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힐링마음산책(326)] 공감의 심리학과 변화의 메커니즘

글로벌이코노믹

[힐링마음산책(326)] 공감의 심리학과 변화의 메커니즘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소통의 완성은 이해받음에 있다. 영화배우 유해진이 유배지의 고립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간적 연대와 마음을 열고 서로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소통의 완성은 이해받음에 있다. 영화배우 유해진이 유배지의 고립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간적 연대와 마음을 열고 서로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함께 있음'보다 '이해받음'이 먼저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David Riesman)이 1950년에 출간한 고전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변화가 개인의 성격을 어떻게 재편하는지 추적한 명저다. 리스먼은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사회적 성격을 전통지향형, 내부지향형, 타인지향형으로 구분했다. 농경 중심의 전통 사회에서는 관습이 절대적인 기준이었고, 산업화 초기에는 부모나 교육을 통해 내면화된 목표가 삶의 나침반이 되었다. 그러나 고도의 소비 사회이자 서비스 중심 사회로 진입한 현대는 타인지향형 인간을 주류로 만들어냈다.

타인지향형 인간은 타인의 기대와 사회적 분위기라는 레이더를 머릿속에 세우고 살아간다. 이들은 주변의 승인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조정하며, 사교적이고 소통에 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은 지독한 불안과 공허에 시달린다. 자아의 기준이 외부에 있기에 타인의 반응이 사라지는 순간 자신의 존재 가치마저 흔들리기 때문이다. 리스먼은 이를 ‘고독한 군중’이라 불렀다. 현대인이 겪는 고독의 본질은 물리적으로 혼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타인 속에 과도하게 매몰되어 정작 자기 자신과의 깊은 접촉을 잃어버린 데 있다.

이러한 실존적 위기는 오늘날 디지털 초연결 사회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수백 명과 연결되어 있고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지만, 현대인의 고립감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소통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었으나 소통의 질은 파편화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관계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인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단순한 물리적 ‘함께 있음’인가, 아니면 깊은 정서적 ‘이해받음’인가.

신뢰의 기원

우리는 흔히 고통스러운 순간에 누군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고 믿는다. 물론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인간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물리적으로 누가 옆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심리적 안정으로 이어지지만은 않는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회자되듯이 오히려 마음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 한 공간에 머무를 때 혼자 있을 때보다 더 심한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가 왕왕 있다. 반면 물리적으로 수천㎞ 떨어져 있더라도 누군가 나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 인간은 놀라울 정도의 회복탄력성을 발휘한다.

이는 인간에게 더 근본적인 욕구가 타인의 존재를 물리적으로 확인하는 것보다 타인과 정서적 공감의 관계에 있음을 시사한다. 발달심리학의 토대인 애착 이론은 이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한다. 영아가 양육자에 대해 형성하는 근본적인 신뢰는 양육자가 단순히 아이 곁을 지킨 시간의 양에 비례하지 않는다. 핵심은 양육자가 아이의 미세한 신호를 민감하게 읽어내고, 그 신호에 적절하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이는 자신의 배고픔이나 기저귀의 불편함을 해결해 주는 기능적 존재로서의 양육자를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는 존재, 즉 자신의 내면 상태를 이해해 주는 존재에게 마음을 연다. 신뢰의 출발점은 돌봄이라는 물리적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이해라는 정서적 사건이다. 이러한 초기 경험은 성인이 된 이후의 대인관계와 사회적 신뢰 형성 과정에서도 변함없이 반복된다. 우리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보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더 깊이 신뢰하며, 그 신뢰를 바탕으로 비로소 자기 변화의 힘을 얻는다.

상담심리학 분야에서 지난 수십 년간 이루어진 수많은 연구는 내담자를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 무엇인지를 추적해 왔다. 결과는 일관적이다. 세련된 상담 기법이나 논리적인 조언, 혹은 화려한 이론적 분석은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했다. 변화의 핵심은 상담자가 보여주는 ‘공감적 이해’의 수준이었다.

인간은 자신의 방어 기제가 완벽하게 작동할 때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타인의 비판이나 강요는 오히려 방어의 벽을 높일 뿐이다. 그러나 누군가 나의 고통과 모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덩어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이해해 준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방어를 내려놓는다. 이해받는 경험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할 용기를 준다.
변화는 설득이나 조언을 들을 때가 아니라 내가 이해받고 있다는 안전한 기반 위에서 스스로를 드러낼 때 시작된다. 이는 교육 현장이나 가정 그리고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보편적 원리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그를 가르치려 하기보다 먼저 그가 처한 맥락과 감정의 흐름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해는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의도보다 앞서야 하는 관계의 전제 조건이다.

관계 중심적 문화에서 이해의 가치


문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해받음의 가치는 서구 사회보다 동아시아 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서구의 개인주의 문화권에서 인간은 독립된 주체로서 자신의 욕구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이들에게 신뢰란 대개 호혜적인 계약이나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능적 신뢰의 성격을 띤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관계 중심 문화권에서 개인은 타인과의 관계망 속에서 비로소 정의되는 ‘상호 의존적 자기’를 형성한다. 여기서 신뢰는 단순한 기능적 도움을 넘어선다. 한국인이 누군가를 진정으로 믿을 때 나를 잘 안다고 표현하는 것은, 상대방이 나의 사회적 지위뿐만 아니라 나의 내밀한 마음의 결까지 파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관계 중심 사회에서 이해받음은 단순한 심리적 만족이 아니라 존재의 정당성을 부여받는 사회적 사건이다.

특히 동아시아 문화에서 ‘수치(羞恥)’라는 정서는 타인의 평가를 내면화하면서 발생하는 감정이다. 이해받지 못하고 거부당하는 경험은 동아시아인에게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수치심을 유발한다. 반대로 공감은 이러한 수치를 완화하고 관계를 회복시키는 강력한 해독제가 된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안다는 확신은 수치심의 그늘에서 벗어나 관계 속으로 다시 걸어 나오게 하는 구원의 힘이 된다.

뇌과학이 증명하는 이해의 효능


최근의 사회신경과학 연구는 공감이 인간의 뇌에 미치는 영향을 생물학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사람이 누군가에게서 진정한 공감을 받을 때, 뇌에서 불안을 담당하는 편도체의 활성은 급격히 낮아진다. 동시에 감정을 조절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전전두엽 영역은 활성화된다. 이는 공감이 단순한 주관적 느낌을 넘어 신체적으로 안전한 상태를 구축하고 인지 능력을 회복시키는 신경학적 사건임을 보여준다. 단순히 곁에 있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뇌는 물리적 현존보다 정서적 연결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현대 조직 경영의 핵심 화두인 심리적 ‘안전감(安全感)’과도 직결된다. 구글의 대규모 프로젝트 등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높은 성과를 내는 팀의 공통점은 팀원들이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표현했을 때 비난받지 않고 이해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조직 구성원이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는 환경에서 팀의 창의성과 몰입도는 극대화된다. 상사가 구성원을 얼마나 가까이 관리하고 통제하느냐는 성과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오히려 상사가 부하 직원의 고충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느냐가 핵심 변수다. 관리보다 이해가 앞설 때 조직은 비로소 유기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변화와 성장을 일구어낼 수 있다.

소통의 양에서 이해의 깊이로


관계를 다시 정의해야 할 시점이다. 관계는 물리적 거리나 접촉의 빈도로 형성되지 않는다. 관계의 본질은 이해의 깊이에 있다.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이해가 없다면 관계는 단절된 상태나 다름없다. 반면 비록 멀리 떨어져 있고 소통의 빈도가 적더라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면 그 관계는 강력한 생명력을 유지한다.

현대 사회의 소통 과잉은 역설적으로 이해의 빈곤을 드러낸다. 더 많이 말하고 더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소통을 방해할 때가 많다. 타인을 설득하기에 앞서 먼저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율적’ 인간이란 타인의 시선에 종속되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깊이 이해할 줄 아는 존재다. 이 근본적인 원리를 회복하는 것이 개인의 성숙한 삶은 물론, 우리 사회의 신뢰 자본을 재건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함께 있음은 소통의 전제 조건일 뿐이며,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소통의 완성은 이해받음에 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