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 수요에 러스트벨트 전기요금 급등…철강·벽돌공장 비용 압박 확산
이미지 확대보기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미국 제조업 부흥 구상의 새 변수로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빅테크의 AI 투자를 성장 동력으로 밀어붙이는 동시에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앞세워 제조업 회복을 강조하고 있지만 데이터센터가 몰리는 러스트벨트 지역에서 전기요금이 급등하면서 공장들의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
과학기술 전문매체 아스테크니카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트럼프 대통령의 제조업 부흥 계획을 위협하고 있다고 1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국 최대 전력망 운영사인 PJM 인터커넥션 권역에서 전력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철강업체와 벽돌 제조업체 등 전력 다소비 제조업체의 수익성이 압박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PJM은 미국 중부와 동부 13개 주에 걸쳐 전력을 공급하는 최대 전력망 운영사다. 이 권역은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등 전통 제조업 기반이 두꺼운 러스트벨트와 겹친다. 최근에는 AI 데이터센터 건설이 집중되는 지역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 벽돌공장 전기요금, 월 242만원서 1810만원으로
전기요금 급등은 이미 개별 공장 비용 구조를 흔들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오하이오주의 141년 된 벽돌 제조업체 벨든브릭은 월 전력 용량요금이 1600달러(약 242만원)에서 1만2000달러(약 1810만원)로 뛰었다.
용량요금은 전력망이 피크 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발전사업자에게 지급되는 비용이다. 주거용 전기요금에서는 비교적 작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전력 사용량이 많은 제조업체에는 훨씬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벨든브릭은 전기요금 상승을 일부 상쇄하기 위해 벽돌 가격을 4% 올렸지만 수익성은 여전히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벨든브릭 측은 전력비가 계속 오르면 지역 제조업체들이 가격 인상이나 비용 절감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지점에 이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조업체 전기요금은 주거용이나 일반 상업용보다 더 빠르게 오르는 흐름을 보인다. 로이터는 “미국 에너지 자료와 제조업체 인터뷰를 바탕으로 공장 전기요금이 여러 가정과 일반 사업체보다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PJM 용량가격 2년 새 1038% 급등
핵심 원인은 데이터센터 수요라는 지적이다. PJM 권역에서는 AI 산업을 위한 대형 데이터센터가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데이터센터 한 곳은 중형 도시와 맞먹는 전력을 쓸 수 있다.
PJM의 용량가격은 1MW의 발전 용량을 하루 확보하는 가격인 메가와트일(MW-day) 기준으로 2024년 28.92달러(약 4만4000원)에서 2026년 329.17달러(약 49만7000원)로 뛰었다. 상승률은 1038%에 달한다. 전력 공급 확충은 더디지만 데이터센터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공급·수요 전망에 반영되는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이 비용은 제조업체 전기요금에 반영된다. 오하이오와 펜실베이니아처럼 제조업 기반이 크면서 데이터센터 허브로 부상한 주에서 산업용 전기요금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아스테크니카는 “이런 비용 압박이 트럼프 대통령의 제조업 회복 구상과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내 생산 확대와 공장 일자리 회복을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우지만 제조업 경쟁력의 핵심 비용인 전력비가 급등하면 공장 투자와 생산 확대는 오히려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철강업계도 “수천만달러 부담”
철강업계도 타격을 받고 있다. 전기로를 쓰는 철강 생산은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한다. 전기로 한 기의 운영 부하는 40~200메가와트 수준이며, 미국 철강산업 전체는 피크 생산 때 최대 11기가와트의 전력을 사용한다.
철강 제조에서 전기는 총 생산비의 20~40%를 차지한다. 전력비가 오르면 곧바로 마진이 줄어드는 구조다.
미국 철강제조업협회는 PJM 권역의 러스트벨트에 집중된 철강회사들이 해마다 수천만달러의 추가 전력비를 부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오하이오주의 철강업체 메탈러스는 2024년 이후 전기요금이 70% 뛰었고, 연간 1500만달러(약 227억원)의 에너지 비용을 추가로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이러니도 있다. AI 데이터센터 건설은 철강 수요를 키운다. 데이터센터 건설에는 매년 약 100만t의 철강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철강업계는 데이터센터 건설 붐의 수혜를 일부 받고 있지만 동시에 데이터센터가 끌어올린 전력비 때문에 생산비 부담도 커지고 있다.
이는 AI 붐의 양면성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데이터센터는 반도체, 철강, 전력설비, 냉각장비 수요를 만들지만 같은 지역 전력망을 쓰는 제조업체에는 비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 전력 부족 우려도 커져
전기요금 문제는 단순한 비용 상승에 그치지 않는다. 전력망 안정성 우려도 커지고 있다.
PJM은 2027년부터 관할 지역의 전력 수요가 공급 가능량을 6.6기가와트 초과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원전 6기 이상에 해당하는 전력량으로 설명된다.
공급 부족이 현실화하면 전력 가격은 더 오르고, 폭염이나 한파 때 정전 위험도 커질 수 있다. 철강업계 경영진들은 지역 전력망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경우 생산 차질이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전기로 철강 생산은 전력 공급 안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력이 불안정하거나 가격이 급등하면 공장 가동 시간을 조정해야 하고, 일부 업체는 야간 시간대 생산 확대나 자체 발전설비 도입 같은 대안을 검토하게 된다.
일부 제조업체는 이미 생산 시간 조정, 가격 인상, 자체 발전설비 설치, 사업장 이전까지 검토하고 있다. 전기요금이 제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부상한 것이다.
◇ 빅테크 보호책이 제조업 타격할 수도
아스테크니카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빅테크가 새 발전설비와 송전망 확충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방안을 내세우고 있다. 백악관은 대형 기술기업들이 전력요금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않도록 하는 ‘요금납부자 보호 서약’을 체결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문제는 집행력이란 지적이다. 해당 서약은 강제력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또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을 관리하기 위한 주정부와 연방 차원의 규제가 제조업체까지 같은 범주로 묶을 경우 오히려 공장들이 추가 비용을 떠안을 수 있다.
아스테크니카에 따르면 제조업계는 “제조업체는 데이터센터가 아니다”라며 반발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전력 사용 규모와 증가 속도에서 일반 공장과 차이가 크지만, 전기요금 체계와 규제 설계에서는 같은 대형 전력 사용자로 묶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부 규제안은 자가발전 설비를 가진 대형 전력 사용자에게도 송전망 비용을 더 부담시키는 방향을 담고 있다. 이는 데이터센터를 겨냥한 조치지만 자체 발전이나 에너지 비용 절감을 검토하는 제조업체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 재생에너지 취소도 공급난 키웠다
전력 공급 확대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다. AI 데이터센터와 제조업, 주거·상업 부문의 전력 수요가 동시에 늘고 있지만 신규 발전소와 송전망 건설은 지연되고 있다.
아스테크니카는 2025년 미국에서 취소된 발전 프로젝트가 총 266기가와트에 달했다고 전했다. 이는 미국 현재 발전용량의 25%에 해당하며 텍사스 전체 발전량보다 큰 규모다.
취소된 프로젝트의 93%는 청정에너지였다. 풍력과 태양광 프로젝트가 행정부 정책, 지역 반대, 송전망 부족, 높은 계통연계 비용 등으로 취소되거나 지연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풍력·태양광 프로젝트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 점도 전력 공급 확충에는 부담이 됐다는 분석이다.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와 송전망 확충이 막히면 전력 부족과 가격 상승 압력은 더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제조업 부흥과 에너지 정책의 충돌을 드러낸다는 지적이다. 미국 내 공장을 늘리려면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력이 필요해서다. 그러나 데이터센터와 제조업이 같은 전력망에서 경쟁하고 신규 공급 확대가 늦어지면 제조업체가 먼저 비용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 AI와 제조업, 같은 전력망서 충돌
트럼프 대통령은 AI와 제조업을 모두 미국 경제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빅테크의 AI 인프라 투자는 미국의 기술 패권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필수 투자로 평가된다. 동시에 제조업 회복은 일자리와 지역경제, 산업안보의 핵심 과제다.
그러나 두 전략은 같은 전력망 위에서 충돌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빠르게 지어질 수 있지만 발전소와 송전망은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전력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 데이터센터의 수요 확대는 공장 전기요금 상승으로 이어진다.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AI 붐이 먼 미래의 생산성 향상을 약속하기 전에 당장의 전기요금 고지서로 먼저 다가오는 셈이다. 특히 러스트벨트의 중소 제조업체는 마진이 얇고 전력비 비중이 커 충격을 흡수하기 어렵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은 AI 데이터센터와 전기화 수요로 미국 전력 소비가 2026년과 2027년에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상업용 전력 판매는 2026년 처음으로 주거용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는 데이터센터가 전력 수요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음을 의미한다.
◇ 전력정책이 제조업 정책의 핵심으로
이번 논란은 제조업 정책의 핵심이 더 이상 관세와 보조금, 세제 혜택만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아스테크니카는 지적했다. 공장을 미국으로 불러오려면 전력망과 발전설비, 송전망, 요금 체계가 함께 준비돼야 한다는 것이다.
AI 데이터센터 수요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데이터센터와 제조업체를 어떻게 구분할지, 신규 발전과 송전 투자를 어떻게 빠르게 늘릴지가 정책의 핵심 과제가 됐다.
아스테크니카에 따르면 전력비가 계속 오르면 미국 제조업체는 가격을 올리거나 생산을 줄이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해온 ‘메이드 인 아메리카’ 구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AI 붐은 미국 경제의 새 성장 동력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 동력이 전력망을 압박해 제조업 비용을 끌어올린다면 기술 패권과 제조업 부흥이라는 두 목표는 서로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