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고래부터 문어잡이 전쟁까지, 제도 허점 질타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 "수산업 보는 시야 넓어지길"
도처에 AI 눈이 번득이고 디지털 갑옷 무사들이 온오프 공간을 누비는 서울의 복판에서 동해를 보는 눈은 차라리 게슴츠레하다. 짙푸른 바다에 취한 듯, 폭포수 햇살에 졸린 듯 먼 바다 포말처럼 가물거린다.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 "수산업 보는 시야 넓어지길"
파도 조각들이 은빛 소리를 내며 날아가 연두 잎으로 돋아난 게 설악이던가 싶은 '울산바위스러운' 상상도 했고 바다에 수직으로 꽂히는 눈발이 마치 하늘에서 백마가 내려오며 무릎을 꿇는 형상 같다는 '정동진스러운' 상상도 했었지만....
그러나 서울에서 달려온 상상력은 '동해'의 차가운 물이 정수리에 닿으며 찬란하게 부서졌다. 동해의 깊이를 모르는 나그네는 발을 적시며 '탐독'의 돛을 올렸다.
이미지 확대보기책 '동해탐독'은 동해에서 잡히는 바닷고기, 그 고기를 잡는 사람, 그리고 고기가 식탁에 오르는 과정까지의 기록이다. 이 기록을 관통하는 건 유통이다. 유통에 따라 고기 이름이 변하고 값이 달라진다. 그래서 수산물의 가치는 바다에서 정해지는 게 아니라고 '기록자' 김형호는 말한다. 저자 김형호는 문어잡이 어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지금 20년 넘게 동해안을 취재하고 있다.
저자는 책머리를 지나자마자 고래를 왜 제1 챕터에 넣었을까. 고래잡이는 불법이다. 고래는 대부분 동해에 쳐놓은 그물에 다른 고기와 함께 걸려든다. 이를 혼획이라 하는데, 그물을 열어 고래를 살려줘야 하지만 고래가 갇힌 지 알 수는 없다. 그리고 안다고 해도 풀어주기에는 너무 아깝다. 죽을 때까지 기다린 뒤 신고하면 합법이다. 고래 가격은 수천만원이다. 어업인들이 이 '로또'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저자는 고래의 죽음은 누군가에게 행운이 되고 제도는 묻힌다고 했다. 해양수산부 등 관(官)이 만든 제도의 문제점은 책 곳곳에 박혀 있다. 저자의 바닷고기 기록은 유통 문제를 파고들지만 그 길목에 자리한 제도를 질타하고 있다. 고래는 제도의 허점 속에 죽고 어부는 허점 속에 돈을 벌고 있다.
어이없는 제도 하나. 해양수산부가 어린 물고기를 키우고 사랑하자는 치어럽(稚魚+up. love) 캠페인을 하면서 알을 밴 수산물을 잡지도 먹지도 못하겠다고 하자, 알밴 도루묵을 파는 음식점들이 반발했다. 잡기 전에 알을 밴 개체를 어떻게 선별하느냐, 알밴 개체만 빼고 잡을 방법이 있느냐 등 문제를 제기하자 해수부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현장을 몰라도 한참 몰랐다.
또 하나. 대부분 수산물은 마리나 상자 단위로 거래되지만, 어획량 통계는 무게로 정리된다. 그런데 무게를 실제로 측정하는 어종은 문어 뿐이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어획량을 이해하고 있는가.
혹시 어제 점심으로 생선구이를 드셨나요? 임연수어를 드셨다면 십중팔구 러시아산이고, 고등어는 무조건 노르웨이에서 온 것입니다. 짝퉁 조기 부세 한 마리 드셨다면 영광에서 가공한 중국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자미는 어떨까. 저자 말로는 동해안 식당에서도 수입산 가자미를 쓴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일반인도 짐작할 수 있는 대목. 그러면 왜 국산 가자미는 사라진 것일까. 음식의 양이 문제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가자미를 단독 메뉴로 내놓으려면 적어도 30센티미터는 돼야 한다. 그 큰 것은 구하기 어렵고 비싸다. 작은 것은 두께가 얇아 먹을 게 없다. 미국 것은 작아도 살이 두텁다. 그래서 음식값을 맞추려면 수입산이 답이다.
그 많던 오징어는 다 어디 갔나. 실제 사라진 게 아니라 가까운 바다에서는 안 잡혀 멀리 나가야 한다는 것. 결국 비용이 증가한다. 또 중국 어선이 북한 해역과 동해 북부에서 대규모로 오징어를 잡는다. 동해로 내려오는 길목에서 싹쓸이를 하는 것이다. 사라지지 않고 이동하는 오징어를 우리는 그냥 보고만 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여름 밤바다 해수욕장에서 먹는 오징어회가 낭만어린 풍경이 됐다. 여름철 오징어는 '총알 오징어'라 불리는데 이는 성장 이전 단계로 몸집이 작다. 가을까지 기다렸다 잡을 것을 미리 다 회로 먹고 있는 것이다.
동해의 효자 문어 잡기는 전쟁이다. 같은 문어를 놓고 연승, 통발, 낚시 등 어업인 경쟁이 치열하다. 연승은 줄낚시를 넣어 잡는 방식이고 통발은 장구처럼 생긴 그물망을 바닥에 던져 가두어 잡는 방식이다. 낚시업은 도시민 체험용으로 개발된 것이지만 이제는 어획량이 어업인들 생계를 위협할 정도다. 전통 방식인 연승은 통발에 맥을 못추고 사양길이다. 여기에 도시인들이 놀러와 체험삼아 레저 삼아 고기를 잡는 해루질 또한 끝없이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동해 항구 수산물 위탁 경매는 새벽 6시부터 이뤄진다. 어부들은 이 시간에 맞추기 위해 새벽 3시면 바다에 나가 그물을 건진다. 활어와의 전쟁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수입산에 세포 배양 연어도 미국에선 시판되는 세상이다. '공장형 생선'이 식탁에 오를 채비다. 자연산이냐 양식이냐 국산이냐 수입산이냐는 질문은 점차 공허해진다. 그래도 동해를 다시 보면 수산물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고 수산물을 이해하면 동해를 좀 알 것 같다. 동해를 다시 보는 건 여유가 아니라 이제 다급한 시선이 됐다. 우리의 몇천년 먹거리가 있고 문화가 있고 무엇보다 사람이 있잖은가. 책 갈피 곳곳에 비린내처럼 저자의 땀이 배어 있다.
엄정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astoday@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