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그날 미국 뉴욕증시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DJIA)는 단 하루 만에 22.61%라는 무시무시한 수치로 폭락했다. 이는 1929년 전 세계를 장기 대공황의 참화로 몰고 갔던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의 하루 폭락률(11.7%)을 두 배 가까이 상회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단 일과성 거래일 동안 뉴욕 자본시장에서만 약 5,000억 달러의 시가총액이 증발하였으며, 그 여파는 시차를 두고 아시아와 유럽을 거쳐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을 도미노처럼 무너뜨렸다.
1987년의 대파국을 단순한 일시적 기술적 오류나 심리적 공황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모든 위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시경제적 균열에서 시작된다. 1980년대 초중반, 미국 경제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이른바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에 힘입어 전례 없는 구조적 호황을 구가하고 있었다. 대규모 감세와 규제 완화, 그리고 국방비 증액을 골자로 한 공급 사이드 경제학은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했고, 자본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다. 폭락 직전인 1987년 8월까지 다우존스 지수는 연초 대비 40% 이상 급등하며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었다. 시장은 영원한 상승 랠리의 환상에 도취해 있었다.
그 화려한 축제의 이면에는 ‘쌍둥이 적자(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라는 치명적인 부실이 자라나고 있었다. 대규모 감세와 군비 확장은 정부의 재정 적자를 심화시켰고, 달러화 강세는 무역 수지를 지속적으로 악화시켰다. 1985년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를 통해 달러화 가치의 인위적인 하락을 유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외 불균형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달러화 가치의 추가적인 급락을 방어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을 통제하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금리 인상 기조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자본의 조달 비용을 높이는 금리 인상은 자산 가격의 밸류에이션에 즉각적인 하향 압력을 가하게 된다. 서독의 분데스방크가 독자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며 국제 공조 체제에 균열이 가자, 글로벌 자본시장에는 불안감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즉, 시장의 기초 체력(펀더멘털)에 가해진 거시경제적 하방 압력과 지정학적 정책 갈등이 거대한 폭발을 앞둔 화약고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인간의 오만함이 간과한 것은 ‘시장 구성원 전체가 동일한 프로그램 모델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상호작용’의 파괴력이었다. 10월 19일 월요일 개장 직후, 거시경제적 불안으로 인해 주가가 소폭 하락하자, 수많은 기관투자자의 컴퓨터 시스템은 일제히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자동으로 ‘매도’ 주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컴퓨터에는 이성적 판단이나 시장 상황에 대한 관조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입력된 조건에 따라 기계적으로 매도 버튼을 누를 뿐이었다. 이 기계적 매도가 주가를 더욱 끌어내렸고, 주가의 추가 하락은 또 다른 컴퓨터 시스템의 매도 조건을 충족시켰다는 점이다. 매도가 매도를 부르고, 그 매도가 다시 더 큰 매도세를 촉발하는 기괴한 연쇄 반응, 즉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와 ‘카스케이드 효과(Cascading Effect)’가 시장을 지배했다. 인간이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만든 ‘보험’이, 역설적이게도 시장 전체를 파멸로 몰고 가는 가장 치명적인 무기가 된 것이다. 이는 현대 금융공학이 마주한 첫 번째 거대한 역설이었다.
10월 19일의 폭락은 시차를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글로벌 패닉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욕 시장의 하락세에 영향을 받은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증시가 개장과 동시에 폭락했고, 이 바통을 이어받은 영국 런던과 유럽 증시가 일제히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문을 연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전 세계에서 밀려드는 엄청난 양의 팔자 주문으로 인해 당시 뉴욕증권거래소의 컴퓨터 처리 능력은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거래 체결이 수십 분씩 지연되었으며, 주가 시세표는 실시간 가격을 반영하지 못하고 과거의 수치를 보여주는 오작동을 일으켰다. 트레이더들은 자신이 들고 있는 주식의 현재 가치가 얼마인지조차 모르는 극한의 정보 차단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정보의 불확실성은 인간 본연의 가장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한다. 주가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 수 없게 되자, 투자자들은 무조건 시장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맹목적 패닉에 사로잡혔다. 뉴욕증권거래소 객장의 트레이더들은 머리를 감싸 쥐고 절망에 빠졌으며, 매수 세력은 시장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성적 판단이 마비된 시장에서 가격은 자유낙하 했고, 다우지수 22.61% 폭락이라는 참혹한 숫자는 그렇게 새겨졌다.
블랙먼데이가 발생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은 1929년의 대공황이 재현될 것이라며 전전긍긍했다. 주가의 대폭락은 자산 효과의 상실로 이어져 소비를 위축시키고, 금융기관의 연쇄 도산을 부르며, 결과적으로 실물 경제를 장기 침체의 늪으로 빠뜨리기 때문이다. 1987년의 결말은 1929년과 달랐다. 여기에는 중앙은행의 신속하고 과감한 개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사건 당시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취임한 지 불과 두 달밖에 되지 않았던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은 위기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폭락 이튿날인 10월 20일 아침, 그린스펀 의장은 단 한 문장으로 구성된 짧고 강력한 성명을 발표했다.
1987년 블랙먼데이는 금융 역사에 깊은 상흔을 남겼지만, 동시에 시장을 더욱 건강하고 견고하게 만드는 중요한 제도적 혁신의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 금융 당국과 시장 참여자들은 기계적 알고리즘과 인간의 공포가 결합했을 때 통제 불능의 폭주가 일어날 수 있음을 절감했다. 이에 따라 도입된 가장 대표적인 안전장치가 바로 ‘서킷 브레이커(Circuit Breaker)’ 제도이다. 주가가 일정 비율 이상 급락할 경우, 시장 전체의 매매 거래를 15분에서 30분 동안 강제적으로 일시 중단시키는 이 제도는 투자자들에게 기계적 폭주를 멈추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재평가할 수 있는 ‘냉각기(Cooling-off Period)’를 제공한다. 블랙먼데이 당시 시세 확인조차 불가능한 상태에서 무차별적인 매도가 쏟아졌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컴퓨터 시스템의 처리 용량을 대폭 확충하고, 선물 시장과 현물 시장 간의 연계 리스크를 관리하는 다양한 규제 장치들이 이때를 기점으로 정비되었다. 1987년의 비극은 자본시장에 ‘속도 조절’과 ‘안전 벨트’가 왜 필수적인지를 가르쳐준 비싼 수업료였던 셈이다. 블랙먼데이가 발생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현대 금융 시장은 1987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되었다. 이제는 초고속 통신망과 인공지능(AI), 그리고 고주파 매매(HFT: High-Frequency Trading) 알고리즘이 시장 거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매매의 속도는 나노초(nanosecond) 단위로 빨라졌고, 글로벌 자본의 이동성은 극대화되었다.
기술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블랙먼데이를 끊임없이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위기의 본질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0년 뉴욕 증시를 순식간에 붕괴시켰던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 사태나, 최근 발생했던 여러 차례의 글로벌 증시 변동성 확대는 1987년의 알고리즘 폭주가 형태만 바꾼 채 언제든 재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도로 지능화된 AI 알고리즘 역시 예상치 못한 극단적 상황(Black Swan)을 마주하면 상호 동질적인 매도 루프를 형성하여 시장을 파국으로 몰고 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블랙먼데이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리스크 관리는 수학적 모델에 대한 맹신이 아닌, 인간의 탐욕과 공포에 대한 겸손함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본시장은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아무리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하더라도 구성원들의 군집 행동(Herding Behavior)과 시스템적 교란을 완벽히 예측할 수는 없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 역사를 되풀이하는 형벌을 받는다. 블랙먼데이의 기억은 현대 금융 시장이 번영을 지속하기 위해 끊임없이 반추해야 할 준엄한 교훈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