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종료·데이터센터 수요 폭증 겹쳐
구글·메타 PPA 매입 확대에 제조업체 밀려날 우려
구글·메타 PPA 매입 확대에 제조업체 밀려날 우려
이미지 확대보기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태양광·풍력 프로젝트에 적용되던 세제 혜택을 중단하는 동시에 구글과 메타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 전력 확보에 나서면서 청정전력 시장의 수급이 빠르게 빡빡해지고 있다.
전력구매계약(PPA) 가격이 뛰면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제조업체, 유통기업, 병원 등 대형 전력 소비 기업의 비용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청정에너지 거래 플랫폼 레벨텐에너지의 미국 태양광·풍력 개발업체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해 미국 청정전력 PPA 가격이 보조금 종료 이후 40~120% 상승할 수 있다고 4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 7월 4일 이후 착공 프로젝트, 세제 혜택 제외
가격 상승의 직접적인 계기는 재생에너지 세제 혜택 종료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에 따라 지난 4일 이후 착공하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바이든 행정부 시절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제공되던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 세제 혜택은 태양광·풍력 개발비의 약 30%를 줄여주는 역할을 해왔다. 이 지원이 사라지면 개발비 부담이 곧바로 PPA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PPA는 기업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장기간 전력을 사기로 계약하는 방식이다. 발전사업자는 안정적인 구매자를 확보해 프로젝트 자금을 조달하고, 기업은 고정 가격으로 전력을 확보해 탄소 감축 목표와 전력비 헤지 효과를 동시에 노린다.
그러나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 물량은 제한돼 있다. 레벨텐에너지는 보조금 대상 프로젝트가 시장에서 사라지면 다시 나오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 구글·메타, 청정전력 시장 최대 구매자로
수요 측면에서는 AI 데이터센터가 가격 상승을 밀어 올리고 있다.
AI 모델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빅테크 기업들은 전력망에서 끌어다 쓰는 전기를 재생에너지 계약으로 상쇄해 탄소 감축 목표를 맞추려 한다.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메타와 구글은 올해 세계 최대 재생에너지 계약 구매자로 꼽힌다. 두 회사는 AI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데이터센터 투자를 확대하는 동시에 청정전력 확보에도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높은 가격을 감수할 수 있는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들이 프리미엄을 지불하면 제조업체나 일반 산업체는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기 어려워진다.
미국 산업에너지소비자협회의 폴 시시오는 “초대형 클라우드 사업자들이 높은 가격을 지불하면서 제조업체가 청정전력 계약을 확보하기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 제조업체·병원·유틸리티까지 밀려날 가능성
청정전력 판매자 입장에서도 구매자 선택 기준이 바뀌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가능한 한 많은 전력을 빠르게 확보해야 하고, 높은 가격도 감수할 수 있다. 반면 병원, 유틸리티, 제조업체는 전력비 상승을 제품 가격이나 서비스 요금에 그대로 전가하기 어렵다.
에너지 인프라 투자회사 캡토나의 이젯 벤수산 최고경영자(CEO)는 “판매자가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데이터센터에 팔 수 있다면 병원이나 유틸리티에 팔 이유를 다시 따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청정전력 시장이 단순한 친환경 조달 시장에서 AI 인프라 경쟁의 핵심 병목으로 바뀌고 있음을 뜻한다. 빅테크가 전력 확보를 위해 가격을 끌어올리면 다른 산업은 탈탄소 목표를 유지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 변압기·인건비·계통 접속도 비용 압박
청정전력 가격 상승은 보조금 축소와 AI 수요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력 인프라 공급망도 비용을 밀어 올리고 있다. 미국토목학회 자료에 따르면 변압기 비용은 2020년 초 이후 60~80% 상승했다. 태양광 노동비도 2025년에 15% 올랐다.
전력망에 새 발전 프로젝트를 연결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송전망 접속 지연, 허가 절차, 높은 금리, 자본비용 상승이 모두 재생에너지 PPA 가격에 반영되고 있다.
로펌 쿨리의 모나 다자니는 계통 접속, 변압기, 허가, 자본비용 제약 등 기초 여건이 크게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 기업 기후목표도 흔들
전력 가격이 오르면서 기업들의 기후 목표도 압박을 받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는 2030년까지 시간 단위로 전력 사용량과 청정전력 생산량을 맞추겠다는 목표를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력을 쓴 같은 시간대에 청정전력이 생산돼야 한다는 더 엄격한 방식이다.
구글도 지난해 기록적인 청정에너지 계약을 체결했지만 장기 기후 목표 달성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기업들이 기후 목표를 완전히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고객과 투자자들은 여전히 탄소 감축 노력을 요구하고 있고 다국적 기업들은 미국 내 정책 변화만 보고 전략을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미전기제조업협회의 돈 리븐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기업들은 미국 안에서 벌어지는 일뿐 아니라 전 세계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 AI 호황 꺾이면 가격도 내려갈까
일부 기업은 청정전력 계약 체결을 미루고 있다.
온실가스 회계 기준을 정하는 그린하우스가스 프로토콜 개정안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도 불확실성을 키운다. 새 기준은 기업이 전력을 언제, 어디서 사용했는지와 청정전력이 언제, 어디서 생산됐는지를 더 세밀하게 맞추도록 요구할 수 있다. 최종 규정은 내년 중에 나올 예정이다.
기업들은 AI 붐이 식으면 전력 가격도 내려갈 수 있다고 기대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공급 증가 속도를 앞지르고 있어 가격 하락을 장담하기 어렵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미국 전력 수요가 2050년까지 25~50%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AI 데이터센터, 전기차, 전기난방, 산업 전기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전력 수요 기반이 구조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