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솔루스첨단소재, '캐즘' 뚫고 퀘벡에 깃발…韓 정부 2000억 '실탄' 지원

글로벌이코노믹

솔루스첨단소재, '캐즘' 뚫고 퀘벡에 깃발…韓 정부 2000억 '실탄' 지원

수출입은행·기재부 '공급망 기금' 1호 투입…총 8000억 규모 북미 전지박 거점 속도
2026년 양산 목표 '북미 유일' 동박 공장…IRA 파고 넘을 핵심 '히든카드' 부상
캐나다 퀘벡주 그랑비(Granby)에 건설 중인 솔루스첨단소재의 자회사 볼타 에너지 솔루션(VESC)의 전지박 공장 조감도. 한국 정부의 공급망 안정화 기금 투입으로 2026년 가동 목표에 청신호가 켜졌다. 사진=볼타 에너지 솔루션이미지 확대보기
캐나다 퀘벡주 그랑비(Granby)에 건설 중인 솔루스첨단소재의 자회사 볼타 에너지 솔루션(VESC)의 전지박 공장 조감도. 한국 정부의 공급망 안정화 기금 투입으로 2026년 가동 목표에 청신호가 켜졌다. 사진=볼타 에너지 솔루션

글로벌 전기차(EV) 시장에 드리운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의 그림자 속에서도 한국 소재 기업의 북미 공급망 구축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솔루스첨단소재의 캐나다 자회사인 '볼타 에너지 솔루션 캐나다(VESC)'가 퀘벡주 그랑비(Granby)에 건설 중인 전지박(구리박) 공장에 한국 정부 차원의 대규모 정책 자금이 수혈된다. 이는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전지박의 북미 현지 생산 능력을 조기에 확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파고를 넘고 현지에 진출한 한국 배터리 셀 제조사들의 공급망 안보를 책임지겠다는 전략적 포석이다.

17일(현지시각) 캐나다 자동차 전문 매체 오토모티브 뉴스 캐나다(Automotive News Canada)와 국내 관련 당국에 따르면, VESC는 지난 15일 한국 정부로부터 1억9400만 캐나다달러(약 2000억 원) 규모의 자금 지원을 확정받았다. 이로써 총 7억5000만 캐나다달러(약 8000억 원)에 달하는 퀘벡 프로젝트는 업계의 역풍을 뚫고 2026년 가동을 향한 9부 능선을 넘게 됐다.

韓 '공급망 기금'의 첫 북미 상륙작전


이번 자금 지원의 핵심은 한국 기획재정부가 조성하고 한국수출입은행이 운용하는 '공급망 안정화 기금(Supply Chain Resilience Fund)'이다. 정부는 VESC를 '공급망 선도기업'으로 지정하고, 미화 약 1억4000만 달러(1억9400만 캐나다달러)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단순한 개별 기업 지원이 아니다. 한국수출입은행(KEXIM), 한국무역보험공사(K-SURE), 한국산업은행(KDB) 등 한국의 대표 정책금융기관들이 총출동하고, 여기에 캐나다 수출개발공사(EDC)까지 가세한 '한-캐나다 금융 연합군'이 결성된 결과다. 앞서 퀘벡 주 정부가 약속한 1억5000만 캐나다달러 규모의 대출(일부 탕감 조건)과 캐나다 연방 정부의 7000만 캐나다달러 상당 세액 공제 혜택까지 더하면, 그랑비 공장은 한·캐 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건설되는 '경제 안보의 상징'이 됐다.

북미 유일의 전지박 생산 기지, 2026년 '가동'


그랑비 공장은 북미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미싱 링크(Missing Link)'를 채울 핵심 퍼즐이다. 현재 북미 지역에는 대규모 전지박 생산 시설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전지박은 배터리 음극재의 집전체로 쓰이는 필수 소재로, 얇고 길게 만드는 기술력이 배터리 성능을 좌우한다.

VESC는 기존 공장을 리트로핏(Retrofit·설비 개조)하는 방식으로 공사 기간을 단축, 2026년 하반기 상업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초기 생산 능력은 연간 2만5000톤으로 시작해, 시장 수요에 맞춰 최대 6만3000톤까지 단계적으로 증설할 계획이다. 이는 전기차 약 250만 대에 공급할 수 있는 막대한 물량이다.

현지 언론들은 이 공장이 완공되면 북미 배터리 밸류체인 내에서 대체 불가능한 전략적 지위를 확보할 것으로 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북미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있는 한국 배터리 3사가 중국산 소재 의존도를 낮추고 IRA의 북미산 부품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솔루스첨단소재의 전지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위기일수록 '선제 투자'…캐즘 너머를 보다

최근 전기차 시장 둔화로 인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투자 속도를 조절하는 상황에서 단행된 이번 투자는 '위기 속 기회'를 포착하려는 역발상 전략으로 풀이된다. 당장의 수익성보다는 2~3년 뒤 시장이 회복기에 접어들었을 때 누구보다 먼저 양산 체제를 갖추고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지다.

캐나다 입장에서도 이번 프로젝트는 놓칠 수 없는 호재다. 리튬, 양극재, 배터리 셀 생산에 이어 전지박까지 확보하게 되면서 퀘벡주는 명실상부한 '북미 배터리 허브'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됐다. 이번 프로젝트로 약 260개의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되며, 퀘벡 정부는 이를 기후 정책과 산업 전략이 결합한 '클린테크 제조'의 성공 사례로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이번 2000억 원의 자금 수혈은 한국 소재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파고 속에서 생존을 넘어 주도권을 쥐기 위한 승부수다. 한·캐 양국 정부의 금융 공조는 향후 배터리 광물 및 소재 분야에서 유사한 협력 모델이 확산하는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