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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불안, 트럼프 유가안정론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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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불안, 트럼프 유가안정론 흔든다

비축유 10억배럴 소진·중국 재매입 변수…분석가들 “90달러 재상승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국제유가가 한때 배럴당 70달러(약 10만5000원) 아래로 내려가며 이란 전쟁 충격을 되돌린 듯 보였지만 에너지 시장의 안심론은 이르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계 석유 비축분은 크게 줄었고 호르무즈 해협 운항은 정상화되지 않았으며 중국의 원유 수입 재개가 새로운 가격 상승 압력으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은 1에너지 전문가들을 인용해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유가가 다시 배럴당 90달러(약 13만5000원)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1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200달러(약 30만원) 유가’ 같은 극단적 시나리오는 피하더라도 연료 가격을 낮춰 중간선거를 치르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는 부담스러운 환경이라는 것이 포춘의 진단이다.
포춘에 따르면 세계 석유 비축분 약 10억배럴은 이미 소진됐고 제대로 보충되지 않고 있다. 가동을 멈췄던 정유시설도 아직 충분히 돌아오지 못했다. 중국은 대규모 원유 수입을 재개하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드론과 로켓 충돌이 이어지자 이란과의 임시 평화 합의가 “끝났다”고 말했다.

◇ 유가 하락에도 정상화는 아니다


원유 가격은 이달 초 급락했다.

미국 기준 유가는 한때 배럴당 70달러 아래로 떨어졌고 7월 10일에는 71달러(약 10만7000원) 안팎에서 움직였다. 에너지 시장은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가능성이 낮아졌고 호르무즈 해협 통항도 일부 재개됐다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물류와 재고 지표는 다른 신호를 낸다는 지적이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 흐름은 임시 평화 합의 이후에도 정상 수준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유 운반선의 운임과 보험료는 최소 두 배로 뛴 상태다.

미국 투자은행 레이먼드제임스의 에너지 부문 책임자 마셜 애드킨스는 “시장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운항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지만 이란의 과거 행태를 감안하면 전쟁 전 수준으로 쉽게 돌아가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란을 오래 지켜본 경험상 해협 운항이 쉽게 전쟁 전 수준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고 봤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일종의 통행료를 부과하는 체계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애드킨스는 “이란이 해협 통제권을 유지하면 통항량이 정상의 절반 수준에 머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운송의 핵심 통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가 일부 물량을 송유관으로 우회시키더라도 새 인프라 구축에는 최소 1년이 걸릴 수 있다. 이 경우 세계 원유 공급의 5%가량이 여러 달 동안 시장에서 빠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 중국이 돌아오면 수요 압력 커진다


포춘에 따르면 현재 유가가 예상보다 낮아진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이다.

중국은 전쟁과 유가 급등 국면에서 세계 시장 원유 수입을 하루 약 500만배럴 줄였다. 이는 소비 자체가 그만큼 줄었다기보다 기존 비축유와 연료 재고를 활용해 수입을 줄인 측면이 크다.

피커링에너지파트너스의 댄 피커링 창업자는 “중국이 이번 시장에서 사실상 ‘스윙 수입국’ 역할을 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지금을 일종의 허니문 국면으로 표현하며 이같이 밝혔다. 중국이 8월 말 전후로 원유 구매를 다시 늘리면 현재의 유가 안정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중국 정유사들도 변수란 지적이다. 정제마진이 높아지면 정유시설 가동을 재개할 유인이 커진다. 애드킨스는 중국 정유사들이 높은 마진을 보고 다시 가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으며 이미 그런 움직임이 시작됐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원유 수입을 재개하고 정유시설이 다시 돌아가면 시장은 지금과 다른 수급 환경에 놓인다. 호르무즈 통항이 완전히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 수요가 되살아나면 원유 가격은 다시 위로 움직일 수 있다.

◇ 미국 비축유도 얇아졌다


미국 내부 재고 상황도 여유롭지 않다.

미국의 전략비축유는 198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현재 3억배럴 이상을 보유하고 있지만 전쟁 시작 당시 4억1500만배럴에서 크게 줄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료 가격을 낮추기 위해 수개월에 걸쳐 총 1억7200만배럴 방출을 승인했다. 포춘은 중간선거 전까지 미국 정부가 전략비축유를 다시 채울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유가를 낮게 유지하려는 정치적 필요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축유는 언젠가 보충해야 한다. 미국이 내년 이후 전략비축유를 다시 채우기 시작하면 원유 수요가 추가로 늘어나서다. 이는 민간 수요 회복과 겹칠 경우 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상업 재고도 취약하다. 미국 오클라호마주 쿠싱은 미국 원유 저장과 거래의 핵심 허브다. 시장에서는 쿠싱 재고가 2000만배럴 아래로 내려가면 위험 수준으로 본다. 지난주 쿠싱 재고는 1960만배럴까지 줄었다. 2년 전 3350만배럴보다 크게 낮고 6월 중순에는 12년 만의 최저인 1890만배럴까지 떨어졌다.

쿠싱 재고가 2000만배럴 밑으로 내려가면 숫자로 잡힌 물량 중 상당 부분은 실제로 꺼내 쓰기 어려운 탱크 바닥 잔유일 수 있다. 저장탱크는 완전히 비울 수 없고 침전물도 남기 때문이다. 쿠싱은 미국 원유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저장·거래 허브다.

◇ 정유시설 차질이 연료값 떠받친다


이란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원유와 정제연료를 기록적으로 수출했다.

이는 중동과 중국의 가동 중단 정유시설, 우크라이나 공격으로 손상된 러시아 정유시설 공백을 일부 메우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 정제마진을 사상 최고 수준으로 밀어 올렸고, 원유 가격이 내려와도 주유소 가격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원인이 됐다.

애드킨스는 전 세계 정제능력 가운데 하루 약 700만배럴이 오프라인 상태가 됐다고 추산했다. 원유가 시장에 다시 나오더라도 이를 휘발유와 경유, 항공유로 바꿀 정제능력이 부족하면 소비자가 쓰는 연료 가격은 쉽게 낮아지지 않는다.

미국 일반 휘발유 평균 가격은 지난 5월 갤런당 4.56달러(약 6800원)까지 치솟았다가 이달 10일 기준 3.88달러(약 5800원)로 내려왔다. 그러나 원유 가격 하락폭과 비교하면 소비자 체감 하락은 제한적이다.

4월 원유 가격이 배럴당 114달러(약 17만1000원)까지 치솟은 뒤 내려왔지만 정제마진과 수출 수요, 낮은 재고가 연료 가격을 떠받친 셈이다.

◇ 트럼프 중간선거 물가 부담


이같은 흐름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란 지적이다.

트럼프는 이란 전쟁을 마무리하고 연료 가격을 낮추는 것을 중간선거 전 경제 성과로 내세우려 하고 있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 운항이 정상화되지 않고 중국이 원유 수입을 다시 늘리면 유가 안정론은 흔들릴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튀르키예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이란과의 임시 합의가 끝났다고 말했다. 동시에 전면전이 재개될 것으로 보지는 않으며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빨리 끝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시장이 원하는 것은 명확한 평화 경로와 통항 정상화다. 외교적 합의가 불투명하고 해협 통제권을 둘러싼 갈등이 남아 있으면 원유시장에는 지정학적 위험 프리미엄이 붙을 수밖에 없다.

PPHB의 짐 위클런드 매니징디렉터는 호르무즈 사태 이후 세계가 석유에 얼마나 의존하는지 다시 확인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당분간 유가에 배럴당 최소 5달러(약 7500원)의 지정학적 위험 프리미엄이 반영될 수 있다고 봤다.

◇ 원유 수요 둔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일부에서는 세계 석유 수요가 정체되거나 둔화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장기적 유가 급등 가능성을 낮게 본다. 중국의 전기차 보급과 에너지 전환도 석유 수요를 줄이는 요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석유 수요가 곧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수요가 정점에 가까워져도 항공, 해운, 석유화학, 중장비, 장거리 운송에서는 석유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몇 달간의 가격 충격만으로 구조적 행동 변화가 나타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베리텐의 에너지 거시·정책 파트너 아준 머티는 석유 수요가 전쟁 이전 추세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중동과 산유국의 영향력이 약해지더라도 세계 에너지 시장의 중심축으로 남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