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10만건·분당 8건꼴…금융권 “플랫폼 책임 강화해야”
이미지 확대보기범죄자들은 AI로 유명인이나 가족의 목소리를 흉내 내고 로맨스 사기 피해자와 결혼까지 하며 돈을 빼앗는 등 수법을 고도화하고 있다.
BBC는 영국 금융업계 단체 UK파이낸스의 연례 보고서를 인용해 지난해 영국에서 실제 금전 피해가 발생한 사기 사건이 410만건으로 집계됐다고 1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는 하루 평균으로 환산하면 1분에 약 8건꼴이다.
UK파이낸스는 사기 범죄가 피해자 개인의 금융 손실을 넘어 ‘국가안보 위협’ 수준으로 커졌다고 지적했다. 조직범죄 집단이 막대한 자금을 빼앗고 있으며 피해자는 금전 손실뿐 아니라 죄책감과 수치심 등 심각한 정서적 피해를 겪고 있다는 얘기다.
◇ AI로 목소리 조작, 로맨스 사기도 고도화
UK파이낸스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권은 범죄자들이 AI를 활용해 더 정교하고 대규모로 사기를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범죄자들은 AI로 유명인의 목소리뿐 아니라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구 목소리까지 흉내 내 피해자를 속이고 있다.
AI 기술은 사기 범죄의 규모를 키우는 데도 쓰인다. 과거에는 범죄자가 직접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야 했지만 이제는 자동화된 도구와 조작된 음성·이미지로 더 많은 피해자를 동시에 노릴 수 있다.
로맨스 사기도 심각한 문제로 지목됐다. 범죄자들은 SNS나 데이트 앱에서 가짜 프로필을 만들고 피해자와 장기간 관계를 쌓은 뒤 돈을 요구한다. UK파이낸스는 “사기범이 피해자와 결혼한 뒤 계속 돈을 빼앗은 사례도 있었다”고 밝혔다.
BBC는 노스요크셔의 플로리스트 커스티 게스트의 사례도 전했다. 그는 데이트 앱에서 ‘패트릭’이라는 남성을 만난 뒤 수개월 동안 관계를 이어갔지만 상대는 다른 남성의 사진을 도용한 사기범이었다. 사기범은 출장 중 사고를 당했다고 속여 돈을 보내게 했고 게스트는 8만파운드(약 1억6300만원)를 잃었다.
◇ 투자사기 피해 40% 급증
사기 유형별로는 투자사기 피해가 특히 크게 늘었다. UK파이낸스에 따르면 지난해 투자사기 손실액은 1년 전보다 40% 급증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온라인 구매 관련 사기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증가했다. 범죄자들은 훔친 카드 정보나 가짜 판매자 계정을 이용해 온라인 거래를 악용하고 있다.
반면 은행, 경찰, 공공기관 등을 사칭해 피해자에게 돈을 ‘안전 계좌’로 옮기라고 속이는 사칭 사기는 11% 줄었다. 일부 전통적 수법은 줄었지만 AI와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새로운 수법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실제 피해 규모가 통계보다 더 클 것으로 본다. 상당수 피해자가 수치심이나 두려움 때문에 신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 은행권 “기술 플랫폼도 책임져야”
은행권은 금융사만으로는 사기 범죄를 막기 어렵다며 IT기업의 책임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사기 광고, 가짜 판매자 계정, 조작된 프로필이 대부분 SNS와 온라인 장터, 데이트 앱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루스 레이 UK파이낸스 경제범죄 담당 이사는 “한 번의 클릭으로 평생 모은 돈을 잃을 수 있다”며 “금융권은 고객 보호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지만 유일한 방어선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SNS와 온라인 장터 같은 기술 플랫폼에 더 강력하고 집행 가능한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사기 광고의 신속한 삭제, 판매자 검증 강화, 안전한 결제 시스템 도입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바클레이스의 폴 데이비스 경제범죄 책임자도 사기 피해가 단순한 금전 손실을 넘어 큰 정서적 피해를 남긴다고 지적했다. 그는 피해자가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문제의 근원에서 사기를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 승인송금 사기 환급에도 피해 증가
피해자가 스스로 송금하도록 속이는 승인송금(APP) 사기도 늘었다. 영국에서는 이런 사기 피해자 대부분이 은행으로부터 손실을 환급받을 법적 권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승인송금 사기 손실액은 19% 증가했다. 전체 피해액 가운데 12%는 환급되지 않았다. 환급 제도가 있어도 사기 자체가 빠르게 늘어나면 피해자 보호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범죄자들은 사회적 관심사와 대형 행사를 노리는 방식으로도 수법을 바꾸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며칠 또는 몇 주 사이 남자 축구 월드컵과 관련한 사기가 급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짜 티켓, 여행상품, 기념품 판매 등을 이용한 사기가 늘 수 있다는 뜻이다.
영국 금융권은 AI 악용 사기가 앞으로 더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은행의 감시와 환급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한 만큼 기술 플랫폼과 온라인 장터, 데이트 앱까지 책임을 나눠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BBC는 덧붙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