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ITC, AI 메모리 핵심 '3D 적층 특허' 조사 착수… '제2의 넷리스트' 악몽에 투자심리 위축
ASML에 80억 달러 장비 투자로 정면 돌파… HBM4 기술 격차로 공급망 주도권 유지 노려
삼성·마이크론 반사이익 노리는 가운데 '특허 리스크 vs 기술 지배력' 고난도 외줄타기
ASML에 80억 달러 장비 투자로 정면 돌파… HBM4 기술 격차로 공급망 주도권 유지 노려
삼성·마이크론 반사이익 노리는 가운데 '특허 리스크 vs 기술 지배력' 고난도 외줄타기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3D 적층 구조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라이선스 수익을 추구하는 미국 IP 기업 모놀리식 3D(Monolithic 3D)의 소송을 받아들여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특허 침해 여부를 가리기 위한 공식 조사에 착수하면서, 그간 순항하던 글로벌 확장 전략에 빨간불이 켜졌다. 독일 경제 매체 트레이딩 트레프(Trading-Treff)는 1일(현지시각) 보도를 통해 이번 특허 분쟁이 SK하이닉스의 미국 증시 상장과 대규모 설비 투자 계획에 미칠 파장을 집중 조명했다.
'모놀리식 3D'가 쏜 화살, 수입 금지 공포 불러… 공급망 재조정 우려 확산
이번 ITC 조사의 파괴력은 주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조사 착수 소식이 전해진 후 SK하이닉스 주가는 2일(오전 9시 30분 기준) 88만5000원을 기록했다. 앞서 이 소식이 본격화된 시점을 전후해 주가는 한때 19% 가량 급락한 바 있다.
투자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2021년 넷리스트(Netlist)에 4000만 달러(약 605억 원)를 지불했던 과거 사례를 넘어선 '미국 내 제품 배제 명령(Exclusion Order)' 가능성이다.
소송을 제기한 모놀리식 3D는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3D 적층 구조 관련 특허 라이선스 수익을 추구하는 이른바 '특허 관리 전문 기업(NPE)'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소송이 HBM 핵심 기술인 3D 적층 구조 관련 특허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클 것으로 본다.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점은 수입 금지 명령 자체보다, 공급망 안정성을 중시하는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들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발주를 분산할 가능성이다. 업계에서는 법적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경우 고객사들이 공급선 다변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번 분쟁이 최대 100억 달러(약 15조1300억 원) 규모로 추진 중인 미국 증시 상장(IPO) 과정에서 기업가치 할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ASML에 80억 달러 투자… 기술 격차로 법적 리스크 상쇄 노려
법적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도 SK하이닉스는 공격적 투자로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최근 네덜란드 ASML에 약 80억 달러(약 12조1000억 원) 규모의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를 발주했다. 이는 회사 규모를 고려할 때 이례적으로 큰 투자로, 차세대 16층 HBM4 시장에서 경쟁사와의 격차를 벌리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HBM3e 수율을 약 80%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보고 있으며, HBM4 12단 샘플 공급도 병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대규모 투자는 단순히 생산능력을 늘리는 차원을 넘어, 기술적 '대체 불가능성'을 높여 법적 리스크를 상쇄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시장 참여자가 주목해야 할 3대 시나리오
업계에서는 이번 분쟁을 한국 반도체 기업의 글로벌 입지를 시험하는 고난도 전략 국면으로 규정한다. 향후 전개 양상에 따른 세 가지 핵심 시나리오와 파급 효과를 정리한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조기 합의다. 가장 현실적인 출구다.
가장 가능성이 높으면서도 SK하이닉스에 실리적인 방향은 '전격적인 조기 합의'다. 미 ITC의 예비 판정이 나오기 전, SK하이닉스가 모놀리식 3D 측에 일정 수준의 로열티를 지급하거나 특허 사용 계약을 체결해 분쟁을 종결짓는 시나리오다.
당장의 비용 지출은 불가피하다. 2021년 넷리스트에 4000만 달러를 지급했던 사례처럼 수백억 원대의 합의금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투자업계에서는 이를 '악재 해소'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무엇보다 최대 100억 달러 규모로 추진 중인 미국 IPO가 법적 걸림돌 없이 제 궤도에 오를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불확실성이 제거되면 기업가치 산정 과정에서 우려됐던 법적 리스크 할인 요인도 빠르게 해소될 전망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분쟁 장기화다. 삼성·마이크론의 상대적 반사이익 현실화가 예상된다.
소송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장기전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SK하이닉스에 가장 불리한 전개다. 법적 불확실성이 길어질수록 주요 고객사들의 공급망 재조정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급망의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빅테크 기업들은 특정 공급사에 리스크가 감지되면 공급선 다변화를 검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과정에서 HBM 시장의 후발 주자인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반사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미국 기업인 마이크론은 자국 생산 기반이라는 이점이 더해져 점유율 확대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수입 금지 명령이다. 최악의 성적표다.
가장 파괴적인 시나리오는 ITC가 모놀리식 3D의 손을 들어주며 '미국 내 제품 수입 제한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이 경우 SK하이닉스의 HBM 일부 제품에 대한 미국 시장 접근이 제한될 수 있으며, 매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다만 ITC의 수입 금지 명령은 적용 범위가 제한적으로 결정되는 경우도 있고, 피소 기업이 우회 공급이나 설계 변경 등의 대응책을 마련하는 사례도 있다는 점에서 실제 파급력의 크기는 판정 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주가에 추가적인 하락 압력이 가해질 수 있으며, 인디애나주에 계획 중인 후공정 공장 건설 등 미국 내 투자 전반에도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
SK하이닉스는 '법적 방어'와 '기술 가속'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시장에서는 이번 분쟁을 한국 반도체 기업의 글로벌 입지를 시험하는 고난도 전략 국면으로 본다.
투자자들은 앞으로 ① ITC의 예비 판정 결과, ② 주요 고객사의 분기별 공급망 발주 비중 변화, ③ 미국 IPO 공모가 산정 추이를 핵심 지표로 삼을 필요가 있다. 80억 달러의 대규모 투자가 승부수가 될지는, 기술적 우위를 법적·외교적 협상력으로 얼마나 빠르게 전환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