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저널 G] 열돔에 끓는 유럽, 선선한 한국…북반구 여름이 갈라졌다

글로벌이코노믹

[저널 G] 열돔에 끓는 유럽, 선선한 한국…북반구 여름이 갈라졌다

한국은 덜 끈적한 6월 말, 프랑스는 44도 육박 폭염
제트기류 굽이침이 만든 극단의 날씨
전날인 28일 울산대공원 숲길에서 시민들이 산책하고 있다. 6월 말인데도 낮은 습도와 장마 지연 영향으로 한반도에는 비교적 덜 끈적한 여름 체감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박근호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전날인 28일 울산대공원 숲길에서 시민들이 산책하고 있다. 6월 말인데도 낮은 습도와 장마 지연 영향으로 한반도에는 비교적 덜 끈적한 여름 체감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박근호 기자
6월 말 한반도에서 낯선 여름이 이어지고 있다.

낮에는 30도 안팎까지 기온이 오르지만 아침저녁 공기는 끈적이지 않다. 밤에는 창문을 열면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고, 에어컨을 켜지 않고도 잠드는 집이 적지 않다. 장마철 특유의 눅눅한 공기가 늦어지면서 시민들의 체감도 예년 6월 말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같은 시기 유럽은 정반대의 여름을 통과하고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 독일, 네덜란드 등 서유럽과 중부 유럽에는 40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이어졌다. 파리는 6월 기온 기록을 갈아치웠고, 프랑스 일부 지역에서는 40도를 훌쩍 넘는 고온이 나타났다.
열차 운행은 줄었고, 야외 행사는 취소됐으며, 파리에서는 폭염 속 공공장소 음주 제한까지 내려졌다.

올해 6월 말의 날씨는 온도 차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한국의 선선함은 낮은 습도와 장마 지연에서, 유럽의 위험은 고온과 열돔, 취약한 냉방 인프라에서 읽힌다.

폭염 시대의 여름은 더 이상 기온계 숫자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공기 속 수증기량, 밤 기온, 도시와 건물의 냉방 능력이 생존 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파리 에펠탑 인근 트로카데로 분수대에서 시민과 관광객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유럽은 5월부터 이어진 고온 현상에 6월 말 40도 안팎의 폭염이 겹치며 교통·학교·의료 체계까지 압박을 받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이미지 확대보기
파리 에펠탑 인근 트로카데로 분수대에서 시민과 관광객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유럽은 5월부터 이어진 고온 현상에 6월 말 40도 안팎의 폭염이 겹치며 교통·학교·의료 체계까지 압박을 받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6월 말인데 왜 덜 끈적한가


한국의 6월 말 날씨가 이례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기온보다 습도에 있다.

여름 더위는 온도와 습도가 함께 만든다. 한낮 기온이 28~30도까지 올라도 공기 속 수증기량이 적으면 몸은 비교적 쉽게 식는다. 땀이 마르면서 피부의 열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반대로 같은 30도라도 습한 남풍이 강하게 들어오면 땀이 마르지 않는다. 체감온도는 실제 기온보다 높아지고, 밤에도 열이 빠져나가기 어렵다.

최근 한반도의 공기는 이 지점에서 예년 6월 말과 다르다. 장마를 끌어올리는 정체전선은 아직 일본 남쪽 먼바다에 머물고 있다.

한반도 상층에는 비교적 차고 건조한 공기가 머물고, 이동성고기압의 영향도 이어지면서 덥고 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의 북상이 늦어졌다. 남쪽의 고온다습한 수증기가 본격적으로 올라오지 못한 상태다.

시민들이 느끼는 선선함은 여름이 약해진 결과가 아니다. 더위의 재료 가운데 하나인 수증기 유입이 늦어진 데 가깝다. 낮 기온은 이미 여름이지만 공기의 질감은 장마 전 습한 여름과 다르다.

대기 상공 상당온위 분포도. 북쪽의 차고 건조한 공기 영향으로 정체전선과 북태평양고기압이 일본 남쪽에 머물면서 한반도에는 고온다습한 공기가 본격 유입되지 못하고 있다. 자료=기상청 이미지 확대보기
대기 상공 상당온위 분포도. 북쪽의 차고 건조한 공기 영향으로 정체전선과 북태평양고기압이 일본 남쪽에 머물면서 한반도에는 고온다습한 공기가 본격 유입되지 못하고 있다. 자료=기상청


장마는 늦어졌지만 여름은 물러난 게 아니다


현재의 선선함이 오래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기상청은 6월 말까지 장마가 시작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올해 장마가 기록적으로 늦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체전선은 일본 남쪽 해상에 머물고 있고, 7월 1일쯤 제주를 중심으로 비가 내릴 가능성은 있지만 이를 장마 시작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판단도 나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장마가 늦어진다고 여름 위험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정체전선이 뒤늦게 북상하면 짧은 기간에 강한 비가 집중될 수 있다. 장마 뒤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이 확장하면서 고온다습한 공기가 한반도를 덮을 가능성도 커진다.

기상청의 7월 6일부터 8월 2일까지 1개월 전망은 이 흐름을 뒷받침한다.

7월 둘째 주 이후 우리나라는 아열대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면서 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주평균기온은 7월 전 기간에 평년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고, 7월 첫째 주와 7월 말에는 강수량도 평년과 비슷하거나 많을 가능성이 제시됐다.

지금의 낮은 습도는 여름의 예외 구간일 수 있다. 7월에 장마와 폭염이 시간차를 두고 몰려오면 시민들이 체감하는 위험은 오히려 커질 수 있다.

선선한 6월 말이 안심 신호가 아니라, 뒤늦게 움직일 장마와 폭염을 앞둔 짧은 공백일 수 있다는 뜻이다.

유럽은 왜 열돔에 갇혔나


유럽의 폭염은 다른 대기 흐름에서 만들어졌다.

서유럽과 중부유럽 상공에는 고기압성 블로킹이 자리 잡았다. 특히 오메가 블로킹으로 불리는 기압 배치는 뜨거운 공기를 한 지역에 오래 붙잡아 둔다.

고기압이 뚜껑처럼 덮이면 공기는 아래로 가라앉으며 더 뜨거워지고, 구름과 비는 줄어든다. 지표면은 더 달아오르고 밤에도 열이 충분히 빠져나가지 못한다.

코페르니쿠스 센티넬-3 위성이 5월 26일 촬영한 유럽 지표면 온도 분포. 유럽은 5월부터 대륙 규모의 고온 현상이 이어졌고, 6월 말에는 프랑스 등에서 40도 안팎의 폭염이 나타났다. 자료=유럽우주국(ESA)이미지 확대보기
코페르니쿠스 센티넬-3 위성이 5월 26일 촬영한 유럽 지표면 온도 분포. 유럽은 5월부터 대륙 규모의 고온 현상이 이어졌고, 6월 말에는 프랑스 등에서 40도 안팎의 폭염이 나타났다. 자료=유럽우주국(ESA)


프랑스와 영국, 독일 등은 이 흐름 속에서 기록적인 6월 폭염을 겪었다.

프랑스는 6월 24일 전국 평균기온 30.0도를 기록하며 관측 이래 가장 더운 날을 맞았다. 일부 지역 최고기온은 44도에 육박했다. 파리도 40도를 넘기며 6월 기온 기록을 새로 썼다.

SNS에는 야외에 놓은 프라이팬 위에서 계란과 베이컨이 익는 장면까지 퍼졌다. 다만 이런 장면은 공식 기온보다 햇볕에 달아오른 금속 표면온도를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독일과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에서도 고온 경보와 학교 폐쇄, 행사 취소, 교통 차질이 이어졌다.

유럽 폭염의 위험은 기온만의 문제가 아니다.

도시와 주택, 철도, 병원, 학교가 과거의 온도 기준에 맞춰 설계된 데서 피해가 커진다. 유럽의 많은 주택은 겨울 보온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졌지만, 뜨거운 여름 열을 빼내는 데는 취약하다. 에어컨 보급률도 낮아 폭염이 길어지면 실내가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

고온에 습도까지 겹치는 지역에서는 인체 위험이 더 커진다.

습한 공기는 땀의 증발을 막는다. 체온을 낮추는 몸의 냉각 장치가 작동하기 어려워진다. 폭염이 위험한 이유는 낮 최고기온 하나가 아니라, 몸이 열을 버릴 통로를 잃는 데 있다.

파리 에펠탑 인근에서 시민들이 분무시설 아래를 지나며 폭염을 피하고 있다. 프랑스 등 서유럽에서는 열돔 현상으로 고온이 이어지면서 야외 활동 제한과 철도 운행 차질, 냉방 인프라 논쟁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파리 에펠탑 인근에서 시민들이 분무시설 아래를 지나며 폭염을 피하고 있다. 프랑스 등 서유럽에서는 열돔 현상으로 고온이 이어지면서 야외 활동 제한과 철도 운행 차질, 냉방 인프라 논쟁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도시 기능을 멈춰 세운 폭염


유럽의 폭염은 생활 불편을 넘어 인명 피해와 의료 부담으로 번졌다.

프랑스에서는 폭염을 피해 강과 호수 등으로 들어갔다가 숨진 익사자가 최소 55명으로 집계됐다. 이탈리아 주요 도시에서는 응급실 방문이 10~15% 증가했고, 스페인 일부 지역에는 40도를 웃도는 고온과 적색경보가 이어졌다.

도시의 일상도 바뀌었다.

파리 당국은 온열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공공장소 음주를 일시적으로 금지하고, 특정 시간대 주류 판매도 제한했다. 술은 탈수를 악화시키고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관광과 축제의 일부였던 야외 음주가 폭염 앞에서는 공공보건 위험으로 분류된 셈이다.

철도도 흔들렸다.

프랑스 국영철도 SNCF는 고온에 따른 선로 팽창, 전력 설비 부담, 냉방 장치 고장 우려 등을 이유로 주요 노선 시외열차 71편을 취소했다. 레일과 전차선, 전력 설비는 모두 열에 취약하다. 폭염이 교통 인프라의 안전성과 정시성을 흔드는 직접 요인으로 올라섰다.

전력 생산도 압박을 받았다.

프랑스 전력공사 EDF는 강물 온도 상승과 환경 규정을 이유로 일부 원자로를 일시 정지하거나 출력을 낮췄다. 원전은 냉각수로 강물을 사용한 뒤 다시 방류한다.

폭염으로 하천 수온이 오르면 생태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발전량을 제한해야 한다. 폭염이 전력 수요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전력 생산 능력까지 낮추는 역설이 나타난 것이다.

학교와 병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유럽 곳곳에서 학교는 휴교하거나 단축 수업에 들어갔다. 병원은 온열질환자 증가와 냉방 취약 시설 문제를 동시에 떠안았다. 일부 병원은 환자를 더 시원한 공간으로 옮기며 병동 운영을 조정했다.

폭염의 피해 범위는 야외 노동자와 노약자에 머물지 않는다. 교실, 병실, 열차, 도로, 발전소가 함께 흔들린다. 기온이 도시 기능을 직접 멈춰 세우는 시대가 시작됐다.

에어컨은 환경 논쟁에서 생존 인프라로


유럽에서 에어컨은 오랫동안 불편한 기술이었다.

전력을 많이 쓰고, 도시 바깥으로 더운 바람을 내보내며, 냉매 관리가 부실하면 온실가스 문제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 도시정책에서는 냉방보다 단열, 차양, 환기, 녹지, 건물 개선을 우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40도를 넘는 폭염은 논쟁의 무게중심을 바꿨다.

프랑스 정치권에서는 학교와 병원, 공공시설 냉방 확대가 정책 의제로 올라섰다. EDF는 학교와 유치원, 보육시설 냉방 설비 지원에 8000만 유로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도 과열된 병원 시설을 식히기 위한 별도 재정 투입 방침을 내놨다.

냉방은 생활 편의시설을 넘어 공공안전 장치가 되고 있다. 교실 수업을 이어가고, 병원 진료를 유지하고, 노인과 어린이를 보호하는 인프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한국도 같은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지금은 낮은 습도 덕분에 에어컨을 덜 켜는 6월 말이지만, 7월 이후 고온다습한 공기가 들어오면 냉방 수요는 다시 급증할 수 있다. 폭염은 전력 피크를 밀어 올리고, 냉방비 부담은 취약계층에게 먼저 닿는다.

기후위기 시대의 냉방 대책은 에어컨 보급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전력망 보강, 건물 효율 개선, 취약계층 보호, 도시 열섬 완화, 공공시설 냉방 기준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기후변화가 만든 ‘갈라진 여름’


제트기류의 굽이침이 한반도와 유럽의 6월 말 날씨를 갈랐다. 한반도에는 비교적 차고 건조한 공기가 영향을 주며 낮은 습도와 선선한 아침·저녁이 이어졌고, 유럽에는 고기압성 블로킹이 형성되며 폭염과 도시 인프라 부담이 커졌다. 그래픽=기상청·ESA 자료 기반 재구성이미지 확대보기
제트기류의 굽이침이 한반도와 유럽의 6월 말 날씨를 갈랐다. 한반도에는 비교적 차고 건조한 공기가 영향을 주며 낮은 습도와 선선한 아침·저녁이 이어졌고, 유럽에는 고기압성 블로킹이 형성되며 폭염과 도시 인프라 부담이 커졌다. 그래픽=기상청·ESA 자료 기반 재구성


한반도의 선선함과 유럽의 폭염은 서로 반대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현상은 같은 북반구 대기 흐름 안에서 갈라진 결과다.

제트기류가 크게 굽이치고 고기압과 저기압의 흐름이 정체되면 지역별 날씨는 극단적으로 달라진다. 한반도 주변에는 비교적 차고 건조한 공기가 머물며 장마 북상이 늦어졌고, 유럽에는 고기압성 블로킹이 자리 잡으며 뜨거운 공기가 갇혔다.

기후변화가 이런 기압 배치를 매번 직접 만든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배경 온도를 끌어올려 폭염의 강도와 빈도를 키운다는 점은 분명해지고 있다. 따뜻해진 대기는 더 많은 수증기를 품고, 비가 내릴 때는 더 강하게 쏟아진다. 고온이 이어질 때는 밤에도 열이 빠져나가기 어렵다.

한국의 장기 관측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기상청이 1912년부터 2024년까지 분석한 자료에서 2020년대 폭염일수는 1910년대보다 2.2배 늘었고, 열대야일수는 4.2배 증가했다. 연강수일수는 줄었지만 강수량과 강수강도는 증가했다.

올해 6월 말의 선선한 밤바람은 반가운 예외다. 그러나 예외가 여름의 방향을 바꾸지는 않는다. 장마가 늦어지고 습도가 낮아진 공백 뒤에는 더 습한 공기, 더 강한 비, 더 긴 열대야가 이어질 수 있다.

에어컨을 덜 켠 한국과 열차까지 멈춘 유럽은 다른 날씨를 겪고 있지만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폭염은 얼마나 뜨거운가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와 사회가 그 열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의 문제다.


박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tkay8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