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미국 뉴욕의 중심지 월스트리트에서 '황제(Emperor)'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유일한 인물이 있다. 글로벌 자산 규모 1위이자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를 20년 가까이 이끌고 있는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 CEO가 그 주인공이다. 금융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수많은 천재와 야심가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동안 그는 오랫동안 흔들리지 않는 절대 권력을 유지해 왔다. 제이미 다이먼은 1956년 3월 13일 미국 뉴욕의 그리스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그리스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후 성을 '파파디미트리우'에서 '다이먼'으로 바꾸고 증권 브로커로 일했다. 아버지인 시어도어 다이먼 역시 주식 중개인으로 활동했다.
다이먼은 어린 시절부터 가업이나 다름없던 금융업의 냄새를 맡으며 자랐다. 뉴욕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그는 특별히 가난하거나 극적인 시련을 겪지는 않았으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가 들려주는 주식 시장과 경기 변동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경제적 감각을 익혔다. 그는 뉴욕의 사립학교를 거쳐 터프츠 대학교(Tufts University)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그의 관심사는 경제학과 심리학이었다. 인간의 심리가 시장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연구하는 데 흥미를 느꼈던 그는 졸업 후 하버드 경영대학원(MBA)에 진학했다. 하버드 MBA 시절의 다이먼은 특출하게 화려한 천재 유형은 아니었으나, 지독한 워커홀릭이자 데이터 분석에 집요한 학생으로 통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의 인생을 바꾼 운명적인 멘토를 만나게 된다.
하버드 MBA를 졸업할 당시 다이먼은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유수의 투자은행들로부터 입사 제안을 받았다. 그는 안정적인 대형 은행 대신 당시 금융계의 거물이었던 샌디 워일(Sandy Weill)의 비서직을 선택했다. 가족의 지인이었던 샌디 워일은 다이먼의 총명함과 지치지 않는 체력을 높이 평가했고, 다이먼 역시 워일의 밑에서 금융업의 거대한 판을 짜는 법을 배우고자 했다.1982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동행은 이후 15년 넘게 이어졌다. 샌디 워일이 회사를 나와 상업금융회사인 커머셜 크레디트(Commercial Credit)를 인수했을 때도 다이먼은 그의 오른팔로 함께 움직였다.그 시기 다이먼이 보여준 핵심 역량은 '철저한 비용 절감'과 '정교한 통합 능력'이었다. 두 사람은 프라이메리카, 트래블러스 그룹 등을 잇달아 인수합병(M&A)하며 덩치를 키웠다. 1998년에는 마침내 씨티코프(Citicorp)까지 집어삼키며 세계 최대의 금융그룹인 씨티그룹(Citigroup)을 출범시켰다. 40대의 젊은 나이에 다이먼은 씨티그룹의 사장 자리에 오르며 월가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뱅크원의 CEO로 부임한 다이먼은 특유의 리스크 관리 능력을 발휘했다. 부실 채권을 과감히 정리하고, 복잡한 전산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했으며, 방만한 지출을 통제했다. 다이먼의 지휘 아래 뱅크원은 단 3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완벽하게 부활했다. 이 성공을 눈여겨본 대형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가 2004년 뱅크원을 58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결정하면서, 다이먼은 피인수 기업의 경영자임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인정받아 JP모건체이스의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로 복귀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5년 12월, 마침내 CEO 자리에 올랐다. 제이미 다이먼이 단순한 대형 은행 CEO를 넘어 '월가의 황제'라는 독보적인 지위에 오른 결정적 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그 당시 월가의 대다수 은행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저신용자 대상 주택담보대출)를 기반으로 한 복잡한 파생상품에 투자해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있었다. 리먼브러더스, 메릴린치, 씨티그룹 등 내로라하는 금융기관들이 고위험·고수익 트렌드에 동참했다.
다이먼의 JP모건체이스는 달랐다. 다이먼은 평소 '요새와 같은 대차대조표(Fortress Balance Sheet)'를 유지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내일 당장 전쟁이 나거나 시장이 마비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자본력과 유동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리스크가 명확히 파악되지 않는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의 비중을 선제적으로 줄였다. 당장 눈앞의 수익률은 경쟁사보다 낮아 보였지만, 이 철저한 보수주의가 은행의 목숨을 구했다.2008년 위기가 가시화되자 다른 은행들은 연쇄 파산 위기에 직면했으나, JP모건체이스는 홀로 튼튼한 자본력을 유지했다. 2008년 3월, 파산 직전에 몰린 월가 5위의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를 전격 인수하여 금융 시장의 1차 붕괴를 막았다.같은 해 9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저축은행 파산 사태가 발생하자 워싱턴뮤추얼의 자산과 영업망을 인수하며 소매금융 부문을 획기적으로 강화했다.
위기 속에서 모두가 몸을 사릴 때 다이먼은 미국의 금융 시스템을 방어하는 방패 역할을 자처하는 동시에, 경쟁사들을 헐값에 매입하며 JP모건체이스를 미국 부동의 1위 금융그룹으로 키워냈다. 이 시기부터 언론과 시장은 그를 '월가의 황제'라 부르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때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재무부는 다이먼에게 구원 요청을 보냈다. 다이먼이 월가에서 장기 집권하며 성공을 이어온 비결은 화려한 거시경제 예측에 있지 않다. 그의 리더십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세부적인 원칙에 기반한다.
그는 매주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재무 보고서를 직접 읽고 수치를 검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회의 석상에서 임원들이 모호한 표현을 쓰면 호통을 치며 정확한 데이터와 논리를 요구한다. 거시적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철저히 숫자로 리스크를 계량화하는 능력이 그의 가장 큰 무기다.평소에는 보수적으로 자본을 축적하지만,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면 주저 없이 대규모 베팅을 감행한다. 베어스턴스 인수 당시 밤을 새워 가며 정부 관료들과 협상하고 주당 2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인수를 타결지은 일화는 그의 과감한 실행력을 잘 보여준다.다이먼은 대기업 특유의 무사안일주의와 관료주의를 극도로 혐오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숨기지 말고 즉시 보고하도록 유도하며, 최고경영자 자신도 정치가나 관료들에게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의견을 피력한다. 이러한 투명성이 조직의 위기 대응 속도를 높였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