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말 재집권 이후 밀어붙이고 있는 약값 인하 정책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트럼프발 고관세 정책은 약값은 물론 생산지와 공급망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5일(이하 현지 시각) CNBC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날 이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소규모 관세로 시작하겠지만 1년에서 최대 1년 반 안에 관세율을 150%, 이후 250%까지 인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들어 예고한 의약품 관세 중 가장 높은 수치다.
◇ “국가 안보에 관한 사안”…232조 조사에 근거
이 같은 조치는 미국 상무부가 지난 4월 개시한 ‘무역확장법 232조(Section 232)’ 조사와 연계돼 있다. 이 조항은 수입품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필요시 대통령이 직접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법적 근거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약을 우리나라에서 만들기를 원한다”며 자국 내 생산을 재촉했다.
실제로 미국의 의약품 제조 기반은 지난 수십 년간 해외로 이전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공급망 불안정이 부각되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의료·방산 중심의 제조업 회귀를 적극 추진해왔다.
◇ 일라이 릴리·J&J 등 미국 내 투자 확대…대통령 압박에 대응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글로벌 제약사들은 미국 내 생산시설 투자로 대응하는 모양새다. CNBC는 “최근 6개월 사이 일라이 릴리와 존슨앤드존슨(J&J) 등 주요 제약사들이 미국 내 생산 투자 계획을 내놨다”고 보도했다. 업계는 고율 관세를 피하는 동시에 백악관과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약값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관세가 소비자 부담을 낮추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약가 연동 정책까지 병행…“제약사 전방위 압박”
이번 관세 방침은 트럼프 행정부가 약가 인하를 핵심 국정 과제로 삼고 있는 기조와도 맞물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미국에서 판매되는 약값을 해외 선진국 가격에 연동시키는 ‘최혜국대우’ 정책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그는 “해당 정책을 이미 발동했고, 약값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7개 제약사에 서한을 보내 다음 달 29일까지 자발적 약값 인하 방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서한에는 미국의 메디케이트 환자에게 타국 최저가로 전 제품군을 공급하라는 구체적인 조건도 포함됐다. 일부 제약사는 현재 이 요청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제약업계 반발…“공급망 붕괴·R&D 위축” 경고
그러나 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계획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제약협회를 비롯한 다국적 기업들은 고율 관세가 오히려 소비자 가격을 밀어올리고 공급망 불안정과 연구개발(R&D) 투자 축소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미국에서 약을 더 비싸고 더 늦게 만나게 할 수 있다”면서 “결국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책이 바뀔 때마다 투자 방향이 흔들리는 건 글로벌 시장에 불확실성을 키운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이후 약가·반도체·에너지 등 전략산업 전반에 걸쳐 강경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다시 강화하고 있다. 특히 약값 문제는 고령층 유권자에게 민감한 사안으로 행정부의 핵심 추진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
다만 CNBC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반복적으로 예고한 뒤 번복해온 전례가 있어 최종 관세율이 실제로 250%까지 인상될지는 불확실하다”고 덧붙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