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후공정 기업 ASE, 기타큐슈 투자 결정 1년째 미뤄...'채산성' 고심
TSMC·삼성 등 투자 열기 속 미쓰비시·로옴은 '속도 조절'... 전망·우려 교차
TSMC·삼성 등 투자 열기 속 미쓰비시·로옴은 '속도 조절'... 전망·우려 교차

ASE의 기타큐슈 진출 계획은 지역의 초미의 관심사다. 2024년 7월 말, 기타큐슈 학술연구도시 안 약 16헥타르 터의 시 소유지 취득 가계약을 맺은 지 곧 1년이 다가오나 최종 결정은 여전히 안갯속에 있다. 기타큐슈시의 한 관계자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방향을 지켜보지 않으면 일본에서 후공정 사업의 채산성을 가늠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며 속내를 내비쳤다. 시의회에서도 "기업 쪽 판단이 진전됐을 때 지체 없이 대응하도록 정보 교환을 계속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되풀이했다.
이 부지는 기타큐슈 학술연구도시의 마지막 남은 산업용지로, 시가 'G-CITY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삼고 있다. TSMC(전공정)와 ASE(후공정)가 모두 규슈에 자리 잡으면 일본 안에서 설계부터 조립까지 한 번에 하는 생산 체제를 완성해 '실리콘 아일랜드'의 진정한 부활을 기대하게 한다. ASE 유치가 도시 발전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1년 새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관세를 다시 생각하면서 기업들의 관심이 과세를 피할 수 있는 미국으로 쏠리고 있다. 실제로 대만 TSMC와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는 각각 600억~1000억 달러(약 81조 3300억~135조 5500억 원)에 이르는 대미 투자를 발표했다.
◇ 美 관세와 인력난… 기회와 위기 공존
물론 규슈의 강점도 여전하다. 고토 아키라 일본대만교류협회 타이베이 사무소 경제부 주임은 "미국에서는 인력 확보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규슈가 좋은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모여있는 공급망을 통해 좋은 부품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규슈의 투자 열기 속에서도 모든 기업이 속도를 내는 것은 아니다. 현재 규슈에는 TSMC가 구마모토현에 제1공장(2024년 12월 양산)과 제2공장(2025년 착공) 건설을 확정했고, 삼성 같은 세계적인 기업과 로옴, 미쓰비시전기 등 일본 기업들의 투자가 잇따르고 있다. 일본 정부 역시 TSMC에만 7320억 엔(약 6조 9105억 원)의 보조금을 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 AI '맑음' vs 전기차 '흐림'... 엇갈린 투자 시계
여기에 정체된 반도체 경기는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공지능(AI)용 반도체는 호황이지만, 전기차(EV)용 파워 반도체 등은 회복이 더디기 때문이다. 미쓰비시 전기는 오는 11월 구마모토현 기쿠치시에 파워 반도체 새 공장을 가동하나, 추가 증설 투자는 2031년 뒤로 미뤘다. 스에쓰구 에이지 미쓰비시 전기 파워 디바이스 제작소장은 "처음 2028년쯤 수요가 정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으나, 현재 경기가 좋지 않은 쪽으로 흐르는 것은 사실"이라며 "변화가 있다면 그때그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로옴(ROHM)의 사정도 비슷하다. 미야자키현 구니토미초의 새 공장은 지난해 11월 가동을 시작해 2026년 4월부터 파워 반도체를 생산할 예정이나, 본격적인 대규모 양산 시점은 정하지 못했다. 다만, 웨이퍼를 대형화해 생산성을 기존보다 2배 높이는 등 다음 세대 기술 개발로 회복기를 대비한다.
규슈 안 반도체 관련 투자는 2030년까지 총액 6조 엔(약 56조6292억 원)을 웃돌고, 이에 따른 경제 파급 효과는 23조 엔(약 217조786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미국의 관세 정책과 시장 침체라는 이중고가 겹치면서 불확실성도 짙어지고 있다. '신생 실리콘 아일랜드'의 앞날에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기업과 지방자치단체 모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처지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