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위노동비용 1.9% 급락, ‘고임금·저물가’ 실현… 연준 금리인하 명분 확보
글로벌 생산성 디커플링 심화… 미국 ‘나 홀로 질주’ 속 한국·EU는 ‘제자리’
전통 제조업 위축 vs AI·방산 독주… 2026년 ‘이중 경제’ 고착화 우려
“규제 완화와 노동 유연성이 관건”… 韓 경제, ‘패스트 팔로어’ 전략 한계 직면
글로벌 생산성 디커플링 심화… 미국 ‘나 홀로 질주’ 속 한국·EU는 ‘제자리’
전통 제조업 위축 vs AI·방산 독주… 2026년 ‘이중 경제’ 고착화 우려
“규제 완화와 노동 유연성이 관건”… 韓 경제, ‘패스트 팔로어’ 전략 한계 직면
이미지 확대보기미 노동통계국(BLS)은 지난 8일(현지시각) 지난해 3분기 비농업 부문 노동생산성이 전 분기 대비 연율 4.9%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월가 전문가들의 예상치인 3.0%를 크게 웃도는 수치이자, 직전 분기(4.1%)의 상승 폭을 넘어선 ‘어닝 서프라이즈’다.
AI 도입 효과 본격화… ‘J커브’ 변곡점 지났다
이번 지표는 미국 경제가 기술 혁신을 통해 구조적 ‘체질 개선’에 성공했음을 시사한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챗GPT가 등장한 2022년 3분기 이후 최근 3년의 연평균 생산성 성장률은 2.53%로, 이전 5년(2.05%)보다 가파르게 상승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생산성 J커브(J-curve)’ 이론이 현실화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에릭 브린욜프슨 스탠퍼드대학교 교수는 배런스와의 인터뷰에서 “신기술 도입 초기에는 업무 재설계와 인력 재교육으로 생산성이 정체되지만, 이 기간이 지나면 급격히 솟구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기업의 AI 도입률이 10%대에 그쳐 ‘생산성 절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이번 깜짝 실적은 그 잠복기를 끝내고 본격적인 수확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생산성 향상은 ‘비용의 역설’을 만들어냈다. 3분기 단위 노동비용은 전 분기 대비 1.9% 하락했다. 시간당 임금이 2.9% 올랐음에도 생산성이 4.9%나 뛰면서 기업의 비용 부담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이는 기업이 제품 가격을 올리지 않고도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는 동시에 연방준비제도(Fed) 금리 인하 행보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2026년이 AI 도입에 따른 ‘생산성 배당금(Productivity Dividend)’을 본격적으로 거둬들이는 원년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J커브의 평탄한 바닥을 지나 급격한 상승 곡선에 올라탔다는 분석이다.
골드만삭스 리서치는 최신 보고서에서 “2026년 미국 경제의 생산성 증가율이 연평균 3%대를 상회하며 ‘뉴 노멀(New Normal)’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IT와 금융 등 일부 서비스업에 국한됐던 생성형 AI의 활용 범위가 제조, 물류, 헬스케어 등 실물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며 파급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란 논리다.
특히 ‘에이전트(Agent) AI’의 상용화가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자율형 AI가 기업의 업무 흐름에 결합하면서 업무 효율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는 “2027년까지 지식 근로자 업무의 60~70%가 자동화될 수 있으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 연간 수조 달러의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러한 생산성 혁명은 거시경제 환경을 ‘고성장·저물가’ 구조로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다. 높은 생산성은 기업이 임금을 올려주면서도 제품 가격을 동결하거나 낮출 여력을 제공한다. 이는 소비 여력 증대→수요 증가→기업 투자 확대라는 선순환 고리를 만든다.
다만, 그림자도 존재한다. AI 격차에 따른 기업 간 승자독식 구조가 심화하고, 단순 사무직이나 저숙련 노동자의 일자리 위협이 현실화할 수 있다. 2026년은 기술이 주는 풍요와 그에 따른 분배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합의’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엇갈린 성적표… 美 ‘독주’ vs 韓·EU ‘제자리걸음’
미국이 AI라는 강력한 엔진을 달고 생산성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동안, 경쟁국들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2025년 글로벌 경제는 미국의 ‘생산성 독주’와 나머지 국가들의 ‘정체’로 요약되는 극심한 양극화 양상을 보였다.
유럽연합(EU)의 상황은 심각하다. 유로스타트(Eurostat)에 따르면 유로존의 2025년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0.8% 수준에 머물렀다. 강력한 노동 규제와 더딘 AI 도입 속도, 에너지 비용 부담이 겹치며 미국의 5분의 1 수준 성장에 그쳤다. 특히 ‘유럽의 병자’로 전락한 독일은 제조업 부진이 길어지며 마이너스 성장을 가까스로 면한 수준이다.
아시아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중국은 부동산 침체와 내수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며 ‘중진국 함정’의 경고등이 켜졌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신질 생산력(New Quality Productive Forces)’을 앞세워 기술 혁신을 독려하고 있지만, 급격한 인구 감소와 서방의 기술 제재로 인해 지난해 생산성 증가율은 3%대를 위협받고 있다. 과거 고성장 시대의 6~7%대 효율성은 옛말이 됐다. 일본 역시 엔저(低) 효과에 기댄 수출 실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고령화에 따른 구조적 노동력 부족 탓에 생산성 지표는 1%대 초반 박스권에 갇혀 있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한국이다. 한국은행과 한국생산성본부(KPC)의 최신 자료를 종합하면, 한국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1.8~2.0% 수준으로 추산된다. 반도체 등 일부 주력 제조업은 AI 반도체 수요 폭발로 호황을 누렸지만, 서비스업의 낮은 생산성과 경직된 노동시장이 발목을 잡았다. 미국과의 생산성 격차가 2배 이상 벌어지며, 추격자 모델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인도는 5%대 높은 생산성 향상을 보였으나, 이는 낮은 기저효과와 인프라 확충에 기인한 것으로 AI 주도형 혁신과는 거리가 있다.
전통 제조업의 비명… 화려한 지표 속 ‘그림자’
미국의 거시 지표가 샴페인을 터뜨리는 사이, 바닥 경기에서는 비명이 들린다. 미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12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7.9를 기록하며 10개월 연속 기준선(50)을 밑돌았다. 제조업 GDP의 85%가 위축 국면에 빠져 있다. 신규 주문과 고용 지수 모두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AI와 첨단 산업이 이끄는 ‘윗목’은 뜨겁지만, 전통 제조업이 머무는 ‘아랫목’은 여전히 냉골이다.
수전 스펜스 ISM 제조업 경기조사위원회 위원장은 “고금리와 원자재 가격 상승, 관세 압박이라는 삼중고가 전통 산업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주식시장에서 엔비디아 등 AI 관련주와 방산주가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는 동안, 일반 제조 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감원과 비용 절감에 내몰리는 형국이다. 이는 AI 도입 여부와 자본력에 따라 기업 간, 산업 간 격차가 돌이킬 수 없이 벌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2026년, ‘이중 경제’ 고착화와 연준의 딜레마
경제 전문가들도 2026년 미국 경제가 화려한 헤드라인 지표와 냉혹한 체감 경기 사이에서 극심한 괴리를 겪는 ‘이중 구조(Dual Economy)’가 고착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월가 투자은행(IB)들의 2026년 연간 전망 보고서를 종합하면,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GDP 성장률의 ‘착시 효과’다. 골드만삭스는 2026년 미국 경제가 2% 초중반의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성장의 과실이 상위 10%의 빅테크 기업에 집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S&P 500 기업 이익 증가율은 두 자릿수를 기록하겠지만, 러셀 2000(중소형주) 기업들의 이익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 간 부의 편중을 넘어, 지역 간(테크 허브 vs 러스트 벨트), 계층 간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켜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뇌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양극화는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셈법을 복잡하게 만든다.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물가 상승 압력을 낮춰주는 것은 긍정적이나, 전통 제조업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고금리 기조를 완화해야 한다는 압박이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는 2026년 연준이 물가 안정보다는 ‘고용 방어’와 ‘제조업 연착륙’에 무게를 두고 금리 인하 사이클을 가동할 것으로 예측한다. 하반기로 갈수록 금리 인하 효과가 실물 경제에 스며들며 전통 산업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겠지만, 이미 한계 상황에 직면한 기업들의 도산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고용시장에서는 ‘질적 변화’가 예고된다. 전체 실업률은 4%대 초반의 안정세를 유지하더라도, 내용면에서는 제조업 현장직이 줄고 AI 관리 및 데이터 분석 등 기술직이 느는 ‘구조적 미스매치(Mismatch)’가 발생할 것이다. 배런스는 “전통 제조 현장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이 첨단 산업으로 즉각 흡수되기 어려운 현실이 2026년 고용시장의 가장 큰 리스크”라며, 재교육 시스템과 사회적 안전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기술 실업’이 가시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26년 미국 경제는 AI라는 강력한 성장 엔진을 달고 질주하겠지만, 그 뒤안길에는 전통 산업의 구조조정이라는 긴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이다. 이 ‘K자형 성장’의 간극을 얼마나 좁히느냐가 미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재산업화+규제 완화’가 핵심… 한국 경제의 과제
미국의 사례는 단순히 기술 도입만으로는 생산성 혁신을 이룰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저스틴 플라워데이 TD 웰스 자산관리 전무이사는 “서구 경제의 부활은 ‘재산업화’와 과감한 ‘규제 완화’가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금융과 에너지 부문의 빗장을 풀고, 노후 인프라 개선에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부으며 기업 활동의 마찰 비용을 줄인 것이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이는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가 주목할 부분이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반도체 등 일부 수출 주력 업종을 제외하면 디지털 전환 속도가 더디고,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위기를 돌파하려면 미국처럼 AI를 전 산업에 빠르게 확산시키는 한편, 노동 유연화와 규제 개혁을 병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세계적 수준의 IT 인프라를 갖추고도 낡은 제도에 갇혀 ‘생산성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생산성 향상은 임금 상승과 물가 안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AI가 연 새로운 성장 시대, 한국 경제도 ‘추격자’가 아닌 ‘선도자’로서 생산성 혁명의 파고에 올라탈 수 있을지, 정부와 기업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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