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핏의 은퇴 선언과 머스크의 연방정부 해체 행보, 트럼프 일가의 암호화폐 사업이 대조적이라는 분석이다.
뉴요커에 따르면 버핏은 지난 3일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에서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지난 1964년 회사를 인수한 뒤 60년간 회사를 이끈 그는 현재 94세로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며 소박한 생활과 막대한 기부로 존경을 받아왔다.
그가 회사를 맡은 이래 버크셔 해서웨이 주가는 폭등했다. 1964년 100달러(약 14만원)를 투자했다면 작년 말 기준 약 550만 달러(약 78억원)의 가치가 됐을 만큼 투자자들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A클래스 주식이 역사적인 주가 상승률를 기록했다는 뜻이다.
반면, 트럼프 일가는 최근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이라는 암호화폐 회사를 통해 트럼프 이름을 내건 밈 코인을 출시했다. 이 회사는 다른 암호화폐 기업들에 트럼프 브랜드 사용권을 고액에 판매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트럼프 밈 코인 보유량 상위 220명에게는 워싱턴 소재 트럼프 골프장에서 열리는 ‘프라이빗 디너’ 초청을 약속했고 상위 25명은 VIP 리셉션과 특별 투어까지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소비자연맹 소속 코리 프레이어 투자자보호국장은 “지금 이들은 대놓고 돈을 내면 만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라며 “전형적인 페이 투 플레이(pay-to-play)”라고 비판했다. 페이 투 플레이란 돈을 내야만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뜻한다.
버핏과 절친한 관계였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또 다른 인물인 머스크에 대해서도 직격했다. 그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머스크가 미국 국제개발처(USAID)를 해체하면서 아프리카 빈곤층 어린이들에게 제공되던 HIV 치료제까지 중단됐다”며 “세계 최고 부자가 세계 최빈국 어린이를 죽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머스크는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이끄는 기업가이자 2기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신설된 정부효율부의 수장으로 백악관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미국 연방정부의 각종 기능을 민간에 넘기고 있으며 대규모 정부 계약을 통해 사적 이득을 얻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뉴요커는 이같은 상황을 20세기 초 사회비평가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과 연결했다. 베블런은 자본가를 직접 생산에 참여하는 ‘산업계급’과 자본 소유만으로 이익을 취하는 ‘금전계급’으로 나눴다. 이 분석대로라면 머스크는 겉으론 산업계급이지만 실질적으론 금전계급에 가깝다는 게 뉴요커의 지적이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비교적 장기투자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으며 큰 스캔들에 연루된 적도 없다. 지난 2008년에는 중국 최대 전기차 제조업체 비야디에 2억3000만 달러(약 3274억원)를 투자했고 이 기업은 올해 테슬라를 제치고 글로벌 전기차 판매 1위를 기록했다. 현재 버크셔의 보유지분 가치는 수십억 달러에 이른다.
버핏은 또 2006년부터 버크셔 주식을 순차적으로 기부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약 600억 달러(약 85조원)를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2010년에는 빌 게이츠, 멀린다 게이츠와 함께 ‘기빙 플레지’ 캠페인을 시작해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서약한 초고액 자산가들을 이끌었다.
그는 2010년 발표한 글에서 “나의 부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고 유리한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며 복리 이자의 혜택을 본 덕분”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전쟁터에서 사람을 구한 군인은 훈장을 받고, 훌륭한 교사는 감사 편지를 받지만 시장 왜곡을 감지한 사람은 수십억 달러를 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같은 불평등한 보상 구조를 지적하며 미국 연방 세법상 자신의 실효세율이 비서보다 낮다는 점을 들어 세제 개혁을 촉구했다.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는 이를 ‘버핏 룰’로 명명하고 연간 100만 달러(약 14억원) 이상을 버는 가구가 중산층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받지 않도록 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2024년 버크셔 해서웨이는 미국 전체 기업의 5%에 해당하는 268억 달러(약 40조원)의 연방 법인세를 납부했다. 버핏은 지난 2월 주주서한에서 “버크셔의 조카와 조카딸들이 내년에 더 많은 세금을 보내길 바란다”며 “삶에서 짧은 지푸라기를 뽑은 이들을 보살펴야 한다”고 당부했다.
뉴요커는 “베블런은 금전계급을 거리의 비행 청소년과 비슷하다고 봤다”며 “이들은 다른 이들의 감정이나 장기적 영향 따위는 무시한 채 사람과 재화를 거리낌 없이 자기 이익을 위해 전용하는 집단”이라고 지적했다. 뉴요커는 “이 묘사가 오늘날 누구를 떠올리게 하는지는 독자 스스로 판단할 몫”이라고 덧붙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