 안정적 전력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 21세기 국가안보의 축은 더 이상 군사력 하나가 아니다. 군사안보와 에너지안보는 국가 생존을 지탱하는 하나의 전략체계로 통합되고 있다.

이 두 축이 가장 격렬히 부딪치는 현장은 뜻밖에도 해상풍력·태양광의 '입지 선정'이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자립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발전 시설이 군 작전 경로를 제한하거나 방공 레이더망을 교란하는 일이 빈번하다. 거대 풍력터빈 블레이드의 고속 회전은 전파 간섭을 일으켜 레이더 화면에 허위 표적을 만드는 '클러터' 현상을 야기해 저고도 미사일이나 침투 기습을 탐지해야 할 군의 눈을 흐리게 한다.

재생에너지는 에너지안보를 강화하는 강력한 수단이지만, 잘못된 입지는 군사안보를 약화시킬 수 있다. 반대로 군사안보만을 이유로 모든 입지를 원천 봉쇄하면 국가의 미래 에너지 자립 기반이 무너진다. 군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안보의 본질상 당연한 임무이며, 이를 '발목 잡기'로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비난의 화살은 군이나 사업자가 아니라 두 안보 축의 충돌을 조율할 '제도의 공백'으로 향해야 한다.

더욱이 현대전은 선전포고와 함께 시작되지 않는다. 평시와 전시의 경계가 무너진 '회색지대 전술'과 '하이브리드 전쟁'이 이미 서막을 열었다. 적국이 민간 어선으로 위장해 해상풍력 단지 사이로 침투, 정찰을 감행하거나 전력망 제어시스템을 해킹해 지휘통제망 전력을 차단하는 시나리오는 더 이상 가상이 아니다. 전력망이 마비되면 최첨단 방공망도 한순간에 고철로 변한다. '전력망은 곧 새로운 방공망'인 셈이다.
이러한 모순을 먼저 겪은 선진국들은 안보를 타협하는 대신 제도와 기술로 안보의 영토를 넓혔다. 미국은 국방부·에너지부 등 6개 부처가 참여하는 'WTRIM(풍력터빈 레이더 간섭 완화)' 협의체를 통해 입지를 '무제한·조건부·제외 구역'으로 세분화, 민간에 예측 가능성을 제공한다. 최근 미국 연방법원이 합리적 근거 없이 국가안보라는 모호한 명분만으로 풍력 인허가를 무더기 동결한 정부 조치를 행정절차법 위반으로 무효화한 사례는, 안보 프레임 역시 고도화된 제도적 정당성 위에서 작동해야 함을 보여주는 무거운 경종이다. 영국은 한발 더 나가 올해 3월 9500만 파운드를 투입해 방공레이더를 업그레이드함으로써 해상풍력 10GW를 추가로 풀어내는 '윈-윈' 모델을 실증해 냈다.

대한민국 역시 변화의 문턱을 넘어섰다. 지난 3월 26일부터 '해상풍력법' 시행령이 발효되며 국가 주도 계획입지 체계가 본격 가동됐다. 국무총리 소속 해상풍력발전위원회가 신설되어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고, 풍황·환경·군 작전성을 종합 검토해 예비지구를 지정한 뒤 경제성·수용성·계통까지 살펴 발전지구로 확정하는 이원 절차가 마련됐다. 입지 발굴 초기 단계부터 군 작전성을 스크리닝하는 구조가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을 시작했다는 점은 안보 갈등을 선제적으로 예방하려는 매우 다행스럽고 고무적인 진전이다.

하지만 이 제도가 완전한 생명력을 얻으려면 세 가지 고도화 과제가 남아 있다. 첫째, 군 작전성 검토가 단순한 '통과냐 거부냐'의 단선적 심사에 그치지 않도록 국방부 내 상설 거버넌스를 부처 간 협력 체계로 완비해야 한다. 둘째, 부처 공동의 해양 디지털 지도를 군사기밀 노출 없이 터빈 높이 조정이나 레이더 흡수 소재 적용 등 기술적 조율 조건을 신속히 피드백하는 미국식 '동적 안보입지 매핑 시스템'으로 고도화해야 예측 가능성이 생긴다. 셋째, 해상풍력 인프라를 적의 회색지대 도발을 감시하는 최전방 초소로 역활용하고, 주요 군사기지 주변을 분산형 에너지·ESS로 무장한 마이크로그리드 특구로 지정해 전력망 붕괴 시에도 작전 지속 능력을 보장하는 '안보 융합형 국방 설계'로 나아가야 한다.

군사안보와 에너지안보는 대립 항이 아니다. 둘 다 국가 생존을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동등한 축이다. 지휘통제 화면의 전원이 켜져 있어야 전방의 무기체계도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 문제는 풍력발전기나 태양광 패널 자체가 아니라 복합적 갈등을 조율하지 못하는 국가 거버넌스의 역량 부족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재생에너지를 무작정 많이 짓는 나라를 넘어 군사작전과 에너지전환이 정교하게 공존하는 '전략 공간'을 설계하는 유능한 안보 국가로 진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