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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환율 더 떨어진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무서운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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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환율 더 떨어진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무서운 경고

실질실효환율의 내막 신현송 총재의 시그널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실질실효환율, 신현송 총재의 시그널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실질실효환율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22일 기준금리를 연 3.00%로 동결했다. 7월과 8월 연속 인상 이후 첫 숨 고르기다. 하지만 이날 기자간담회의 무게중심은 금리가 아니라 환율에 있었다. 원·달러 환율이 1320원대까지 내려왔는데도 신 총재는 원화가 아직 약세라고 진단했다. 국제결제은행(BIS) 실효환율로 보면 원화 가치가 예년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이다. 환율이 더 내려갈 여지가 있고, 한은은 이를 반긴다는 뜻이다.

실질실효환율은 원화의 진짜 값을 보여 주는 지표다. 달러 하나가 아니라 한국과 거래하는 여러 나라 통화와 원화를 비교하고, 각국의 물가 차이까지 반영한다. 2020년을 100으로 놓고 100보다 낮으면 원화가 싸게, 높으면 비싸게 평가됐다는 뜻이다. 신 총재에 따르면 이 지수의 장기 평균은 101 정도다. 그런데 환율이 1480원이던 8월 말에는 89에 불과했다. 장기 평균보다 13%가량 낮다. 6월에는 82.99까지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이후 17년여 만의 최저치다. 원화가 금융위기 수준으로 싸게 거래됐다는 얘기다.

원·달러 환율만 보면 착시가 생긴다. 달러가 전 세계적으로 강해지면 원화가 멀쩡해도 환율은 오른다. 반대로 달러가 약해지면 원화 사정이 별로 나아지지 않아도 환율은 내린다. 실질실효환율은 이런 착시를 걷어 낸다. 신 총재가 원·달러 환율 대신 이 지표를 꺼낸 것은 달러 탓이 아니라 원화 자체가 싸다는 점을 분명히 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8월 잭슨홀 회의에서 달러 가치가 오르는 동안에도 원·달러 환율이 내린 점을 들어 원화가 대외 충격에 면역력을 갖췄다고 평가한 바 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반도체 호황으로 경상수지 흑자는 국내총생산(GDP)의 6%를 넘는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이 8월 전망치 3.3%를 상당 폭 웃돌 것으로 본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해 원화 가치가 적정 수준보다 5.8~9.2% 낮다고 평가했다. IMF는 그 원인으로 원화 약세와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 확대를 꼽았다. 경제는 튼튼한데 돈값만 싸다. 이유는 돈의 흐름에 있었다.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주식을 대거 사들였고, 외국인은 크게 오른 한국 주식을 팔아 차익을 챙겼다. 달러가 계속 빠져나가니 원화가 약해진 것이다. 경제 체력이 아니라 수급이 환율을 끌어올렸다. 신 총재가 초여름의 1500원대 환율을 비정상이라고 부른 이유다.

한은은 이미 행동으로 보여 줬다. 신 총재가 처음 주재한 5월 금통위 무렵 환율은 1500원대를 오르내렸다. 그는 당시 환율 쏠림은 용인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이어 7월과 8월 두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올렸다. 미국 연준보다 먼저 움직인 것이다. 신 총재는 이달 국감에서 두 차례 인상이 환율 안정에 큰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이번 동결을 호미질의 결실이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금리로 환율을 끌어내렸고, 이제는 그 흐름이 이어져도 된다는 것이다.

신 총재는 열흘 전 국정감사에서도 환율이 아직 예년보다 높아 더 내려갈 여지가 있다고 했다. 이번에는 실질실효환율이라는 숫자로 그 말을 뒷받침했다. 최근의 환율 하락은 비정상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이고, 그 과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앙은행 총재가 공개석상에서 이렇게까지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사실상 원화 강세를 반긴다는 신호로 읽어야 한다. 1320원대인 지금도 실질 기준으로는 원화가 싸다는 것이 한은의 판단이다.

한은이 원화 강세를 반기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는 물가다. 소비자물가는 3% 안팎으로 목표치 2%를 웃돌고, 한은은 내년 물가가 기존 전망보다 높아질 것으로 본다. 원화가 강해지면 수입품 가격이 내려가 물가를 누른다. 수입 원자재를 쓰는 기업의 비용 부담과 해외여행·유학 경비도 줄어든다. 금리를 올리지 않고도 긴축 효과를 얻는 셈이다. 둘째는 서민 살림이다. 신 총재는 원화가 10% 강해지면 소득 하위 20% 가계의 구매력이 0.4% 이상 늘고, 그 효과가 상위 20%보다 크다고 했다. 소득이 적을수록 생활비에서 물가 부담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환율이 높으면 수출 대기업은 웃지만 장바구니 물가에 시달리는 것은 서민이다. 원화 강세는 양극화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는 말이다.

신 총재가 하지 않은 말도 있다. 그는 원화 가치가 반드시 장기 평균까지 회복돼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특정 환율 수준을 목표로 삼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는 환율이 상황에 따라 장기 평균을 웃돌 수도, 밑돌 수도 있다고 했다. 또 취임 직후부터 환율 쏠림에는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밝혀 왔다. 정리하면 방향은 하락, 속도는 완만하게다. 환율이 한쪽으로 급격히 쏠리면 오르든 내리든 개입하겠다는 원칙은 그대로다.
환율 하락이 모두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몇 달 사이 환율은 1500원대에서 1320원대로 10% 넘게 떨어졌다. 가격 경쟁력으로 버티는 중소 수출기업에는 큰 부담이다. SK하이닉스의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 자금이나 수출기업의 달러 매도 같은 일시적 요인이 하락을 거든 측면도 있다. 엔화 가치가 바닥인 상황에서 원화만 강해지면 일본과 경쟁하는 업종은 더 힘들어진다. 수출이 반도체에 쏠려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 원화 강세의 근거도 함께 사라진다. 미국 금리가 한국보다 1%포인트가량 높고, 개인들의 해외 주식 투자도 계속되고 있다. 달러가 다시 빠져나갈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신현송 총재의 메시지는 적어도 현 단계에서는 환율이 더 내려갈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은이 환율 하락의 흐름을 막지도 않겠다고 했다. 경제 체력에 비해 지나치게 싼 원화는 제값을 찾아가야 한다. 신 총재는 환율이 경제에 대한 신뢰의 상징이라고 했다. 원화가 제값을 받는다는 것은 한국 경제가 그만큼 신뢰받는다는 뜻이다. 남은 과제는 금리만으로 풀 수 없다. 해외 주식 투자로 인한 달러 유출을 완화할 장치, 국민연금의 환헤지 확대, 외환시장 구조 개선이 함께 가야 한다. 올해 마지막 금통위는 다음 달 26일 열린다. 환율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한은이 얼마나 정교하게 속도를 관리하느냐가 관건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